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미국과의 핵문제 일괄협상 재천명

<속보> 켈리 美차관보, "합의를 깨려는 건 아니다"

핵무기 개발을 놓고 팽팽하게 대립해온 북한과 미국이 우회적 방식을 빌어 극한적 대결을 피하기 위한 대화 의사를 밝혀 귀추가 주목된다.

북한의 서열 2위인 김영남 최고인민회의상임위원장은 21일 오전 남북각료회담을 위해 방북중인 정세현 통일부장관과 만수대 의사당에서 만난 자리에서 "최근의 사태를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미국이 적대정책을 철회하면 우리들도 대화를 통해 안보상의 우려사항을 해소할 준비가 돼 있다"고 말했다.

북한이 미국에게 핵무기 개발을 인정한 이래 북한 지도부가 핵문제에 대해 언급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김영남 위원장의 발언은 핵무기 개발문제를 의제로 한 북미대화 실시를 희망하는 북한측 의중을 드러낸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북한의 평양방송도 제네바 협정 체결 8주년을 맞아 21일 발표한 논설을 통해 "미국은 합의문이 채택된지 8년이 되는 오늘까지 아직까지 출발선에서 맴돌고 있다"면서 "지금 기본합의문은 그 핵심 사항인 경수로 제공이 대폭 늦어짐으로써 파기되느냐 마느냐 하는 심각한 갈림길에 놓여 있다"고 지적했다.

이 방송은 제네바 북미합의를 "존중하고 성실하게 지키는 것은 미국 자신에게도 유리"하다며 "현재 최대 관심을 기울여야 할 문제는 핵사찰에 관한 문제가 아니라 기본합의문을 어떻게 유지할 것인가이다"며 제네바 합의의 유지 필요성을 강조했다.

한편 중국, 우리나라에 이어 일본을 방문중인 제임스 켈리 미국무부 차관보는 이날 오전 가와구치 외상을 비롯해 방위청장관, 관방 부장관, 외무차관 등과 잇따라 만난 자리에서 "제네바 합의가 붕괴되었음을 정식으로 공표하면 북한이 플루토늄 제조를 시작할 것"이라며 "이에 미국정부는 이를 공식적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켈리 차관보는 이에 앞서 20일 일본정부측 인사들과 만난 자리에서 "(북미) 합의와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의 작업에 대해서는 신중하게 생각하지 않으면 안된다"며 "합의를 깨려는 것은 아니다"라고 미국측의 조심스런 입장을 전했다.

미국은 한 때 제네바 합의 파기를 선언한 뒤 경수로 건설 및 북한에의 중유 공급 중단을 검토했으나, 일단 이번달에 북한에 보내기로 한 중유 4만5천톤을 예정대로 싱가포르에서 선적해 북한으로 출발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