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일 “한국 D램 업계가 정부로부터 보조금을 받았다”며 미국 무역당국에 제소한 세계 2위 D램업체인 미국의 마이크론 테크놀로지가 그동안 밝히지 않아 왔던 구체적 보조금 액수까지 제시하고 나서 파문이 커지고 있다.
반도체업계 전문 인터넷 사이트인 EBN은 12일(현지시간) “마이크론테크놀러지는 지난해 한국 정부가 하이닉스에 대한 금융지원의 일환으로 1백18억6천만달러(약 14조원)에 이르는 불법 보조금을 지급했다고 주장했다”고 보도했다.
이같은 마이크론의 주장은 그동안 한국의 외무부가 마이크론테크놀로지의 주장에 대해 미정부에게 “근거가 없다”며 기각해 달라는 공식요청을 앞두고 있는 예민한 시점에 나온 것이어서 주목된다.
***마이크론, "한국정부 하이닉스에 14조원 불법지원"**
마이크론은 이번에 보조금을 밝히기 전에 "한국 정부가 국내 D램 업계에 수백억 달러 규모 구제금융을 제공한 것은 미국 상계관세법과 세계무역기구(WTO) 규정에 위배된다"며 "부채 탕감, 출자 전환, 정부 주도의 회사채 차환 발행 , 특별 수출금융, 특별 세제혜택 등이 보조금 지급행위에 해당한다"고 주장해 왔다.
스티브 애플턴 마이크론 회장은 "지속적인 한국 정부의 D램 업계 지원은 자유시장 원칙에 위배되는 행위"라고 비난하고 "이로 인해 국제 D램 시장에 공급과잉 현상을 초래했다"고 말했다.
EBN에 따르면 마이크론은 이달 초 미국 상무부 등에 제출한 1백51쪽 분량의 소장에서 지난해 한국 정부는 하이닉스의 채권은행단을 통해 20억달러 규모의 부채를 출자 전환했으며, 정부 보증하에 49억5천만달러의 부채를 탕감했다고 지적했다. 마이크론은 지난해 5월 기업 구조조정의 일환으로 이뤄진 21억2천만달러 규모의 지원도 이에 포함된다고 밝혔다.
마이크론은 한국 정부의 보조금 지원 때문에 지난 8월에 끝난 2002년회계연도에 9억7백만달러의 순손실을 기록하는 등 피해를 보았다고 주장했다.
마이크론은 하이닉스와 함께 제소한 삼성전자에 대해서도 한국 정부가 산업기술펀드를 통해 시장금리보다 낮은 금리로 대출함으로써 혜택를 입었다며 "삼성전자는 하이닉스처럼 대규모 지원을 받지는 않았지만 외국 업체들에 비해 불공정한 이익을 챙길 수 있는 지원을 받았다"고 강조했다.
***앞으로 1년이상 조사 진행될듯**
미국 상무부는 오는 21일까지 한국산 D램 반도체에 대한 상계관세 조사 개시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다. 미국 통상법에 따르면 제소가 있은 후 20일 안에 조사 개시 여부를 결정하며 국제무역위원회(ITC)는 제소일로부터 45일 안에 산업 피해 여부에 대한 예비 판정을 내리고 상무부가 85일 안에 보조금 지급 유무에 대한 예비판정에 이어 최종 판정을 하게 돼 있다.
미국의 IT 전문지 더스트리트닷컴은 마이크론의 제소가 있는 직후 업계 전문가들의 분석을 인용, “마이크론의 제소는 현실적인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노력이라기 보다는 한국업체들과 자국 정부에 대해 압력을 행사하기 위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업계 전문가들에 따르면 마이크론의 제소에 따라 정식 조사가 개시되면 최소한 1년이상이 소요될 것으로 알려졌다. D램 업계에서 1년은 매우 긴 시간이기 때문에 질질 끌 경우 적지 않은 피해가 예상된다.
마이크론이 하이닉스 등 국내 반도체를 물고 늘어지는 것은 마이크론 자체의 위기감이 크기 때문인 것으로 전문가들은 분석하고 있다. 마이크론은 올해 3분기를 포함, 7분기 연속적자라는 사상 최악의 경영실적을 기록하면서 공장폐쇄 등 극단적인 구조조정까지 고려하고 있는 가운데 화살을 외부로 돌리기 위해 한국 업체를 제소하는 강공책을 선택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삼성전자까지 물고 늘어지는 이유는?**
특히 마이크론이 하이닉스와 함께 세계 최대의 D램 메이커인 삼성전자를 제소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어서 이번 제소가 자칫 업체간 분쟁을 넘어 정부간 힘 겨루기로 확대될 가능성도 있는 복잡한 사안으로 변질되고 있다.
삼성전자는 객관적으로 기술과 시장 지배력에 있어 마이크론을 뛰어넘는데다 순수 D램 메이커로 부르기 무색할 정도로 최근 제품 다각화를 이뤘기 때문에 마이크론이 특정 업체가 아닌 한국 D램 제조업체들을 제소한 것은 국가 대 국가의 분쟁으로 사태를 확대하려는 의도로 해석되고 있다.
국내 D램 업체에 대한 한국정부의 보조금 지급 여부를 둘러싼 논란은 5년 전인 IMF 구제금융 차관 도입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때부터 마이크론은 한국정부가 규정을 어겨가며 IMF 차관으로 한국 D램 제조업체에 끊임없이 보조금과 각종 특혜를 제공해왔다는 의혹을 제기해왔다.
마이크론의 이같은 주장은 D램 경기가 호황일 때는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가 경기가 나빠지면 다시 고개를 들곤 하는 양상을 반복해오다가 7분기 연속적자를 기록한 시점에서 다시 제기된 것이다.
특히 하이닉스와의 인수합병이 무산되자 자신의 경쟁자로 남게 되는 하이닉스를 견제하기 위해 마이크론이 그동안 별러왔던 제소를 미룰 이유가 없다고 결심한 것 같다는 것이 업계의 시각이다.
하이닉스는 채권단의 채무조정은 정부보조금이 아니라는 반박문을 낸 데 이어 사태가 장기화되는 최악의 경우에는 제소의 범위가 미치지 않는 미국 유진공장을 가동하면 되기 때문에 피해는 없을 것이라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삼성전자 역시 정부보조금을 받은 적이 없는데 어떻게 제소대상이 될 수 있는지 의아하다는 입장이다. 삼성전자는 조사가 진행될 경우 반박자료를 제시하는 동시에 적극 대처할 것이라는 계획을 밝혔다.
그럼에도 미국 IT경기 및 PC산업 부양에 신경을 쓸 수밖에 없는 미국정부의 입장이 이번 사태에 반영될 경우 객관성보다는 정부간 협상능력이 결과를 좌우할 수도 있을 것이라는 우려도 일각에서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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