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긴 바람 괜찮겠다.’ 열 평 남짓 잔디 광장이 3미터 높이의 방풍 울타리로 둘러싸인 푸카키 홀리데이 파크에 텐트 셋이 오순도순 자리 잡았다.
저녁 식자재 사러 가까운 마켓을 찾아갔다. 소고기와 양파, 빵, 우유, 과일, 베이컨을 샀다. 만능 키가 반주로 마실 와인 한 병을 고르는 동안 인천 총각은 사이다를 한 병 샀다.
“자, 한 잔 하시죠. 오늘 정말 힘들었어요.” 나는 건배 잔을 들어올렸다. “정말 오늘 강풍에 큰 사고라도 나는 줄 알았어요.” 추니가 말을 이었다. “아마 풍속이 초속 30미터 이상은 됐을 거예요.” 방재 전문가인 만능 키가 말했다.
“이 슬리퍼 예쁘죠?” 인천 총각이 아까 마켓에서 새로 산 슬리퍼를 집어 들고 말했다. 자전거 트레일러 덮개가 강풍에 열리면서 신발이 종이비행기처럼 공중으로 날아오르던 모습이 떠올랐다.
“어, 이상해요. 사이다를 마셨는데 얼굴이 후끈거려요.” 인천 총각이 말했다. “여기 알코올 함량 4퍼센트라고 쓰여 있네요.” 만능 키가 사이다 병을 들어 보이며 말했다.
“아니 사이다에 웬 알코올이 들어갔대요?”
“매일 사이다 조금씩 마시면 서서히 적응되실 거예요.” 만능 키가 농담을 건넸다.
“저는 체질상 술을 못 마셔요.” 인천 총각이 슬그머니 일어나 텐트 속으로 들어갔다.
다음 날 아침. 푸카키 캠핑장을 출발하자마자 인근에 있는 여행 정보 센터에 들렀다. “오늘 오마라마(Omarama)까지 가서 1박을 하고, 그곳에서 버스로 린디스 밸리(Lindis Valley)를 넘어 퀸즈 타운으로 가려고 하는데 어떨까요?” 내가 물었다.
“오마라마는 작은 마을이라서 버스 타기가 어려워요. 여기서 곧바로 퀸즈 타운으로 가는 게 좋습니다.” 안내 센터 직원이 조언해줬다.
우리 일행은 험준한 고갯길의 교통사고 위험을 고려해 버스를 이용하기로 그 자리에서 의견을 모았다.
“여기 몇 시에 버스가 도착하나요?”
“10시 45분에요.”
“그럼 겨우 40분 남았는데 가능하나요. 자전거가 네 대 있거든요.”
안내 센터 여직원은 자전거 네 대를 버스에 실을 수 있는지 여부를 먼저 회사에 알아보겠다며 전화를 했다.
“일단 자전거 네 대는 실을 수 있답니다.”
“그런데 자전거를 포장할 시간이 부족할 것 같은데요.” 내가 물었다.
“혹시 저기 앞에 보이는 마켓에 가서 부탁해보십시오.”
안내 센터 길 건너 마켓에 찾아가니 철물점을 포함한 슈퍼마켓이었다.
“10시 45분 버스를 탈 수 있도록 시간 맞춰 자전거 네 대를 포장해줄 수 있겠어요?”
“네, 가능합니다.”
“아니. 어떻게?”
자전거 한 대를 꼼꼼히 포장하려면 적어도 한 시간 이상 걸리는데 어떻게 네 대를 그것도 혼자서 45분 안에 포장할 수 있다는 건지 의심스러웠다.
“자전거 포장비용은 한 대당 십오 불입니다.”
“좋아요. 하여간 제시간에 맞춰주세요.”
옆에서 지켜보는 내내 조바심으로 가득 찼다. 출발 시간 5분 전인데도 자전거를 박스에 넣지 않고 타이 끈으로 바퀴를 자전거 프레임에 묶고 있었다.
“박스에 넣지 않아도 돼요?” 내가 물었다.
“네. 앞바퀴를 빼 몸체에 단단히 묶고 핸들을 돌려주기만 하면 됩니다.”
내가 생각했던 자전거 포장 방식과는 달랐다. 또 버스에 자전거를 실으려면 별도로 한 대당 십 달러(팔천삼백 원)를 버스 기사에게 수고비로 지불하는 관행이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수고했어요. 고마워요.” 자전거 네 대와 버스가 동시에 정류장에 도착했다. 버스 기사는 뒷문을 열어 이미 넣었던 다른 승객들의 가방들을 꺼낸 다음 우리 일행의 자전거를 넣은 뒤에 다시 넣었다.
처음으로 버스 타니 기분 좋았다. 반 시간 정도 지나 오마라마를 지나자 높은 산악 도로가 이어졌다. 구글 지도를 열어보니 이곳이 바로 린디스 밸리였다.
가파르고 경사가 심했다. 게다가 갓길이 거의 없어 급커브 길에서는 뒤 차량이 앞서가는 자전거를 식별하기가 쉽지 않아 보였다.
‘안전이 우선이다.’ 춘천댁이 불의의 사고를 당해 중도에 포기했지만, 앞으로 위험한 구간은 버스를 이용하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뉴질랜드는 많은 외국 관광객들이 차량을 렌트 해서 여행하느라 사고도 종종 발생한다고 한다.
특히 인천 총각의 자전거 뒤에 달린 작은 리어카 모양의 트레일러가 갓길이 없는 도로에서는 흰색 차선 안쪽을 상당히 차지하고 달리므로 더욱 위험해 보였다.
뉴질랜드가 ‘자전거 천국’이라지만 도로에서 자전거를 타는 이들은 아주 드물었다. 그럼 도대체 어디서 자전거를 타는 걸까? 알고 보니 뉴질랜드는 주로 산악을 이용해 레저 스포츠를 즐기고 있었다.
특정 지역에 산악자전거 트레일을 만들어놓고 그곳까지 자전거를 차에 싣고 간다. 밋밋한 초보 코스부터 고난도 기술을 필요로 하는 다운힐까지 스릴과 모험을 즐기는 다양한 코스를 개발해놓았다.
그러니 도시와 도시를 이동해야 하는 자전거 여행객에게는 안전한 도로 여건을 기대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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