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선진국모임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0개 회원국 중 우리나라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총 교육비 지출비율이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 수치에는 그러나 연간 26조원에 달하는 과외비·학원비 등 사교육비는 포함되지 않은 것이어서, 사교육비까지 합할 경우 우리나라 학부모들이 지는 교육비 부담은 세계적으로 비교대상을 찾을 수 없을 만치 '살인적'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학부모들이 이처럼 엄청난 교육비 부담을 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초·중등학교의 수업환경은 OECD국가중 가장 열악하며 교육투자효율도 형편없는 것으로 드러나 '혁명적 차원의 교육개혁'이 단행되지 않고선 우리나라의 미래는 없다는 암담한 결론에 도달하게 했다.
***학부모 교육비 부담, 2등인 미국보다 3배나 높아**
12일 OECD가 발표한 <2002년 교육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GDP 대비 교육비 지출(99년 기준)은 OECD 국가 평균 5.8%보다 1%포인트 높은 6.8%로 나타났다. 이는 OECD 회원국 중 가장 높은 수치로, 덴마크와 스웨덴이 각각 6.7%, 노르웨이 6.6%, 미국 6.5%, 오스트리아 6.3%, 프랑스 6.2% 등이 그 뒤를 이었다.
이번 보고서는 30개 OECD회원국 외에도 브라질, 중국, 이스라엘 등 16개 비회원국의 각종 교육 관련 자료를 함께 조사한 것이다.
보고서에 따르면, 이처럼 교육비 지출비율이 세계 1위를 차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우리나라 정부가 지출하는 교육관련 공공지출은 GDP의 4.1%에 불과해 조사국 평균 4.7%에도 못미치고 있다. GDP대비 공공지출 비중이 가장 큰 국가는 덴마크(6.4%), 프랑스(5.8%) 순이었다.
이처럼 정부 교육투자가 평균이하임에도 불구하고 전체 교육비 지출이 세계 1위를 차지한 것은 교육에 대한 민간 의존비율이 유난히 높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총교육비 지출 중 민간지출이 차지하는 비율은 2.7%로 나타났다. 여기서 말하는 민간지출이란 등록금, 책값 등을 가리킨다. 반면에 OECD가입 국가들의 평균 민간지출 교육비는 GDP대비 1.1%에 불과했다. 우리나라 학부모들이 다른 나라 학부모들에 비해 평균치의 두 배가 넘는 교육비 부담률을 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숫자다.
더욱 충격적인 사실은 연간 26조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되는 과외비와 학원비 등은 이번 통계에서 빠졌다는 사실이다. 이 숫자까지 합할 경우 학부모들이 부담하는 민간지출 교육비만 GDP대비 5%가 넘을 것으로 추정된다. 말 그대로 전세계적으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살인적 교육비 부담'이다.
참고로 우리나라 다음으로 민간부문 교육비 비율이 높은 나라는 미국으로 GDP의 1.6%였으며 캐나다 1.3%, 독일 1.2%, 일본 1.1% 등으로 나타났다. 우리나라 학부모들은 세계최대 교육강국이라 불리는 미국의 학부모들보다 3배나 많은 부담을 지면서도, 허구헌 날 교육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 셈이다.
요컨대 한국은 '학부모 살인공화국'인 셈이다.
***교실 교육환경은 세계 최하위**
이처럼 과도한 교육비 부담으로 학부모들의 허리가 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부의 교육지출이 선진국 평균에도 못 미침에 따라 학생들은 열악한 환경에서 교육을 받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초등학교의 경우 학급당 학생수는 36.5명으로 OECD 평균(21.9명)보다 15명 정도 많았으며 교사 1인당 학생수도 32.1명으로 OECD 평균(17.7명)의 배에 가까웠다.
중등학교의 경우도 학급당 학생수는 38.5명으로 OECD 평균(23.6명)보다 훨씬 많았고 교사 1인당 학생수도 21.5명으로 OECD 평균(15.0명)을 크게 상회했다.
우리나라의 공교육에 관해서는 유엔산하 경제·사회·문화적 권리에 관한 위원회가 지난해 이례적으로 정부에 강화방안을 마련하라고 권고할 정도로 취약하기로 악명 높다.
"학교에선 자고 학원에서 밤 늦게까지 공부하는" 현상이 일반화될 정도로 학생들이 학교보다는 학원을 선호하게 된 배경에는 입시제도의 문제점외에 교육투자를 소홀히 하고 있는 정부에 큰 책임이 있음을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OECD는 또 10개국(한국 제외)을 대상으로 대학교육을 투자로 간주할 때의 연수익률을 계산한 결과, 영국과 미국이 각각 17%와 14%로 가장 높은 수익률을 보였다고 밝혔다. 이 수익률은 학비, 학위 취득 기간, 세금, 실업 가능성 등을 감안해서 산출한 수치다. 우리나라의 경우는 OECD 조사국의 밑바닥 수준이었다.
최근 초년생 시절부터 자녀들을 해외로 조기유학 보내는 현상과 관련, 학부모들이 "투자 효율성 측면에서 보면 차라리 미국에서 교육시키는 게 돈이 적게 든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 전혀 억지가 아님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지금 우리에게 가장 절실한 것은 '교육혁명'**
그래도 한가지 위안이 되는 것은 엄청난 사교육비를 투입해서인지 우리나라 학생들의 학업성취도는 비교적 높은 것으로 밝혀졌다는 사실이다. 15세 학생 기준 학업성취도 조사에서 우리나라는 과학의 경우 1위, 수학은 2위를 차지하는 등 전항목에서 고루 우수한 것으로 파악됐다.
점수별로 보면 과학에서는 우리나라 학생들이 평균 5백52점으로 가장 높은 점수를 받았으며 일본 5백50점, 핀란드 5백38점, 영국 5백32점 등이 뒤를 이었다. 또 수학에서는 일본이 5백57점으로 가장 높았고 우리나라가 5백47점, 뉴질랜드 5백37점, 핀란드 5백36점 순이었다.
읽기에서는 5백25점으로 핀란드(5백46), 캐나다(5백34), 뉴질랜드(5백29), 호주(5백28),아일랜드(5백27)에 이어 6번째로 점수가 높았다. 전반적으로 우리나라는 핀란드, 일본과 함께 성취도가 높고 학생간 격차가 크지 않은 것으로 분석됐다.
하지만 이같은 과학 및 수학 부문에서의 우수성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대학의 경우 만성적인 이공계 학생 모집 미달 사태로 국가산업의 기간이 흔들리는가 하면, 과학 관련 노벨상 수상자 한 명을 배출하지 못할 정도로 상급학교로 진학하면서 과학적 재능은 철저히 소외되고 도태되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다. 말로만 '교육입국' '기술입국'을 외칠 뿐, 이를 뒷받침해야 할 정책이 부재(不在)하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이번 OECD 보고서는 전혀 새로운 사실이 아니면서도 우리 사회가 지금 '해야 할 일'의 가장 최우선 과제가 무엇인가를 절감케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하겠다. 지금 우리에게 가장 절실하게 필요한 것은 '교육혁명'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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