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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서 속 '~함', '~음', '~임', 일제 잔재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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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서 속 '~함', '~음', '~임', 일제 잔재 맞다

[기고] 3.1절 100주년, 정부 '공문'에도 일본 그림자가

공직사회에서 각종 보고서를 작성할 때는 반드시 ‘~함’이나 ‘~음’ 또는 ‘~임’으로 문장을 끝맺음하는 형태를 취한다. ‘~다’로 문장을 끝맺는 일반적인 서술식 문장이 아니라 이른바 ‘개조식(個條式)’ 문장이다.

아예 공직사회의 보고서 작성 매뉴얼은 “문장은 개조식으로 작성함”이라고 명문으로 ‘강제’한다. 필자는 이러한 ‘개조식’ 문장 구조가 우리 사회 관료 집단의 권위주의적이고 무책임성을 증폭시키는 데 중요한 요인 중의 하나로 작동되어 왔다고 분석한다.

필자가 이 문제와 관련해 몇 차례 기고문을 발표했는데, 그때마다 “학계에서 인정된 견해인가?”라는 불만섞인 문제제기가 나오는 등 관심이 적지 않았다. 공직사회의 이러한 개조식의 문장방식, 혹은 문체형태가 우리 사회에 미치는 영향이 대단히 크기 때문에 다시 보충하여 개선의 필요성을 재삼 강조하고자 한다.

다만 여기에서 다루는 ‘~함’, ‘~임’, ‘~음’ 관련 내용은 주로 공직사회와 기업의 보고서의 형식이며, 최근 SNS상에서 빈번하게 이뤄지는 “....함?”, “....임?”, “.....음?” 등의 형식은 논외라는 점을 미리 밝혀둔다.

갑오경장과 ‘공문식(公文式)’ 그리고 일본의 ‘문어(文語)’

구한말 갑오경장 뒤 개화파들이 대원군을 축출하고 같은 날 제정, 공포한 것은 바로 칙령제1호 <공문식(公文式)>이었다. 이 <공문식>에 의하여 이른바 칙령과 의정부령, 각부령(各部令) 등 근대적 법령이 등장하였다. 봉건세력을 누르고 공문서제도를 근대적으로 개편한다는 명분이었다.

이에 따라 유길준 등 개화파 인사들은 大鳥 공사, 杉村 서기관(이러한 일본식 관직명이 120여년도 더 지난 지금까지 우리의 공무원 직급 명칭으로 사용되고 있는 것도 놀라운 일이다!)의 지도 하에 일본 법전과 내각 제도를 모방하여 관제를 개편했고 문서사무 역시 일본을 그대로 모방했다.

공문서의 경우도 예외가 아니었다. 이 무렵 기안문(起案文)을 비롯한 모든 공문서에는 이미 하나같이 일본의 문어체를 강제로 적용시켜 문장의 끝은 '~함'으로 맺고 있었다.

일제는 이 공문서 제도가 자신들의 침략정책에 유리한 조건을 만드는 과정이었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공문서 결재과정에도 깊이 개입했다. 이후 일제는 의정부를 비롯해 각부의 일본인 고문을 통해 공문서 결재과정을 주재했다. 이렇게 ‘~함’으로 끝맺음하는 일본 공문서 양식이 자리잡게 되었다.

일본 메이지(明治) 시대에 '대일본제국 헌법'을 비롯해 ‘강력한 권위가 요구되는’ 법령의 문장이나 교과서 등에서 이른바 ‘문어(文語)’가 사용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일본의 ‘문어’ 문장들은 이를테면 “천황은 육해군을 통수함(天皇ハ陸海軍ヲ統帥ス, 대일본제국헌법 제11조)”나 “규정에 따라 청원을 행할 수 있음(規程ニ従ヒ請願ヲ為スコトヲ得, 대일본제국헌법제30조)” 등으로 끝을 맺고 있었다. 우리 식으로 말하면 ‘~다’를 생략하고 ‘~함’, ‘~음’으로 문장을 맺는 형태이다.

일본이 ‘강제’한 ‘~함’ 형식의 공문서

구체적으로 구한말 시기의 문서를 살펴보면, 순한문 문장의 시기를 지나 한글이 사용되던 초기에는 거의 모든 글이 ‘~하니라’ 로 끝맺음을 하고 있었다. 일제 침략을 개탄하며 자결했던 민영환 등이 1902년에 기초한 <육군법률부제규정(陸軍法律附諸規定)> 제1조를 보면, “본 법률은 현역군인의 범죄한 자에게 시용(施用)함이라”라고 규정하고 있다. 또 이명칠(李命七)이 저자인 『산학통편(算學通編)』도 모두 “~니라”, 혹은 “~하니라”의 형식을 띠고 있다. 그리고 대신들이 왕에게 보고하는 상주문은 ‘~다’의 형식으로 되어 있었다.

하지만 갑오경장 이후 일본의 영향력이 절대화하면서 공문서뿐만 아니라 일본의 법률이나 교과서 등 서적이 그대로 직역되는 등 일본의 문장방식이 전반적으로 이식되었다. 1895년 제정된 경무청의 <문서정리규칙> 제1조에는 “총리대신 훈령도 차(此)에 공철(共綴)함이 가(可)함”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1908년에 제정된 <법규류편(法規類編)>의 내각기록과(內閣記錄課) 중 ‘궁내부(宮內府)’ 편에는 “참리관(參理官) 2인을 4인으로 개정함.”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또 <공문류별급식양(公文類別及式樣)> 제8조는 “훈령, 지령(指令) 등에 서압(署押)하는 예를 폐지하고 관장(官章)으로 대용(代用)함이 가(可)함.”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그리고 1900년에 일본 수학교과서 등을 참조해 편역한 <정선산학(精選算學)>은 모두 ‘~함’으로 문장을 마치고 있다.

이렇게 ‘~함’의 일본 문어체는 ‘일제 강점기의 공문서’에 보편화되었다.

보고서 속 ‘~함’, ‘~음’, 권위주의와 소통 단절 초래

본래 명사화소(명사형 어미) ‘-(으)ㅁ’은 ‘확정성’이나 ‘결정성’의 특성을 지니고 있으며, 특히 문장 마지막에서 ‘~함’이나 ‘~음’으로 끝내는 문장의 경우 이러한 경향성은 더욱 강화된다.

‘~함’이나 ‘~음’ 혹은 ‘~임’으로 끝나는 문장 방식은 정상적으로 글을 완료하지 않고 서둘러 결론을 내려 끝을 맺음으로써 읽는 사람과의 대화와 소통 대신 일방적으로 명령자 혹은 규정자 입장의 권위주의적 특성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게 한다. 가령 “문장은 개조식으로 작성함”은 서술식의 그것보다 강제성과 권위를 더욱 강조한다. 특히 하급자를 대상으로 그러한 성격은 더욱 강화된다. 이런 문장 형식은 군대식 상명하복의 문화로 연결되며, 이는 일제 강점기의 공문서제도가 의도했던 ‘절대적 권위의 현현(顯現, 드러냄)’과 ‘무조건적인 복종의 유도’라는 본래의 목표와 정확히 부합한다.

이러한 개조식 문장에는 처음부터 상호 간의 진지한 논의와 토론을 할 수 있는 가능성과 그 분위기가 존재하기 어렵다. 더구나 여기에 창의성과 다양성이 공존할 수 없다. 결국 일제 잔재로서의 이 개조식 문장은 공직 사회와 기업 문화에서 상호 간의 토론과 대화를 단절시키고 대신 우리 사회에 상명하복 문화와 ‘빨리빨리주의’를 고착시키는 요인으로 조직적으로 그리고 지속적으로 작동돼 왔다고 평가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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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준섭

1970년대말부터 90년대 중반까지 학생운동과 민주화 운동에 몸담았으며, 1998년 중국 상하이 푸단(復旦)대학으로 유학을 떠나 2004년 국제관계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국회도서관 조사관으로 일했다. <변이 국회의원의 탄생>(2019), <광주백서>(2018), <대한민국 민주주의처방전>(2015) , <사마천 사기 56>(2016), <논어>(2018), <도덕경>(2019)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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