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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ㆍ가부장제에 맞섰던 여성독립운동가 그들은...

마산 김명시 ‧ 진해 김조이 ‧ 하동 조수옥 ‧ 통영 최덕지 등 재조명

▲일제에 맞선 여성독립운동가 김조이. ⓒ창원시
(뒷면)

창원지역에서 가장 거세게 일어났던 항일독립운동, 4.3삼진의거 100주년을 맞아 지역의 여성독립운동가들을 재조명하고 있다.

흉흉했던 시대인 만큼 당시에는 온 가족이 독립운동에 뛰어든 경우도 있었다.

창원시 마산합포구 동성동에서 태어난 김명시는 오빠 김형선, 남동생 김형윤과 함께 항일운동에 헌신한 인물이다.

그녀는 마산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하고 고려공산청년회 유학생으로 선발돼 모스크바 동방노력자공산대학에 입학했다.

이후 학업을 중단하고 상해에서 사회주의운동, 조선의용군 활동 등을 펼쳤다. 해방 후 서울로 돌아왔지만 좌익계 숙청 바람이 불었을 때 체포돼 유치장에서 목을 매고 비극적으로 생을 마감했다.

김명시와 함께 모스크바에서 유학한 김조이는 진해 출신으로, 남편 조봉암과 함께 독립운동을 펼쳤다.

1925년 무렵부터 사회주의운동과 여성운동에 관여하기 시작해 광복 후에는 전조선민중운동자대회 준비위원, 민주주의민족전선 중앙위원 등을 역임했다.

지난 2008년 건국포장이 추서됐는데, 이는 사회주의 계열임에도 정부로부터 인정받았다는 의미가 있다.

창원지역 출신은 아니지만 창원에서 독립운동을 펼친 여성들도 있다. 바로 통영출신 최덕지와 하동출신 조수옥이다.

최덕지는 우리나라 여성목사 중 한 사람으로, 마산 의신여학교에서 근대교육을 접하고 민족운동과 여성운동을 전개했다.

일제의 신사참배‧일장기 경례‧창씨개명 등에 항거해 옥살이를 하기도 했다. 조수옥 역시 신사참배 반대운동 혐의로 평양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르고 광복과 함께 출옥했다.

▲조수옥 최덕지 모습. ⓒ창원시

이후 그녀는 마산에 아동복지시설 인애원을 설립해 사회복지에 앞장섰다. 170여 고아들의 어머니가 되고, 노인병원을 설립하는 등 사회사업가로 평생을 살았다.

이처럼 항일독립운동에는 성별‧나이가 중요치 않았다. 그럼에도 그동안 여성독립운동가로 유관순 열사만 부각됐던 것은 여성의 독립운동이 내조나 보조 활동 정도로 치부됐기 때문이다. 남성 독립운동가에 비해 자료도 턱없이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알고 보면 당시 항일독립운동을 펼친 여성들은 남성보다 더 큰 용기를 필요로 했다. 누군가의 어머니, 누군가의 아내로만 불리던 여성들이 남성의 울타리에서 벗어나 정체성을 찾고, 가부장제와 봉건적 잔재에도 맞서야 했기 때문이다.

벌써 100년이 흘렀다. 여성 독립운동가들의 흔적과 그에 대한 기억들이 더 흐릿해지기 전에 발굴을 서둘러야 한다. 허성무 창원시장도 “그동안 여성독립운동가들이 소외됐다는 평가가 많다”며 “기미년 독립만세운동 100주년을 맞아 여성독립운동가들에 관심을 가지고 재조명할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창원시는 읍면동 행정복지센터에 ‘여성독립유공자 발굴 접수창구’를 운영하고 있다. 발굴된 독립유공자가 있을 경우 당사자나 유족 등이 포상 신청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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