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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퍼드 사운드에 반하다

[‘바이크 보헤미안’ 최광철의 수상한 여행 3] ⑰판타스틱, 뉴질랜드

1월 15일, 아침 6시 35분. 퀸즈 타운 캠핑장 바로 앞에 어제 예약한 버스가 도착했다. 빈 차인 걸 보니 아마 이곳이 첫 출발지인가보다. 나는 추니와 함께 맨 앞자리에 앉았다.

버스는 퀸즈 타운 와카티푸 호수를 지나 94번 국도를 따라 세계 자연 유산으로 지정된 남반구의 피오르드, 밀퍼드 사운드(Milford Sound)로 향했다. 운전기사가 흥겹게 손짓까지 곁들여 안내하면서 제한 속도 시속 100킬로미터로 겁나게 달렸다.

ⓒ최광철 여행작가·방송인

ⓒ최광철 여행작가·방송인

버스는 테아나우 호수(Lake Te Anau)를 지나 차츰 밀림 속으로 들어갔다. 앞을 콱 가로막은 구름 덮인 산 아래 예쁜 무지개가 어디서부터일까 나를 따라왔다. 저렇게 작은 무지개는 처음 봤다. 마치 마라톤 출발선에 세운 아치 같다. 버스가 무지개 아치를 통과하자 넓은 벌판이 나타났고 전봇대가 줄지어 산속으로 들어갔다.

거센 비바람에 버스 와이퍼가 바쁘다. “거봐요. 우비 가져가자니까.” 추니가 퉁명스레 한마디 했다.

10시 반, 버스는 멍키 크릭(Monkey Creek)에 정차해 넓은 벌판에 만발한 보라색 루핀 꽃을 배경으로 포토 타임을 가졌다.
잠시 비가 멈췄다. 어디선가 애견 목줄을 잡고 나타난 어린아이가 1미터 높이의 목장 울타리를 사이에 두고 알파카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아이가 손을 내밀자 알파카는 몇 번이고 모른 체하더니 드디어 입을 대줬다.

다시 버스는 파란 이끼 붙은 고목들이 스러져 잠긴 호수를 굽이 돌아 어두컴컴한 밀림 지대로 들어갔다. 앞이 막혔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하는 두터운 설산은 구름이 지배하고 있었다. 버스 아래가 보이질 않아 아슬아슬한 계곡을 달리고 있다는 게 실감이 나질 않았다. 창문 쪽 추니가 무서워 어깨를 움츠리며 머리를 안쪽으로 돌렸다.


ⓒ최광철 여행작가·방송인

잠시 후 버스 기사는 높이 제한 3.8미터, 교행 대기 시간 4분 50초라는 터널 전광판 앞에서 멈췄다가 다시 출발해 캄캄한 터널을 통과하는 3분 동안 공포 음악을 틀었다.

“와우, 폭포다.” 승객들이 일제히 탄성을 질렀다.
터널을 빠져나오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수십 개의 하늘 높이의 폭포가 쏟아져 내렸다.


ⓒ최광철 여행작가·방송인

ⓒ최광철 여행작가·방송인

버스 기사는 승객들의 마음을 알아차리고 정차했다. 나는 버스에서 내려 한참 동안 시선을 한곳에 두지 못하고 빙빙 돌았다. 300미터가 넘는 시커먼 절벽 꼭대기에서 직각으로 쏟아져 내리는 폭포수들은 나를 곧 공상 속의 세계로 끌어들였다. 하늘에서 나를 향해 송곳같이 찔러대는 거대한 물줄기는 충전 케이블이었고 링거 주사였다.

드디어 버스는 더 이상 갈 수 없는 남극해 선착장에 도착했다. 운전기사가 준비한 도시락과 피오르드 관광 유람선 티켓을 받아들고 일행들과 함께 승선했다.

ⓒ최광철 여행작가·방송인

배는 서서히 바다의 계곡 속으로 들어갔다. 깎아지른 산들이 포개진 틈새를 스쳐 지났다. 좌우 높은 산들을 보고 있자니 마치 등산을 하고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최광철 여행작가·방송인

‘앗, 돌고래다.’ 몸집 1.5미터 정도 크기의 깜장 눈동자, 온몸을 뒤뚱거리며 바위에 누어 관광객들을 구경하고 있었다.

나는 지구상에서 가장 청정한 곳으로 이름난 밀퍼드 사운드의 비경을 뇌리에 가득 담느라 바빴다. 배는 멋진 장관을 이루고 있는 스털링 폭포(Stirling Falls) 앞으로 서서히 다가갔다. 배 난간에 서서 사진을 찍다가 흩날린 폭포수 물방울에 몸을 숨기느라 선실로 쫒기면서 엄청난 생태계 속에 나 자신의 미천한 존재를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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