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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의 상징, '부러진 의자'를 다시 생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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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의 상징, '부러진 의자'를 다시 생각하다

[사회 책임 혁명] '완전함'에 대한 오해

평화를 상징하는 21세기 대표 미술작품 '부러진 의자(Broken Chair)'는 12미터 높이의 웅장함과 위엄을 갖추고 있다. 유명한 조각가 다니엘 버셋(Daniel Berset)이 1997년에 노벨평화상을 공동 수상한 국제 비영리 조직인 '핸디캡 인터내셔널(Handicap International)의 의뢰로 제작했다.('핸디캡 인터내셔널'은 2018년 1월 '휴머니티 앤 인크루전(Humanity & inclusion)'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부러진 의자'는 그 웅장함에 비해 많은 공간을 차지하지는 않는다. 의자 다리 세 개를 건물의 기둥처럼 광장에 설치하면 된다. 광장은 인권과 평화, 군축을 논의하는 스위스 제네바의 유엔유럽본부(Place des Nations) 길목에 있다.

▲ 유엔 제네바 사무국 앞에 설치된 '부러진 의자'. ⓒ연합뉴스

'핸디캡 인터내셔널'의 의미를 한국어로 표현하기가 쉽지 않지만, 영문명에서 '반인륜'과 '배제'에 저항한다는 것과 '장애(handicap)'와 무관하지 않다는 것쯤은 쉽게 알 수 있다. 또한 이 단체의 주요 활동이 '오타와 협약(Ottawa Treaty. 대인지뢰 사용, 비축, 생산, 이전 금지 및 폐기에 관한 협약)'과 관련되어 있다는 점에서 부러진 의자가 지뢰 희생자(장애인)가 처한 위태로운 상황을 형상화하고 있다는 것도 어렵지 않게 유추해볼 수 있다.

현대적 의미의 장애인 복지가 전쟁에서 몸을 다친 상이군인에 대한 국가의 처우에서 시작되었기 때문에 '전쟁-지뢰-상이군인(장애인)' 관계로 이해할 수도 있겠지만, 이 단체 활동의 주요 대상자는 민간인 피해자다.

'부러진 의자'가 '상징'하는 것

훌륭한 예술작품은 다의적이고 다양한 관점으로 해석된다고 했던가. 유엔의 핵심가치를 지속가능발전과 사회적 책임 등으로 본다면, '부러진 의자'는 국제사회, 국가, 기업 또는 투자자 모두에게 일관된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작품이 상징하는 바도 마찬가지다.

우선, '부러진 의자'는 전쟁 반대와 대인지뢰 사용 금지로 대변되는 '평화'와 '인권'이 개발 과정에서 무시되거나 개발을 저해한다는 이유로 인권침해가 당연시 되었을 때, 유엔 등 국제사회가 처해질 수 있는 상황을 경고하는 것처럼 보인다. 마찬가지로, 지속가능발전의 세 축인 경제·사회·환경이 병행 발전하지 못하거나 어느 하나를 방기했을 때, 인류가 직면할 수 있는 생존의 위기를 표현하는 것으로 해석이 가능하다.

또한 시장 경쟁력이나 리스크 관리 도구로써 경제적 수익 확대와 손해 방지에 기여한다는 전제 하에서만 인권에 가치를 부여하고 그마저도 흉내 내기에 급급한 경영관행과, 투자대상 기업의 환경·사회·지배구조 개선 노력을 고려치 않고, 재무적 성과에만 몰두한 투자 관행이 가져올 수 있는 기업과 투자자의 곤궁한 처지를 나타낸다고 할 수 있다.

기업의 인권책임도 마찬가지다. 기업의 인권존중 실행뿐만 아니라, 인권보호에 대한 국가의 의지와 실천 그리고 기업에 의한 인권침해로 고통받는 피해자가 사법적·비사법적 방식으로 적절하게 구제받을 수 있는 실효적인 시스템 운영이 병행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다리가 부러져 고유한 기능을 상실한 의자와 다르지 않다.

이상의 관점에서 '부러진 의자'는 불완전·기능적 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하고 있는 '결핍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다. 그 결과로 '위태한 상황'에 처해 있다는 메시지다.

'완전함'의 조건

다른 한편으로, 어떤 존재가 처한 상황이 아닌 존재 그 자체를 형상화했다는 관점에서 비판적으로 바라볼 수도 있다. 예술작품이라 할지라도 '부러진 의자'가 발목지뢰로 다리 일부를 잃은 장애인을 형상화하고 있다는 점은 불편하다. 민속무용가 공옥진의 '병신춤'을 '장애인 춤'으로 바꾸거나 문학작품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조세희 지음, 문학과지성사 펴냄)을 '왜소증장애인이 쏘아올린 작은 공' 또는 '저신장 장애인이 쏘아올린 작은 공'으로 표현한다거나, <벙어리 삼룡이>(나도향 지음)를 '언어장애인 삼룡이'로 바꾸자는 억지 정도로 들릴지 모르지만, 마치 '부러진 의자'가 장애인을 인간 또는 정상인, 완전함의 조건을 갖추지 못한 존재로 오인하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유엔장애인권리협약 제17조(개인의 완전함 보호)는 "모든 장애인은 다른 사람과 동등하게 신체적 및 정신적 완전함(Integrity)을 존중받을 권리를 가진다"라는 단 하나의 문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쉽게 말해, 신체적 기능을 상실했거나, 정신적 손상을 가진 장애인 모두는 당연하게도 '완전한' 존재다.

완전한 인간의 조건은 단 하나, '인간'이면 된다. 장애와 무관하다. 그러니 '정상인', '일반인', '완전함'이 장애인 또는 장애와 대비되는 용어로 사용될 수 없다. 장애가 있는 사람과 장애가 없는 사람으로 구분될 뿐이다.

더 나아가 장애인은 '장애를 가진 사람(People with disabilities)'일 뿐이지 '불리한 조건에 처한 사람(handicap)'이나, '다른 능력을 가진 사람(people with different abilities)', '신체적으로 어려운 도전에 직면해 있는 사람(physically challenged)' 등으로 불리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는다. 마치 불완전한 존재가 완전을 추구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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