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8일. 에코 로지를 떠나 남서쪽 페얼리(Fairlie) 방향으로 핸들을 돌렸다. 72번 아룬델 로드(Arundel Rd)를 따라 달리다가 79번 메인 노스 로드(Main North Rd)에 접어들자 오챠드 카페(Orchard Cafe)가 눈에 띄었다. 누가 먼저 얘기를 꺼낸 것도 아닌데 자연스레 카페 정문에 멈췄다.
남 섬에서 라이딩 하면서 도로변 카페를 만나기가 그리 쉽지 않았다. 가로수 그늘 아래 잔디 정원엔 꼬마들이 뒹굴고 있었다.
‘조금 이르지만 여기서 점심 먹고 갑시다.’ 인천 총각이 카페에 들어가 반숙 계란과 구운 빵에 베이컨 세 조각을 얹은 샌드위치 여섯 개를 사다놓고는 다시 옆 마켓에 들어가 라면과 과일을 사왔다.
나는 뭔지와 같이 이동식 목재 테이블을 번쩍 들어 그늘로 옮겨놓았다가 추워서 다시 제자리에 갖다놓았다.
오후 2시, 제럴딘(Geraldine) 시내 입구에 들어서자 관광 안내 센터가 보였다. 자전거는 길가에 세워두고 안으로 들어갔다. 센터 여직원은 여행안내와 작은 매점을 같이 운영하느라 왔다 갔다 바빠 보였다.
“페얼리로 가는 중이에요. 이 길로 쭉 가면 되지요?” 스마트폰의 구글 지도를 열어 보이며 물었다.
“50킬로미터 정도 가야합니다.”
“도로 상태는 괜찮나요?”
“네, 아스팔트 포장길인데 고개가 좀 많습니다.”
계산대로라면 쉬면서 천천히 시간당 10킬로미터씩만 달려도 저녁 7시 전에 도착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곳 제럴딘 시내에서 묵고 갈까요, 아니면 페얼리까지 갈까요?”
“더 갑시다.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았는데요.”
“춘천댁은 어떠세요?”
“네, 저도 괜찮아요. 다른 분들이 좋다면 가시죠.”
이곳 제럴딘에서 멈추기엔 시간이 이르다는데 의견이 모아졌다. 춘천댁은 자신이 초보라서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을까 염려스런 표정이었다. 하지만 지금껏 초보답지 않게 쌩쌩 잘 달려왔다.
제럴딘 시내를 가로질러 동쪽으로 한 시간 정도 달리자 급경사 고개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뒤에서 누군가가 자꾸 잡아당기는 것 같아요.”
“바퀴가 아스팔트에 착 달라붙었어요.”
“상의를 벗어야겠어요.” 제각기 입에서 거품을 토해냈다.
‘이런 급커브 고갯길에 차량 제한 속도 100킬로미터는 너무 심한 거 아냐?’ 나 혼자 중얼거렸다.
고개에 오른 뒤 잠시 내리막길의 시원함은 맛보지만 오르막의 힘겨움을 보상받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또 고개다.’ 이번엔 흔한 고개가 아닌 듯 보였다. 굴곡이 심해 그 다음이 내리막인지 오르막인지 끝이 보이질 않았다.
‘이번이 마지막 고개겠지.’라고 생각해 오르고 나면 또다시 오르막이 이어졌다.
수직 벼랑에서 풀 뜯던 염소들이 가끔씩 머리를 치켜든 채 지친 나를 보고 히죽히죽 웃는 듯했다. 이젠 도로변 양 떼들을 만나도 반갑지 않고 그들도 나를 본체만체했다.
순간순간 능선과 능선 사이로 쏜살같이 지나가는 흰 구름 무리들이 거센 바람의 위력을 일러주곤 했다.
“아이구, 좀 쉬었다 갑시다.” 나는 힘들어 땅바닥만 보며 페달을 돌리다가 고갯마루에 올라 멈췄다. 이미 앞서 달린 춘천댁이 먼저 도착해 쉬고 있었다. 뒤따르던 만능 키와 추니도 차례대로 멈추자마자 동시에 벌컥벌컥 물통을 비웠다.
“뭔지와 인천 총각은 먼저 앞에 갔나요?” 내가 물었다.
“고갯마루에 올라와 보니 안 보이더라고요.” 춘천댁이 말했다. 남편 뭔지가 먼저 가버린 게 조금 서운한 듯 보였다.
“여기요, 사진 한 장 찍어주세요.” 춘천댁이 길 건너 비스듬히 누운 고목나무 위에 올라 포즈를 취했다.
“한 장 더요. 이쪽에서요.” 늘씬한 능선이 발아래 깔리고 새파란 하늘엔 커다란 솜사탕이 지나고 있었다.
“뷰가 끝내주네요.” 만능 키가 말했다.
“먼저 갈게요.” 춘천댁은 사진을 찍자마자 출발 채비를 했다.
“좀 더 쉬었다 가요. 우린 방금 왔는데.” 추니가 말했다.
“춘천댁이 조금 무리하는 거 아녜요?” 떠나는 춘천댁의 뒷모습을 보며 만능 키가 말했다.
“뒤떨어지는 게 좀 부담스런 모양이에요. 다른 사람들에게 폐를 끼친다고 생각하는 가봐요.”
“그럼 우리도 슬슬 출발하죠.” 추니도 덩달아 서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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