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도시의 꽉 막힌 도로와 여드름은 '붕어빵'

함익병의 '피부 이야기' <4>

***여드름의 원인과 신도시 교통문제**

세상의 모든 일들은 원인과 결과라는 인과 관계로 얽혀있듯이, 의학적인 면에서도 어떤 질병이라는 결과가 생기는 데에는 그 원인이 있습니다. 제가 피부과 전문의라서 그런지 어떤 사회적 이슈를 바라볼 때에 자주 접하는 피부 질환과 자연스럽게 연결지어 생각해보는 습관이 있습니다.

지금 운영하고 있는 병원의 위치가 이화여대 입구인데, 젊은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이라서 여드름 환자들이 병원을 많이 찾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드름의 원인을 환자에게 설명하다 보면 신도시에서 교통체증이 생기는 원인과 여드름의 원인이 흡사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사실 저도 일산 신도시에서 4년쯤 생활을 했었는데, 출퇴근할 때마다 지옥과도 같은 교통전쟁을 치렀습니다.

그럼 여드름이 생기는 원인과 신도시의 교통체증 현상에는 어떤 유사한 점이 있는 지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여드름이 생기는 원인을 간단하게 살펴보겠습니다. 여드름은 사춘기가 되어 체내에서 안드로젠이라는 호르몬이 분비되기 시작하면서 생기는데, 안드로젠은 피부에 있는 피지선(기름샘)을 자극하여 피지 분비를 일으키는 호르몬입니다. 안드로젠의 영향으로 분비되기 시작하는 피지는 모공(털이 모낭으로부터 피부 밖으로 빠져나오는 털구멍을 말함)으로 배출되어야 하는데, 사춘기 초기에는 아직 모공이 제대로 만들어져 있지 않기 때문에 피지 배출이 원할하지 못합니다. 따라서 만들어진 피지가 모낭에 축적되고, 이렇게 쌓인 피지는 염증반응을 일으켜 여드름이 생기게 됩니다.

즉, 여드름의 원인을 정리해보면 (1)피지가 과다하게 분비되는 요인과 (2)피지 배출 경로인 모공이 막혀 피지 배출이 원할하지 못한 요인으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피지 분비가 많은 것은 유전적으로 사춘기에 분비되기 시작하는 안드로젠에 대해 피부가 민감하게 반응하여 피지선에서 피지 생성을 많이 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유전적인 요인외에도 정신적인 스트레스 때문에, 혹은 불규칙적인 식사, 불충분한 수면등으로 인해서 피지가 많이 분비될 수 있습니다.

피지 배출 경로인 모공이 막히는 것은 사춘기 초기에는 아직 모공이 성숙하지 못했기 때문이지만, 사춘기 이후에도 여러 요인들로 인해서 모공이 막힐 수 있습니다.

우선 모공을 막는 중요한 요인으로 여드름 균(Propionibacterium acne)이 있습니다. 피지 분비가 늘어나면 피지를 먹고사는 세균인 여드름 균의 증식이 활발해지고 이들 세균들이 피지를 분해하여 만들어내는 유리지방산(free fatty acid)이 모공을 둘러싸고 있는 각질층을 자극하여 각질이 두터워져 모공을 막게 됩니다.

또한 사춘기이후가 되면 여성의 경우 메이컵을 하는데, 이로 인해 모공이 막힐 수도 있습니다. 유분이 많은 제품을 사용하면 모공이 쉽게 막히게 되므로 여드름이 잘 생기는 여성의 경우 가급적 유분이 없는 오일-프리 제품으로 가볍게 화장하는 것이 여드름 예방에 도움이 됩니다.

지금까지 설명 드린 여드름이 생기는 원인을 찬찬히 생각해보시면 우리나라의 신도시에서 심각한 교통체증이 생기는 원인과 유사한 점이 많다는 것을 금방 짐작하실 수 있을 겁니다. 사춘기가 되면서 갑자기 피지 분비가 늘어나는 것은 짧은 기간동안 일정한 지역에 과도하게 밀집된 아파트를 짓는 것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아파트 주차장마다 빼곡히 들어서 있는 승용차가 바로 과잉분비되는 피지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또한 수많은 승용차들이 신도시의 출입로에서 막혀 서로 엉켜있는 모습을 보면, 좁은 모공때문에 밖으로 빠져나오지 못해 뭉쳐진 피지 덩어리가 연상되는 것은 제가 어쩔 수 없는 피부과의사이기 때문일 겁니다.(X눈에는 O만 보인다는 표현을 여기서 인용하면 제가 X가 되는 건가요? 웃자고 한 이야기입니다.)

피지는 분비되기 시작하는데, 피지가 나갈 수 있는 모공은 아직 채 성숙하지 않아서 모낭에 피지가 축적되는 현상은 아파트는 이미 만들어져서 주민들은 승용차를 가지고 다니는데, 아직 신도시의 진입로나 기간 도로망은 완성되지 않은 상태와 다를 바가 없습니다.

도로가 완성되었지만 주민들이 소유하고 있는 승용차 수에 비하면 터무니없이 좁거나, 주먹구구식의 교통신호 체계와 부실한 교통안전 시설로 인해 교통 정체와 사고가 빈발하는 현상은 유전적으로 피지 분비가 많은 지성 피부를 가진 사람은 나이가 들어서 모공이 어느 정도 열려도 분비되는 피지의 양을 감당하지 못하고 여드름이 반복적으로 생기는 현상과 너무나 흡사합니다.

처음 설계 단계에서부터 잘못 예측된 교통량은 도시가 완성된 다음에도 줄어들지 않는데, 이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도로망은 신도시가 완성된 후에는 다시 확장하는 것이 어렵습니다. 이런 현상은 유전적으로 피부가 지성인 경우에는 나이가 들어도 피지분비량이 줄어들지 않아서 여드름이 재발하는 것에 비유할 수 있을 겁니다.

사춘기(思春期)라는 것은 어린이가 성인으로 거듭나기 위해 겪어야만하는 과도기적인 생리현상입니다. 이 시기에는 여드름이 많이 생기지만 나이가 듦에 따라 모공이 피지분비량에 맞추어 열리면서 여드름이 서서히 좋아지는 것처럼, 우리나라도 아직은 선진국의 문턱에서 성장의 고통을 앓고 있는 사춘기적인 단계라고 가정한다면, 이런 신도시 교통체증 문제도 조금만 더 참고 견디면 해결될 수 있으리라 스스로를 위안해 봅니다. 하지만 여드름을 치료하기 위해서는 피부과 전문의의 도움을 받아 환자 자신이 끊임없는 노력을 해야만 하듯이, 우리의 교통문제도 행정전문가의 노력과 시민들의 적극적인 협조가 있어야만 해결될 수 있을 겁니다.

운전면허증을 취득하지 못해(사실 저는 운전 면허시험에서 여덟 번 떨어진 경험이 있습니다) 도로에서 자동차 핸들이라고는 잡아본 적도 없는 입장에서 교통문제에 대해 언급한다는 것이 어쩐지 어색합니다. 그래도 여드름(교통체증)을 없애기 위해서는 피지분비(교통량)를 억제하고, 막힌 모공(좁은 도로나 불합리한 신호체계)을 열어야한다는 ‘여드름치료의 기본원칙’을 교통문제 해결에 그대로 적용해 보면 교통량을 줄이기 위해 자가용 이용을 최소화하고, 좁은 길을 넓히는 것만이 최선의 방법일 겁니다.

돈이 많이 드는 도로확장은 재원이 확보되어야 가능하겠지만, 승용차 이용을 자제하는 것은 우리 시민들의 의지만으로도 할 수 있는 일이라 생각입니다. 눈앞의 편리함을 서로 조금씩만 유보할 수 있다면, 막히지 않는 도로를 모두가 편하게 다닐 수 있을 것 같네요.

이런 비교를 하다보니 커다란 사회적 문제나 개인의 자그마한 질병이나 그것이 생기는 원인이나 해결 방법에 있어서 기본적 원칙에는 큰 차이점이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또한 큰 사회적인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그 사회를 이루는 구성원들의 자발적이고 적극적인 참여 없이는 해결이 쉽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여드름을 치료하기 위해 피지를 억제하는 약을 사용하듯이 교통 체증을 막기 위해 승용차 이용을 자제하자고 하면 너무 지나친 논리의 비약이 될까요? 하지만 현실적으로 승용차 이용억제책 외에 지금의 교통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뾰쪽한 대책이 없다는 것을 인정한다면, 적절한 수준으로의 교통량을 억제하는 대책을 찾아 보아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물론 이런 인기없는 정책을 시행하기가 쉽지는 않겠지만 모두의 편리함을 위해 개인의 절제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

여드름의 원인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가 교통 문제로 이야기가 흘러가 버렸네요. 이제 아침의 쌀쌀한 찬 공기가 당연하게 여겨질 만큼 초겨울로 성큼 들어섰습니다. 가습기의 사용을 잊지 마시고, 차고 건조한 날씨에는 따뜻한 물을 마시는 것이 피부나 호흡기 질환의 예방에 도움이 되므로 따뜻한 차나 물을 자주 마시도록 하세요.

프레시안 독자님들 모두 모두 건강하시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