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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카포의 별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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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카포의 별밤

[‘바이크 보헤미안’ 최광철의 수상한 여행 3] ⑬기대의 대가

지구상에서 가장 아름답기로 이름난 테카포 호수(Lake Tekapo)는 어떤 모습일까. 본래 이곳은 뉴질랜드 원주민인 마오리족이 살고 있었는데 유럽인들이 이주해와 호숫가에 목장을 만들고 양을 키워왔다고 한다.

테카포 지역은 뉴질랜드의 다른 어느 곳보다 일조량이 많고 따뜻할 뿐 아니라 공기가 맑고 밤 시간에 빛 공해가 없어 천문 관측하기 좋은 곳으로도 소문난 곳이다.

ⓒ최광철 여행작가·방송인

이 호수는 서던 알프스(Southern Alps) 산맥 빙하에서 깎인 암석 분말이 녹아있어 옥색에 우유를 섞은 듯한 ‘밀키 블루(milky blue)’ 색깔을 띠었다. 옥빛 호수와 새파란 하늘이 한 무대에 어우러져 마치 거대한 천지 광장 같았다.

호수 건너편 민둥산이 겹쳐진 계곡 아래 새하얀 구름이 가득 메워져 있었다. 아마 해무가 옥빛 호수에 취해 하늘로 오르지 못했나 보다.

나는 귀퉁이가 헤진 나무 벤치에 앉아 물놀이하는 가족들을 카메라에 담았다. 호숫가 자갈길을 따라 길게 핀 루핀(Lupine) 꽃은 보라색을 발광해 두려움마저 자아냈다. 오늘은 예쁜 것도 별로 없고, 그리 미운 것도 없다. 춘천댁 내외분은 지금쯤 어디에 가있을까?

ⓒ최광철 여행작가·방송인

ⓒ최광철 여행작가·방송인

어디론가 휘달려 갔다가 돌아오는 만능 키의 옷차림이 빨간 점퍼로 바뀌었다. 테카포 호수의 아름다움에 놀라기보다는 요 며칠 동안 추워 오들오들 떨며 지샌 기억이 앞선 모양이다.

새로 산 점퍼 가슴엔 이곳 테카포 호수 바로 옆에 있는 ‘선한 목자 교회’의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이 교회는 뉴질랜드에서 가장 사진에 많이 찍힌 교회로 알려져 있는데 호수와 한 뼘 사이 작은 언덕 위에 세워져 있었다. 신비한 호수와 어우러져 성스러움을 더했다.

해 질 녘에 인천 총각은 호수를 한 바퀴 돌겠다며 왼쪽 벼랑으로 내려갔는데 길이 막혀 되돌아와 다시 호수 반대편으로 달려갔다.

석양은 다른 세상이다. 저 멀리 호수를 에워싼 회색 민둥산이 분홍색으로 바뀌자 옥빛 호수는 연보라색으로 변했다. 나는 하릴없이 벤치에 앉아있었다. 시커먼 새들이 깍깍 어둠 속으로 날아들었다.

ⓒ최광철 여행작가·방송인

ⓒ최광철 여행작가·방송인

여느 때 같으면 깊은 잠에 빠졌을 시간에 테카포의 하늘은 별들이 무리를 짓기 시작했다. 손 뻗으면 닿을 듯 가까이 깜빡이는 별이 하나 둘 셋 자꾸 늘어났다. 드디어 희뿌연 별무리가 두터운 강을 이뤘고, 마구 뒤섞여 저쪽 산 너머로 쏟아져 내렸다.

“퀸즈 타운에 도착했어요. 정말 아쉬움만 가득합니다. 눈물이 핑 도네요.” 늦은 밤 춘천댁이 카톡을 보내왔다.
오늘 다행히 치치 남편이 동행하는 바람에 퀸즈 타운에 먼저 도착해 관광을 했지만 마음은 우리와 함께 자전거를 타고 있었나 보다.

“이번 여정 끝까지 함께하지 못해 아쉽지만 춘천댁 내외분은 이미 뉴질랜드 횡단에 성공하신 겁니다. 누구든 쉽게 도전할 수 없는 장도에 참여했으니까요. 누구든 실수는 있게 마련이지요. 그게 실패는 결코 아닙니다. 끝까지 완주 못 하신 거 너무 의기소침해 하지 마세요. 우리 달청 팀은 춘천댁 내외분과 뉴질랜드 횡단을 함께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내외분 남은 여정 알차게 보내시고요, 귀국해서 또 함께 라이딩 해요.” 나는 답 글을 보냈다. 가슴이 다시 먹먹해졌다.
ⓒ최광철 여행작가·방송인

‘무슨 여름이 이렇게 추워요’ 아침에 충전기를 가지러 휴게실에 들어가니 만능 키가 마루 침상에 누워있었다. 어젯밤 이곳에서 늦게까지 TV 보다가 그냥 잤단다.
“데카포는 유난히 더 추워요. 여기서 건전지 충전도 하고, 인터넷도 하고. 추위를 피할 수 있어 좋았어요.” 만능 키의 기분이 좋아 보였다.
“그런 줄 알았으면 나도 여기서 잘 걸 그랬어요.”

만능 키는 스페인 산티아고를 걸어서 완주한 적도 있다지만 직접 텐트 치며 야영 생활을 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란다. 한여름이라서 더울 거라고 생각해 옷가지나 침낭을 여름용으로 가져오는 바람에 추워서 견디기 힘든 모습이었다.
“가끔은 민박이나 호텔 같은 곳에서도 자면 좋겠어요.”
“네,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어제 점퍼 잘 사셨네요.”

오전 따스한 햇살 맞으며 나는 일행과 같이 테카포 호수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캠핑장 옆 야산에 올랐다. 캔터베리 대학교에서 운영하고 있는 마운트 존(Mount john) 천문 관측소에 오르자 바람이 거세 제대로 서있을 수가 없을 정도였다.

정상에 올라 사방을 둘러보니 그동안 나는 데카포 호수 한쪽 귀퉁이만 보면서 감탄하고 있었다. 저 멀리 뉴질랜드 최고봉인 만년설 덮인 쿡 산(Mt Cook)에서부터 여기까지 광활한 분지를 이루고 있었다.

산꼭대기 커피숍에서 롱블랙 한 잔씩 들고 다 함께 브라보를 외쳤다. 먹먹하던 가슴이 뻥 뚫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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