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달러 환율이 최근 3개월래 최고치를 기록하는 등 달러 가치가 다시 강세를 보이고 있다. 17일 서울외환시장에서 1,220.00원까지 상승했다. 엔-달러 환율도 1백22엔대까지 상승, 3개월래 최고치를 기록했다.
달러가 이처럼 초강세를 보이고 있는 이유는 미국 경제의 성장세가 크게 둔화된 상태지만 그나마 일본이나 유럽 경제보다는 낫다는 견해가 많아지고, 일본 정부가 디플레이션 방지를 위해 시장에서 직접 달러를 매입할 수 있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한때 세계 이코노미스트들 사이에서 가치폭락이 불가피할 것으로 여겨졌던 달러화가 여전히 강세를 보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달러화는 누구도 급락을 원치않는 세계 기축통화**
영국의 이코노미스트 최신호(20일자)는 "달러가 여전히 세계를 지배하는 이유, 그리고 세계가 이를 감사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 '소수견해'라는 토를 달아 보도했다.
이 기사는 "미국의 천문학적인 경상수지 적자는 달러가 세계유동성을 책임지는 '현대판 금'이라는 점에서 불가피하다"는 긍정론을 전하고 있다.
이같은 긍정론을 주장하는 학자로는 폴 데이비슨 테네시대 교수와 로널드 매키넌 스탠퍼드대 교수를 꼽을 수 있다. 이들은 "19세기 금 본위시대와 비슷하게 세계는 현재 사실상 달러 본위 시대라고 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1914년까지만 해도 세계 주요통화는 금과 연결돼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각국 정부가 자국의 통화가 달러에 비해 지나치게 가치가 오르면 세계시장에서 경쟁력을 잃을까 우려하고, 반대로 달러에 비해 가치가 너무 떨어지면 인플레이션을 걱정하게 되는 '달러 본위시대'라는 것이다.
이는 달러가 미국만의 통화가 아니기 때문이다. 전체 달러 중 절반 이상이 미국밖에서 유통되고 있으며, 미 재무성이 발행하는 채권 절반이 외국 중앙은행에 보유되고 있다.
유로화는 전세계적인 유통수준에서 달러의 경쟁상대가 되지 못한다. 외국인끼리의 거래에서도 달러는 국제적 화폐로서 일상적으로 사용된다. 가치보존수단과 화폐로서 금이후 달러처럼 전세계적으로 통용되는 수단은 없다.
달러가 '현대판 금'이라면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ed)의 앨런 그린스펀 의장은 세계 무역거래가 원활하게 돌아갈 수 있도록 충분한 유동성을 창출해내는 '세계의 연금술사'라고 불러야 할 것이다.
***미국 경상적자로 해마다 세계에 5천억달러의 유동성 공급**
데이비슨 교수에 따르면 미국의 대외적자는 매년 세계경제에 5천억달러를 추가 투입해주는 유동성 공급을 뜻한다. 미국이 경상수지 적자를 통제한다면 국제무역은 과거 금 본위시대에 주기적으로 발생했던 유동성 경색에 빠져들 위험이 있다는 것이다.
폴 오닐 재무장관 같은 이는 아예 "경상수지적자라는 개념은 의미가 없다"고 일축하고 있다. 그러나 올해 5천억 달러에 이르는 경상수지 적자를 충당하기 위해서는 매일 20억달러의 자본이 미국에 유입되어야 한다. 만일 자본 유입에 차질이 생기면 달러가치는 4분의 1이 날아갈 수 있다. 얼마 전까지 달러 가치가 하락한 것도 미국의 증시 붕괴 등으로 달러 유입이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많은 경제전문가들은 달러 가치가 하락세를 보이자 미국의 경상수지적자가 더 이상 지속가능하지 않다고 지적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미국의 대외적자 논란이 일어난 것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1966년 전후 미국의 무역흑자가 줄어들자 당시 이코노미스트지는 "달러와 세계유동성:소수 견해"라는 기사를 통해 "미국의 무역적자는 교정이 필요한 적자가 아니다"라는 기사를 실었다. "미국의 자본시장은 세계금융의 정거장으로서 외국의 정부와 기업들에게 필수적인 유동성을 제공한다"는 논리였다.
데이비슨과 매키넌 교수도 이러한 소수 견해와 맥락을 같이 한다. 이들은 "미국의 경상수지 적자에 대한 교정은 해결보다 문제를 더 일으킬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 때문에 미국의 적자는 '의미없는 개념'도 아니고 '세계저축고의 커다란 구멍'도 아니다. 세계무역에 없어서는 안될 '유동성의 원천'이라는 것이다.
매키넌 교수는 "유로화가 아무리 잠재적인 매력이 있다고 해도 많은 미국의 채권자들은 달러 가치를 보존해야 할 이해관계가 있다"고 주장한다. 그 이유는 미국의 달러 상당 부분을 해외 특히 자국 통화의 경쟁력이 상실될까 우려하는 아시아의 중앙은행들이 보유하고 있다.
실제로 중국은 지난 6월까지 미국과의 무역에서 발생한 흑자 대부분을 외환보유고를 6백억 달러나 늘리는 데 돌렸다. 우리나라의 경우도 외환보유고를 1천1백억달러대로 늘려놓았다. 사정이 이런 만큼 달러화 폭락은 달러화를 금고에 쌓아두고 있는 각국정부에게도 결코 바람직한 일이 될 수 없다.
***균형이론이 소수의견인 까닭**
문제는 이같은 미국의 경상적자와 아시아등의 경상흑자라는 유동성 공급 시스템이 과연 계속 작동할 수 있을 것인가이다. 지금까지는 미국이 연간 5천억달러의 경상적자를 보아도 그만큼 해외에서 미국으로 투자가 이뤄져 균형을 잡을 수 있었다. 그러나 만약 미국으로의 자금유입이 멈춘다면 상황은 대단히 심각해져, 세계공황적 파국까지도 예견되고 있다.
이코노미스트가 이같은 균형이론에 대해 '소수의견'이라는 타이틀을 붙인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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