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닛케이지수가 19년전 수준으로 떨어지는등 폭락을 거듭하고 있다. 지난 주말 닛케이지수 9천엔선이 붕괴된 데 이어, 7일에는 8천7백선마저 깨졌을 정도다. 이에 일각에선 다시 '일본발 금융위기설'이 흘러나오고 있다.
그러나 종전과는 상황이 다르다. 지금 일본이 겪고 있는 고통은 종전의 '반(反)개혁 고통'과는 180도 성격을 달리 하는 '개혁 고통'이기 때문이다.
***'일본의 이헌재' 다케나카, "대마불사론을 깨겠다"**
지난달말 개각으로 다케나카 헤이조 경제재정상(우리나라의 기획예산처장관)이 금융상(금융감독위원장)까지 겸직하는 금융개혁 내각을 구성한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총리는 다케나카에게 금주까지 "부실채권정리 액션플랜을 만들어 제출하라"고 지시했다.
다케나카는 이미 금융개혁안을 마련한 상태. 그는 4일(미 현지시간) 워싱턴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큰 기업은 쓰러지지 않는다는 정책을 정부가 유지하면 일본경제의 장래는 없다"는 발언을 했다. 이른바 '대마불사(大馬不死)론'을 깨겠다는 단호한 입장표명이었다.
다케나카는 "작금의 일본경제 상황을 방치하면 고통은 비극적으로 커질 뿐"이라는 말도 했다. 그는 이어 "고통을 줄이고 실업을 최소화하기 위해선 험난한 길이기는 하나 (개혁으로) 전진하는 길밖에 없다"는 말도 했다. 부실채권 청산을 위한 공적자금 투입을 기정사실화하고 있는 발언이다.
그는 또 비즈니스위크 최신호와의 인터뷰에서 과감신속한 공적자금 투입을 통해 부실 금융기관 및 기업을 대거정리한 한국의 금융구조조정 과정을 벤치마킹하고 있다는 얘기도 했다.
다케나카는 비유컨대 '일본의 이헌재'가 되고자 하는 것이다.
***국제금융계 시선은 "일단 긍정적"**
다케나카의 이같은 부실기업, 금융기관과의 전쟁 선포는 일본 금융시장을 크게 뒤흔들고 있다. '대마불사'를 깨는 개혁과정에 공적자금이 투입되면서 일본 유수의 은행들이 피합병되거나 일본 굴지의 대기업이 파산처리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이에 일본의 전경련인 게이단렌을 비롯한 재계와, 일본 굴지의 은행 경영진들은 "지금이 개혁을 할 때냐? 디플레이션 대책을 마련할 때이지"라고 강력반발하고 있다. 또한 증시를 비롯한 금융시장에서는 어떤 기업 또는 금융기관이 정리대상이 될지를 가늠 못해 일단 주식을 내다파는 심리적 패닉상태가 연출되며, 그 결과 주가가 연일 폭락을 거듭하고 있다.
하지만 최근의 일본 상황을 보는 국제금융계의 시선은 그렇게 나쁘지 않다.
98년 한국이 이미 경험했듯, 개혁이 시작된 만큼 앞으로 1년여간은 적잖이 힘들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하지만 일본이 일관되게 개혁만 추진한다면 아직까지 견실한 일본기업들의 제품경쟁력을 볼 때 앞으로 1~2년 뒤에는 일본경제가 십수년간의 장기복합불황에서 벗어나 약진의 계기를 잡을 수 있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문제는 고이즈미 내각이 이 기간동안 재계, 금융계, 정치권, 관료 등 각 기득권층의 저항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 것인가이다. IMF사태를 겪으면서 IMF의 경제식민통치하에 들어갔던 98년도의 한국과 현재 일본의 정치적 상황은 크게 다르기 때문이다.
현재 시작된 일본 개혁전쟁의 최대 변수이자 불확실성은 과연 고이즈미 내각이 최소한 향후 1년간 치열한 경제개혁의 선봉장 역할을 계속 맡을 수 있을 것인가, 아니면 도중에 반개혁 세력의 연대에 무너질 것인가인 셈이다.
정치가 일본개혁 성패를 가늠할 최대변수인 셈이다.
***공적자금 투입후 탁월한 CEO 발탁 여부가 관건**
미국의 골드만삭스는 최근 내년 3월까지 일본의 5대 시중은행과 3대 신탁은행의 자산건전성을 정상화하기 위해선 최소한 9조7천억엔을 일시에 투입해야 할 것으로 내다봤다.
이 정도 공적자금을 신속히 투입하면 일본 금융기관은 최소한의 자산건전성을 회복, 금융시스템이 붕괴되는 일이 없을 것으로 내다봤다.
문제는 공적자금 투입의 결과다. 한국의 경우에서 볼 수 있듯, 공적자금 투입은 곧 금융기관의 국영화로 이어진다. 골드만 삭스 추정에 따르면, 9조7천억엔을 쏟아부을 경우 이들 대형금융기관 전체주식의 정부지분율은 45%가 될 전망이다. 말 그대로 일본 주요 금융기관들이 한 순간에 '국유화'되는 셈이다.
이같은 국유화는 또다른 과제를 남겨둔다. 금융개혁 과정에 불가피한 측면이 있으나, 은행 국유화는 또다른 관치금융의 토대를 마련하는 모순을 낳기 때문이다.
문제는 역시 '사람'이다. 고이즈미가 시작한 금융개혁의 성공여부는 공적자금 투입과 동시에, 이들 금융기관을 시장법칙에 따라 수익성 위주, 주주가치 위주, 투명성 위주로 운영해나갈 빼어난 CEO를 발굴해낼 수 있는가 없는가에 달려있다는 게 국제전문가들의 한결같은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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