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쩍거린다고 해서 다 금이 아니다"라는 대사는 〈베니스의 상인〉에 나오는 한 대목입니다. 총명한 여인 포샤가 자신에게 어울리는 남편감을 고르는 수수께끼 상자 문제에서 등장하는 말입니다. 겉만 보고 선택하는 어리석음에 대한 경구라고 하겠습니다.
그녀를 사랑하는 바사니오는 납으로 된 상자를 골라 그 안에 들어 있는 포샤의 초상화를 꺼내들고, 결국 사랑을 얻는 데 성공합니다.
그러나 기쁨도 잠깐, 바사니오는 결혼여비를 마련하기 위해 자신에게 보증을 서준 베니스의 친구 안토니오가, 돈을 정해진 기일에 갚지 못할 경우 유대인 고리대금업자 샤일록에게 심장에서 가장 가까운 곳의 살 1파운드를 떼어 내주어야 한다는 각서대로 일을 당하게 된다는 소식을 듣게 됩니다.
무역을 하고 있던 바사니오의 배는 모두 파선을 당해 그는 빈털터리가 되어버리고 말았던 것입니다.
만일 샤일록의 요구대로 하지 않을 경우 상거래의 엄격성을 유지해야 하는 베니스의 상법은 근본에서 흔들린다는 점에서 누구도 어떻게 달리 해볼 도리가 없었습니다.
1596년 베니스를 무대로 한 이 세익스피어의 작품은, 당시 유대인들이 겪고 있던 사회적 차별과 종교적 멸시를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었는데, 유럽 전역에서 배척받고 있던 이들은 생존을 위해 고리대금업을 하고 있었습니다.
아무튼, 안토니오는 이제 샤일록의 손에서 자신의 살이 도려내어지는 동시에 죽을 판이었습니다. 법도 속수무책이었으며 샤일록은 이를 통해서, 자신이 겪었던 그 억울한 차별에 대해 복수할 수 있는 기회를 잡은 셈이었습니다.
바로 그 순간, 남장을 한 포샤가 로마에서 온 젊은 법관으로 사태를 역전시킵니다. 그녀는, 안토니오의 살 1파운드는 허용되어 있지만, 각서 그 어디에도 피는 한 방울도 포함되어 있지 않음을 일깨웁니다.
안토니오의 살 1파운드에서 조금이라도 넘치거나 적어서는 안 되고, 그 살을 가져가는 과정에서 피 한 방울이라도 흘리게 되면 샤일록이 도리어 죽음에 처하게 될 지경이 된 것입니다. 각서에 들어 있는 것과 들어 있지 않는 것을 하나하나 확인하는 과정에서 각서에 기록되지 않는 것은 거부한다고 이미 확약한 바가 있는 샤일록으로서는, 이러한 포샤의 지적을 반박할 방도가 없게 되고 말았습니다.
안토니오는 이로써 살아남게 되었으며 바사니오는 우정과 사랑 모두를 보호할 수 있는 행운을 얻게 되었습니다.
이 작품은 돈으로는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고 여기는 당대의 풍조에 대한 비판이 담겨 있는 동시에, 돈으로 인간의 피를 흘리게 하는 일에 대한 세익스피어의 분노 또한 표현되어 있습니다.
정녕 안토니오의 살 1파운드를 가져가고 싶다면 피를 흘리지 말고 가져갈 수 있겠는지, 만일 피를 흘리게 한다면 그렇게 하는 자의 운명도 편치는 않을 것이라는 경고입니다.
유대인에 대한 멸시와 증오를 전제로 했다는 점에서 이 작품은 문제가 됩니다.
그러나 작가의 궁극적 본의는 돈으로 사람의 살을 베지는 말라는 것입니다. 개방적 무역체제 하에서는 어쩔 수 없다는 논리로, 정부는 지금 "샤일록의 각서"를 받아들고 그대로 하려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농민이 피를 흘렸고, 엊그제는 전략적 유연성 합의를 근거로 미군의 보조부대를 자원하는가 했더니 오늘은 스크린 쿼터제 축소를 협상도 하기 전에 수용했습니다.
영화인들이 피를 흘릴 차례인가 봅니다. 번쩍거린다고 그것이 다 금이 아니듯이, 이렇게 돈만 쫓다가 아름다운 포샤는 정녕 얻지 못하고 말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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