더니든 기차역을 지나 7시 정각에 인터 시티(Inter City) 버스 터미널에 도착했다.
‘헐, 대합실 문이 닫혔다.’ 승객들은 아무도 보이질 않았다. 한 뼘 처마 끝이 없는 네모진 터미널 건물은 비를 피할 곳이 없었다.
자전거를 버스에 실으려면 작업할 시간이 필요해 1시간 미리 터미널에 도착했는데 난감했다.
‘어디서 분해 포장을 하지?’
작은 공간이라도 찾아보려고 터미널 건물을 빙빙 돌다가 살짝 열린 문을 발견했다.
“여기요. 쪽문이 있어요.”
“거기 들어가도 되는 거예요?” 뒤따르던 만능 키가 말했다.
“우선 비를 피해야겠어요.”
“문 열어보죠.”
“헬로, 헬로.” 나는 작은 소리를 내며 쪽문을 밀고 살금살금 들어섰다.
“헬로, 헬로.” 만능 키는 더 크게 소리를 질렀다.
“#♡@?♧” 갑자기 2층 난간에서 벼락 치는 소리가 들렸다.
“어쿠!” 만능 키와 나는 너무 놀라 바닥에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빨간 선 바깥으로 이동!”
“빨간 선 바깥으로 이동!”
2층 난간을 올려다보니 어떤 흑인 아저씨가 손가락으로 우리 발밑을 가리키며 소리를 질러대고 있었다. 영문도 모른 채 나는 잽싸게 발을 빨간 선 바깥으로 옮겼다.
“뭐 하는 짓이야!”
“우리 버스 타려고 왔는데 비를 좀 피하려고.”
“이곳에 함부로.”
“죄송, 죄송합니다, 문이 열려있어서….”
흑인 아저씨가 부리나케 철 계단을 따라 내려오며 뭐라고 얘기를 하는데 제대로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저거 안 보여?”
쪽문 옆 벽면에 붙은 표지판을 가리키며 목청을 높이는 걸 보니 이곳에 출입할 수 없다는 걸 얘기하는 것 같았다.
“관계자 외 출입 금지?”
“아 그거. 못 봤습니다.”
“….”
“아무튼 죄송합니다.”
흑인 아저씨도 잠시 마음을 가라앉히는 듯 보였다.
빨간 선 옆엔 오일 탱크로 연결되는 작은 밸브가 놓여 있었고 주위엔 차량 엔진 부품으로 보이는 것들이 널려져 있었다. 버스 정비 공장 같았다.
“부탁이 좀 있는데요.”
“그게 뭐예요?”
“저희 한국에서 왔는데 뉴질랜드 자전거 여행을 하고 있어요. 자전거를 버스에 싣고 가야 하는데 비가 많이 내려 바깥에서 분해 조립을 할 수 없어요. 그러니 이곳에서 잠시 작업을 좀 하면 안 될까요?” 목소리 나긋나긋 읍소를 했다.
“흐음∼. 이리 따라와요. 여기서 하세요.”
크게 인심이라도 쓰는 듯 한쪽 구석에 손가락으로 원을 크게 그려줬다.
“감사, 감사합니다.” 철 계단으로 올라가는 흑인 아저씨에게 몇 번이고 손을 흔들어 고맙다고 했다.
“자, 이곳으로 얼른 들어와요.” 터미널 앞에서 비 쫄딱 맞고 서있는 일행에게 소리쳤다.
‘아하, 따스하다.’ 버스 정비 공장에서 자전거를 분해, 포장했다. 무엇보다도 추위를 견딜 수 있어 좋았다.
“그나저나 버스 기사님이 자전거를 잘 실어줘야 할 텐데요.” 포장을 마치고 한숨 돌리며 말했다.
“그러게 말이에요.” 만능 키도 걱정을 더했다.
“한 차에 네 대를 다 실을 수 있을까요? 어려울 것 같아요.” 인천 총각이 오랜만에 말문을 열었다.
“만일 안 된다면 하루 더 묵어야지요.” 내가 말했다.
“하루 두 번 운행하니까 다음 날 가는 것보다 둘씩 나누어 당일 밤차 타고 가는 게 더 낫지 않을까요?” 인천 총각이 의견을 냈다.
“둘, 둘 나눠지면 오히려 더 어려울 것 같아요.” 만능 키는 인천 총각 의견에 동감을 표했다.
일단 버스 예약할 때, 변경 가능 한 티켓을 끊어놓았으니 만일 이 버스를 타지 못해도 문제는 없다. 암튼 더니든에서 픽턴 가는 지름길이 지난해 지진으로 끊어져 멀리 우회해야 하고, 게다가 요즘이 관광 성수기라서 자전거를 한꺼번에 다 싣지 못할 수도 있다.
“버스니까 화물칸이 넓겠지요. 뭐.” 추니는 낙관적으로 말했다.
“만약 두 번에 나눠 가야 할 상황이 되면 두 사람은 다시 캠핑장에 가서 하룻밤 더 자는 게 좋겠지요.” 내가 최악의 상황을 가정했다.
“호텔은 미리 예약하지 않아 어려울 거예요.” 인천 총각이 말했다.
“아무튼 마음씨 좋은 버스 기사님이 와야 할 텐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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