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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종윤 칼럼]연동형비례대표 선거제 합의에 도사린 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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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종윤 칼럼]연동형비례대표 선거제 합의에 도사린 덫

농어촌 지역구 대대적 감축-실세 정치인 정치생명 연장 선거제 개편은 '짝퉁'

ⓒ배종윤

더불어민주당과 바른미래당, 민주평화당, 정의당 등 여야 4당은 최근 선거제 개편에 대한 단일안에 합의했다.
개편안의 핵심은 의석수 300석을 고정하되 비례대표 75석을 전국단위 정당득표율 50%에 따라 권역별로 배분하는 '권역별 연동형 비례대표제'다.


연동형비례대표제는 정당의 득표율에 따라 의석을 배분하는 제도다. 정당 득표율로 총 의석수가 정해지고, 지역구에서 몇 명이 당선됐느냐에 따라 비례대표 의석수를 조정하는 방식이다.

지역구 후보에게 한 표, 정당에게 한 표를 던지는 ‘1인 2투표 방식’의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도입되면 확고한 지역적 기반은 없지만 전국적으로 고른 지지를 받는 정당이 혜택을 본다.
가령 전국적으로 10%(3백명 의석수 기준)의 지지를 얻은 정당이 지역구에서 10석을 확보하는데 그친다면 나머지 20석을 비례대표로 가져간다(현재 합의안대로라면 10석).

적대적 공생관계를 유지해온 기득권 양당제를 혁파하고 민심을 가감 없이 의석수에 반영하고, 지역기반의 정당에서 이념정당으로 질적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는 점에서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은 원칙적으로 환영한다.
그렇지만 여야 4당이 합의한 ‘권역별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연동형의 취지를 제대로 살릴 수 없는 기형적 제도라는 지적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냉정하게 말하면 합의와 야합의 경계선에 놓여 있다.

의석수 300석을 유지하되, 현행 253석의 지역구를 225석으로 28석 줄이고, 비례대표 의석수를 현행 47석에서 75석으로 늘리기로 한 여야 4당의 합의안에서 몇 가지의 퇴행적인 덫을 발견할 수 있다.

첫째, 연동형 비례대표제의 취지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총선 민의에 따라 배분할 비례대표 의석이 충분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비례대표 의석은 단 75석에 불과하다. 턱도 없이 모자라는 의석이다. 이래서 ‘무늬만 연동형 비례대표제’라는 말이 나온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정상적인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실시하기 위해서는 비례대표 의석을 최소 100석 이상 보장해야 한다.
국회의원 정수 300석을 유지한 채 독일과 뉴질랜드가 실시하는 민심 그대로의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실시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여야 4당은 국회의원 증원을 전제로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하겠다고 밝힐 경우 국민들의 역풍이 두려웠을 것이다.
그래서 현행 정수를 유지한 채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이라는 꼼수를 들고 나왔다. 호박에 줄을 그어놓고 수박이라고 우기는 격이다. 국민들이 원하는 것은 줄 그은 호박이 아니라 진짜 수박이다.

여야 4당은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과 관련, 정직하지 못했다. 정공법을 선택하지 않았다.
여야 4당은 1993년 승자독식의 소선거구제를 연동형 비례대표제로 바꾸는 과정에서 정면 돌파를 시도한 뉴질랜드에서 해법을 찾았어야 했다.
당시 뉴질랜드 정치권과 시민단체는 “99명의 독재보다는 120명의 민주주의가 낫다”는 슬로건으로 국민들을 향해 의원정수 증원의 필요성을 설파했다. 국민들은 국회의원 세비 등 민주주의 비용이 더 투입되더라도 국가적 관점에서는 그것이 훨씬 남는 투자임을 인식하고 증원을 전제로 한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에 동의했다.

여야 4당 역시 제대로 된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실시하기 위해서는 10~20%의 국회의원 정수 증원이 불가피하다는 진실을 국민 여러분께 고백하는 당당한 길을 선택했어야 했다.
설득에 설득을 더해도 국민들이 국회의원 증원에 동의하지 않는다면 무늬뿐인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을 포기하는 담대한 길을 걸었어야 했다.

둘째, 지역구 28석 감축을 전제로 한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농어촌 지역구를 희생양으로 한 농어촌과 농어민 죽이기 선거제 개편이다.
선거구 획정 기준에 따라 지역구를 225석으로 줄일 경우 지역구 평균 인구수는 23만명, 하한인구수는 15만3000명, 상한 인구수는 30만7000명으로 크게 늘어난다.
하한 기준에 미달해 통폐합 또는 재조정돼야 할 지역구는 경기 7곳, 전북 3곳, 경북 3곳, 전남 2곳 등 전국에 걸쳐 무려 26개에 달한다.

누구를 위한 연동형 비례대표제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농촌 지역구는 지금도 적게는 2~3곳, 많게는 5개 시군이 하나의 선거구로 묶여져 있어 지역 여론과 민의를 반영하는데 한계를 보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지역구를 줄이면 지역 여론과 민의 반영은 언감생심이 될 것이 뻔하다.

대한민국과 인구수가 비슷한 독일, 스페인, 영국의 경우 국회의원 1명이 대표하는 인구수가 12만명 이하인데 우리는 20만명이 넘는다는 사실을 주목해야 한다.
광역시도의 지역구가 20~30% 줄면 지역 현안 추진력과 국가 예산 확보력은 감원된 수치보다 훨씬 크게 줄 것이며 수도권과 지방, 도시와 농어촌의 격차는 더 크게 벌어져 지역균형 발전의 꿈은 더욱 요원해질 것이 불 보듯 뻔하다.
여우 피하려다 호랑이를 만나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

여야 4당은 석패율제 도입에 합의했다.
석패율제는 한 후보자가 지역구와 비례대표에 동시에 출마하는 것을 허용하고, 이들 중복 출마자들 가운데 가장 높은 득표율로 낙선한 후보를 비례대표로 선출하는 것을 말한다.

일본에서만 1996년부터 실시하는 독특한 선거제도로 알려져 있다.
여야 4당은 권역별로 2명씩을 중복 후보자로 낼 수 있도록 합의했다.
석패율제는 당권을 거머쥔 실세 정치인이나 유명 정치인의 정치 생명을 연장하는 도구로 전락할 수 있다는 위험성을 갖고 있다.
석패율제 도입의 순수성과 정당성을 입증하려면 당 대표나 원내 대표, 당 실세 정치인들은 중복 출마의 기회를 스스로 포기해야 한다.
“나는 중복출마 하지 않겠습니다”는 대국민 선언을 해야 한다.

그래야 본인들의 정치생명 연장을 위해 농어촌을 희생양 삼아 연동형 비례대표 도입에 합의했다는 의혹에서 벗어날 수 있다. 그래야 연동형 비례대표제의 순수성과 정당성이 담보되고 추진력을 확보할 수 있다.

농어촌 지역구 의석 감축을 최소화하면서 100석 가량의 비례대표를 보장하고 실세 정치인들의 기득권 포기를 전제로 한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진짜 비례 대표제다.
여야 4당이 합의한 연동형 비례대표제에 대해 국민들은 ‘정품’이라고 볼까? ‘짝퉁’이라고 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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