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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리안 르네상스: 망가진 일본에게 주는 교훈"

FT 심층분석, "일본은 밑창 뚫린 타이타닉호"

일본의 금융개혁이 더 이상 미뤄질 수 없다는 위기감이 고조된 가운데 현재 일본에서는 "옛제자 한국의 금융개혁을 배우자"라는 강경파와 "한국과 일본의 상황은 전혀 다르다"는 현상유지론파와의 논쟁이 격렬하다.

이런 와중에 영국의 경제전문지 파이낸셜 타임스(FT)는 25일(현지시간) 11면 코멘트 앤 애널리시스 한 면을 통채로 할애, '코리안 르네상스: 망가진 일본에게 주는 교훈'이라는 심층분석기사를 게재했다. FT 경제칼럼니스트 데이비드 필링은 이 기사에서 "일본이 추구해야할 금융개혁 모델은 이미 한국에서 이루어졌다"며 한국에게서 배우라고 조언하고 있다.

하지만 필링은 이 칼럼에서 현재 일본이 직면한 위기의 주변여건은 97년 한국이 처했던 상황보다 훨씬 나쁘다며, 과연 '배 밑창에 구멍이 뚫린 타이타닉호' 신세인 일본이 회생가능할 것인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우리 경제와도 밀접한 관계에 있는 일본경제의 현황을 알아보자. 다음은 그 주요내용이다. 편집자주

***코리안 르네상스: 망가진 일본에게 주는 교훈**

한국은 2차 세계대전 이후 30년간 일본의 경제모델을 충실히 따랐다. 재벌 시스템을 도입하고, 은행들은 정부의 지원을 받는 기업들에게 저리의 자금을 제공하도록 했다. 그러나 1997년 금융위기의 직격탄을 맞은 한국은 일본이 오래 전에 단행했어야 할 일들을 해냈다.

막대한 부실채권을 털어내고 핵심자산을 정부기관에게 매각했다. 이런 과정에서 30대 재벌 중 절반가량이 문을 닫았다.

한국은 자본잠식이 된 금융기관들에게 국내총생산(GDP)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1천5백억 달러를 쏟아부었다. 이 과정에 대부분의 은행들은 사실상 국유화되거나 합병, 폐쇄되었고 절반 가량의 직원들이 해고되었다.

선진경영기법이 도입되고 은행들은 다시 민영화 작업을 겪고 있으며 일부는 외국투자자들의 손에 넘어갔다.

한국의 강력한 금융개혁은 나름대로의 성과를 거두었다. 은행들은 수익성에 기초해 합리적인 자원 배분을 하는 기관으로 탈바꿈한 것이다. 일본 경제는 지난 10년간 쇠락의 길을 걸은 반면, 한국이 거둔 경제실적은 눈부신 것이었다. 한국의 성장을 능가하는 나라가 있다면 오직 중국뿐일 것이다.

한국의 정부와 대부분의 민간경제학자들은 신용카드 소비붐과 기술관련업종의 폭발적인 성장세에 힘입어 한국의 경제는 올해 6%의 성장률을 기록하고 내년에도 비슷한 성장을 이룰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일본 쿄토에 있는 도시바대 노리코 하마 경영학 교수는 "일본의 옛제자로부터 배울 게 많다"면서 "한국처럼 금융부실을 정리하는 것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녀는 "일본은 마치 배에 구멍이 뚫린 타이타닉호와 같다"면서 "배를 천천히 가라앉게 해 보다 많은 사람들을 살려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일본은 1990년대초 무분별한 은행 대출로 촉발된 자산거품이 붕괴되면서 침체의 늪에 빠져있다. 국제통화기금(IMF)의 압박을 받아 금융개혁에 나선 한국과 달리 일본에게는 외부의 압력이 없다. 일본정부가 내놓은 해결책이라고는 10년간 엄청난 재정지출을 통해 경제를 떠받쳐온 것뿐이다. 그 결과 일본의 재정적자는 국내총생산(GDP)의 1백40%에 해당할 만큼 '소름끼칠 정도'로 늘어났다.

일본의 정치인들이 위기에 맞서기를 꺼려하는 것도 별로 놀라운 일이 아니다. 무수익 여신을 정리하려는 최근의 개혁안에 대해 집권 자민당의 중진 정치인들은 격렬하게 반발하고 있다. 그들은 자신들의 이해관계는 언급하지 않고 개혁안이 경제침체의 악순환을 가져올 수 있다는 명분을 들어 다케나카 헤이조 금융상에게 타협안이 도출될 때까지 개혁안을 연기하라고 압박을 가하고 있다.

다케나카 금융상은 현재 의회로부터 불신임 투표를 앞두고 있다. 일본의 금융개혁안을 지지하기 위해 일본에 온 존 테일러 미국 재무차관(국제문제담당)은 "개혁안을 연기할수록 개혁의 성과가 나타나기까기 기간이 길어지고 비용은 더 커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테일러 차관은 부실채권에 허덕이는 은행들이 일본 경제의 숨통을 죄고 있는 최대의 장애물이라고 판단하고 있다. 금융부실로 인해 자본 분배가 효율적으로 이뤄지지 못하고 있을뿐 아니라 금융정책을 왜곡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한 예로 일본은행(BOJ)은 금융권이 자체적으로 통화공급 확대역할을 할 수 없다고 판단, 유동성 공급 역할을 떠안겠다는 비효율적 정책을 내놓았다.

부실기업 일부를 정리하는 것이 일본 경제에 '좋은 충격'을 줄 것이라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모건스탠리 증권 도쿄지점의 로버트 펠드만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부실기업 정리, 특히 중국의 값싼 노동력으로 경쟁력을 잃어버린 기업들을 퇴출시킴으로써 고부가가치 신산업 개척을 촉진시킬 수 있다"고 강조했다.

글렌 허바드 백악관 경제자문회의 의장은 "강력한 개혁안으로 경제위기가 심화될 것이라는 우려는 지나치다"면서 "1990년대 미국의 저축대부조합 위기때 신속하게 자산을 정리하자 땅값이 오르기 시작하고 신산업이 태동했다"고 지적했다.

테일러 차관도 "일본금융계가 건전성을 회복한다면 일본 경제는 연간 4%의 성장률을 올릴 수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러나 한국식 모델이 일본에서도 통할 것이라고 믿을 근거는 별로 없다는 반대파의 주장도 만만치 않다. 아커스 인베스트먼트 헤지펀드의 피터 테스커는 "기업구조조정과 금융합리화를 강조하는 것은 1930년대식 일본의 디플레이션에 대해 1980년대식 해결책을 내놓는 것과 같다"고 반박한다. 그는 일본의 은행들이 무수익여신이 많아 신규대출을 못하고 있다는 주장에 대해 "진짜 이유는 아무도 돈을 빌리려 하지 않는 데 있다"고 반박한다.

디플레이션이 엄습하고 있는 경제에서 이같은 현상은 놀라운 게 아니다.

만일 대출수요가 많다면 부실대출과는 거리가 먼 일본내 외국계 은행들로부터 자금이 공급될 것이다. 그러나 현실을 보면 외국계 은행들도 대출을 줄이고 있다. 일본은 투자할 만한 곳도 없는데 지나친 대출이 공급됨으로써 야기된 엄청난 공급과잉이 해소되려면 신용등급이 더욱 낮아질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한국에서는 재벌에 대한 대출이 감소했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그 갭을 가계부문이 채웠다. 금융위기 이후 신용대출이 폭발하면서 지속적인 소비열풍이 불었던 것이다.

일본은 소비자금융이 발달하고 높은 저축률을 보이고 있기 때문에 한국과 같은 소비붐이 일어나기 힘들다. 이러한 현상은 주로 일본이 '고령화 사회'라는 인구구조적 요인으로 은퇴를 대비한 저축이 많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공공부채가 늘어나면서 납세자들은 장차 세금부담이 커질 것을 우려해 저축을 더 많이 하고 있다.

들로이트 컨설팅서울의 제임스 루니 부회장은 "생활수준이 높은 성숙한 경제인 일본에서 한국같은 젊고 덜 성숙한 경제에서 일어난 폭발적인 활기를 기대하기란 어렵다"고 말한다. 그는 "일본에게는 소비지출을 위한 자금을 제공하는 것은 도움이 되지 못한다"면서 "일본은 이미 필요 이상의 자금이 넘쳐나고 있기 때문에 지금 일본이 겪고 있는 불황은 자본지출로 해결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고 말한다.

1997년의 한국과 오늘날의 일본과 또다른 차이점은 외부환경요인에서 찾아볼 수 있다. 경제위기 때 30%나 원화환율이 오른 까닭에 대미국 수출붐의 혜택을 누릴 수 있었다. 루니에 따르면 이러한 요인이 아니었다면 한국은 당시 마이너스 6% 성장이 아니라 마이너스 25%의 성장률을 기록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에서 강력한 개혁이 이루어진다면 일본의 운명도 이처럼 급격한 경제위축을 겪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일본은 환율이 30%나 상승하는 것을 견딜 수 없을 것이며, 오늘날 세계경제는 일본의 급격한 수출증대를 소화해낼 수 있는 상태가 아니기 때문이다.

펠드만이 주장하는 '창조적 파괴' 방식에 대해 우려하는 경제학자들도 많다. 막대한 재정지출로 지탱해온 일본 경제로서는 강력한 처방이 환자를 치료하기보다는 죽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태스커는 1천2백50억엔(100억달러)라는 막대한 부채로 허덕이는 거대유통업체 다이에이의 경우 부실기업 정리대상으로 손꼽히고 있지만 "다이에이의 문제는 자산거품기에 지나친 확장을 함으로써 빚어진 순전히 재무구조와 관련된 것으로 영업면으로만 보면 별로 나쁘지 않다"고 말한다. 그는 "경영진과 주주들이 경솔한 투자결정의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주장은 당연하다"면서도 "기업퇴출이 가져올 거시경제적 이익은 별로 없으며 실업률만 높아질 뿐"이라고 주장한다. 다이에이의 경우 현재 10만명을 고용하고 있다.

이같은 격렬한 논리싸움은 일본의 정책이 도출되는 밀실에서 더욱 거칠게 이뤄지고 있다. 일본 정부는 경제를 부양하는 조치도 고려하겠다고 한걸음 물러설 것처럼 보인다. 자민당 정치인들은 세금감면, 정부지출확대, 실업구제강화 등을 포함한 새로운 대책을 주문하고 있다.

테일러 차관은 이러한 논의에서 중요한 한가지가 빠졌다고 지적한다. 디플레이션에 대한 대책이 시급하다는 것이다. 일본은행이 물가하락을 저지하려는 노력을 보이지 않는다면 금융부실정리는 일시적 효과만 거둘 것이라는 지적이다.

부실채권과 디플레이션은 상호작용하는 관계다. 물가하락으로 대출상환이 어려워지고, 이에 따라 부실이 심해진 금융부문은 통화정책을 효율적으로 구사하기 어렵게 되기 때문이다.

테일러 차관은 "이들 문제는 서로 관련돼 있기 때문에 함께 다루어져야 한다"면서 "만일 그렇게 하지 않으면 어느 하나도 제대로 해결하기 어려워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해관계가 서로 다른 진영들이 그 차이를 좁힐 수 있을 때까지 논쟁은 강경론자와 현상유지론자 사이에 양극단으로 벌어질 것이다. 실행가능한 타협안이 도출되지 못한다면 일본은 한국이 겪은 위기가 닥쳐오는 것을 뻔히 보고 있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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