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정몽준 후보가 22일 후보 단일화를 위한 극적 돌파구를 마련하는 데 성공했다. 정몽준 후보측 요구를 노무현 후보가 전폭 수용함으로써 자칫 깨지는가 아닌가 싶던 TV토론이 마침내 성사되기에 이른 것이다.
우여곡절 끝이기는 하나 다행스런 일이다. 만약 이번 TV토론이 성사되지 못했다면 다수 국민은 "혹시나 했더니, 역시나..."라는 또 한차례의 깊은 좌절감을 맛보아야 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각종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국민의 60% 가량이 후보단일화에 적잖은 기대와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가 "후보단일화에서는 그 어떤 정치적 명분이나 정당성을 찾을 수 없다"고 주장하고 있음에도 말이다.
사실상 이회창 후보나 이 후보 지지자들 입장에서 보면 후보단일화란 여간 분통 터지는 일이 아닐 수 없다. 후보단일화만 안 되면 '이회창 대세론'은 그대로 굳어질 가능성이 농후하기 때문이다.
***TV토론 어렵게 성사는 됐으나...**
하지만 정치는 '상대성 게임'이다. 노무현 후보, 정몽준 후보 지지자들의 입장도 있고 아직 지지할 후보를 정하지 못한 유권자들도 고려해야 한다. 그런 면에서 국민의 60%가 후보단일화 논의에 강한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는 현상 자체가 후보단일화 논의를 가능케 한 토대가 됐다 할 것이다.
노무현 후보는 22일 정몽준 후보측 요구를 전격수용하겠다고 발표하면서 "단일화가 안 됐을 때 국민은 실망하고 정치와 정치인을 불신할 것"이라며 "예선과 본선의 승리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우리 정치가 국민의 신뢰를 얻는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맞는 말이다. 작금같은 심각한 정치 불신기에 정치인에게 '국민의 신뢰'를 상실하는 것보다 더 큰 손실은 있을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후보단일화로 쏠린 국민적 여망에 과연 끝까지 노무현, 정몽준 두 후보가 부응할 수 있겠는가이다. 단일후보를 결정짓는 오는 26일까지 시간은 불과 나흘밖에 남지 않았지만 넘어야 할 장애는 적지 않아 보이기 때문이다.
이같은 장애들 가운데 가장 주위의 우려를 많이 낳고 있는 장애는 '여론조사 결과 불복' 사태다. 이미 합의문에는 이를 가능케 할 수도 있는 조항이 삽입돼 있다. 만에 하나 어느 후보가 여론조사 결과에 불복해 후보단일화 자체를 백지화하는 사태가 온다면 상황은 그것으로 '끝'이다.
결과에 불복한 후보는 정치생명에 치명적 손상을 입을 것이다. 아마도 재기 불가능할 정도일 것이다.
다른 후보도 후보단일화 효과를 그다지 향유하지 못할 것이다. 상대적으로 우월함이 드러나겠지만, '이회창 대세론'과 싸우기에는 역부족일 가능성이 농후하다.
***지금 우리는 '아름다운 패자'를 필요로 한다**
노무현, 정몽준 후보 둘다 한때 어마어마한 정치바람을 일으킨 적이 있다. 그러다가 어느날 그 바람이 갑작스레 수그러들었다. 여론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는 '구태의연함'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지금 두 사람은 후보단일화라는 '제3의 바람'을 불러일으키려 하고 있다. 최근 여론조사에서 후보단일화만 되면 누가 단일후보가 돼도 이회창 후보를 오차범위 밖에서 이길 수 있으리라는 결과가 나오는 것만 보아도 앞으로 몰아닥칠 '제3의 바람'의 위력은 가히 미뤄 짐작할 만하다.
하지만 이같은 바람이 불기 위해선 하나의 '필요충분조건'이 갖춰져야 한다. '아름다운 패자'가 그것이다.
노무현, 정몽준 후보 모두가 지금은 '승자'가 될 것임을 강하게 확신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두 사람 가운데 한 사람은 누군가 부득이 '패자'가 돼야 한다.
이때 중요한 것은 누가 '승자'가 되는가보다 '패자'가 어떤 태도를 취할 것인가이다. '제3의 바람'이 불 것인가, 아니면 찻잔속 미풍으로 그치게 할 것인가를 결정짓는 이는 다름아닌 '패자'인 것이다.
'패자'가 승자의 어깨를 힘껏 껴안고 '동지'의 모습을 보인다면 그때부터 거센 바람이 불기 시작할 것이다.
반면에 '패자'가 결과에 불복한 채 등을 돌려 떠난다면 그후 상황은 보나마나다.
지금 우리 정계는 '아름다운 패자'를 절실히 필요로 하고 있는 것이다.
***교자필패 애자필승**
옛말에 "교자필패 애자필승(驕者必敗 哀者必勝)"이라는 말이 있다. "교만한 자는 반드시 패하고 애처로운 자가 이긴다"는 가르침이다.
'아름다운 패자'는 이번 대선에는 도전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아름다운 패자'이기에 국민은 그를 반드시 5년뒤 부를 것이다. 안나가겠다고 해도 국민들은 나오라고 성화를 부릴 것이다.
노무현, 정몽준 두 후보 모두 이제 50대다. 시간은 많다. 반드시 승자가 되겠다는 전투욕을 다지는 동시에, '아름다운 패자'가 되겠다는 마음가짐도 함께 갖춰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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