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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등의 연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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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등의 연속

[‘바이크 보헤미안’ 최광철의 수상한 여행 3] ⑳숨겨진 갈등

오후 5시. 오피어(Ophir) 캠핑장에 도착했다. 넓은 잔디 광장에 이용객은 보이지 않았다.
“저쪽 건물 바로 옆에 텐트를 치고 싶습니다.”
관리인이 지정해준 중앙 광장 대신 거센 바람을 조금이라도 피할 수 있는 건물 옆으로 바꿔달라고 부탁했다.
“네. 그렇게 하시죠.” 관리인은 쾌히 승낙했다.

“여기 이것 좀 도와주세요.” 인천 총각이 만능 키한테 갑자기 말을 걸었다.
“….”
“폴대 좀요.”
“잠깐만 기다려요.” 오늘 하루 종일 서로 눈도 마주치지 않고 상당한 거리를 두고 달려온 두 사람이 말문을 열었다.
“예. 이쪽을 잡고 있을게요.” 만능 키가 텐트 한쪽 귀퉁이를 붙잡고 바닥에 핀을 꽂으며 말했다.
“저쪽도 좀.”
“….” 그 다음엔 대화가 이어지지 않았다.

ⓒ최광철 여행작가·방송인

“뉴질랜드는 바람이 너무 강해요.” 추니가 침낭 속에 목을 넣었다.
“맞아. 하루도 바람 잘 날 없어.”
“그나저나 인천 총각님이 만능 키님한테 섭섭한 게 뭘까요. 자꾸 궁금해요.”
“뭐가 있겠어.”
“아녜요.”
“뭐, 잠깐 서운했던 거겠지.”
“오늘 서로 한마디도 안 했단 말이에요.”
“아까 텐트 칠 때는 서로 힘을 보탰잖아.”
“참 이상해요.”
“친한 사람도 같이 여행하면 싸운다고 하는데 생면부지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만나 한솥밥 먹으며 긴 여행을 하고 있으니 이젠 부딪힐 때도 됐지.”
“한 번 물어봐요. 인천 총각님한테.”
“뭘?”
“뭐가 불만이냐고요?”
“물어볼 필요가 있을까?”
“할 말 있으면 서로 톡 깨놓고 풀어야 하는 거 아녜요. 남자들이 쯧.”
“시간 지나면 서서히 상처가 아물겠지.”
“아녜요. 더 갈등이 심해지는 것 같아요.”
“자, 됐어요. 이제 그만 자요.”

ⓒ최광철 여행작가·방송인

ⓒ최광철 여행작가·방송인

‘쉬∼익 드르렁.’ 누구의 텐트에서 나는 소릴까? 강풍에 텐트 비비대는 소리와 코 고는 소리가 묘하게 화음을 이뤘다.

아침에 일어나 늘 챙기는 일인데도 버프가 어디 있는지, 선크림과 침낭 덮개, 양말 찾느라 매일 분주하다. 기껏해야 한 평 공간에서 매일 아침 짐 싸고 풀고 하면서도 허둥댄다. 세수하고 텐트 접어 자전거에 매달고 식당으로 모이는 8시까지는 바쁜 시간이다.

오늘 아침 식단은 꿀 바른 식빵에 우유 한 컵씩을 곁들였다. 오이를 네 토막으로 잘라 칠리소스를 찍어 먹었다.
“고추장 있으면 좋았을 텐데.” 추니가 말했다.
“커피 물 올려놓을게요.” 만능 키가 식사 도중에 가스레인지에 불을 붙이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직 식사 중인데 천천히 하죠.” 인천 총각이 말했다.

식사를 마친 테이블 위엔 점심 식사용 식빵과 우유, 라면 네 개, 오이 두 개, 식기와 조미료가 놓여있었다.
지금까지는 이동하며 손쉽게 꺼내야 하는 것은 빨간 가방에 넣어 인천 총각 트레일러에 실었고, 라이딩 도중에 꺼낼 물건이 아닌 것은 나머지 사람들이 나눠 실었다. 하지만 굳이 따져보면 싣기 편리하다는 이유로 인천 총각 자전거에 조금 더 많이 싣는 듯 보였다. 하지만 별다른 내색은 하지 않았다.


ⓒ최광철 여행작가·방송인

그런데 오늘 아침은 달랐다. 식탁 위에 놓인 빨간 가방을 인천 총각이 한두 차례 들었다 놨다 해보더니 그냥 식당 밖으로 나가버렸다.

헐∼. 깜박 잊은 걸까, 아니면 그동안 여러 가지 서운했던 것 중의 하나가 표출된 걸까.

“이거 그냥 놓고 갔네요.” 추니가 말했다.
“깜빡 잊었겠지 뭐.”
“그럴 리 없어요.”
“그럼 내가 인천 총각님한테 갖다 줘야겠다.”
“아녜요. 이리 내놔요. 오늘은 내가 싣고 갈래요.” 좀처럼 열 받지 않는 추니가 내 손에서 가로챘다.
“그러지 말고 각자 나누자.” 나는 비닐봉지 네 개를 꺼내 각자 싣고 갈 오이 한 개와 식빵 두 조각, 라면 한 개씩을 골고루 넣었다.
"자∼. 이거 한 개씩요.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고 하잖아요." 식당 밖에서 갈 채비하느라 부산한 만능 키와 인천 총각 손에 각각 쥐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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