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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이 50년만에 형무소 새로 짓는 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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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이 50년만에 형무소 새로 짓는 사연

장기불황에 범죄 급증, 지자체는 유치 경쟁

십수년째 장기불황의 늪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는 일본의 씁쓸한 단면을 보여주는 한 사건이 일본인들을 한층 우울하게 만들고 있다.

일본 법무성은 50여년만에 형무소들을 새로 짓기로 했다. 불황이 계속되면서 형무소들이 범죄자들로 가득 차 이미 수용정원을 넘어섰기 때문이다. 이 소식만 해도 일본인들을 우울하게 만들기에 충분하다.

그러나 일본인들을 한층 우울하게 만든 소식은 새로 짓는 형무소를 유치하기 위해 일본의 지방자치단체들이 너도나도 치열한 경합을 벌이고 있다는 사실이다. 과거에는 형무소 하면 지자체들이 서로 유치하지 않으려던 대표적 '혐오시설'이었다. 그러나 불황이 깊다보니 형무소를 유치해서라도 지역경제를 살려야 한다는 것이 지자체들의 생각이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장기불황 속에서 허덕이는 일본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또하나의 상징적 사건이다.

***반세기만에 새로 형무소 짓게 만든 장기복합불황**

일본 법무성은 지난 15일 오는 2005년까지 형무소를 1,2개 새로 짓기로 결정했다. 형무소 신설은 지난 1951년이래 51년만에 처음 있는 일이다. 법무성은 올해 안에 형무소를 세울 곳을 정해, 내년 예산에 이를 반영키로 했다.

현재 일본의 형무소ㆍ구치소는 모두 1백89개소로 수용정원은 약 6만5천명에 달한다. 일본경제가 한창 잘 나갈 때만 해도 이들 형무소는 빈 자리가 많았다. 그러나 부동산 거품이 꺼지면서 91년부터 이른바 헤이세이(平成) 장기복합불황이 시작되자 상황은 달라졌다. 해마다 범죄자가 꾸준히 늘더니 요즘 몇년 사이에는 급증하기 시작했다.

범죄자가 급증한 것은 불황이 장기화하면서 살기가 막막해진 노령자와 외국인노동자들의 범죄가 급증했기 때문이다. 또한 범죄가 나날이 흉폭해지면서 형량이 긴 장기수가 급증했다.

이처럼 해마다 5천~6천명씩 늘어난 범죄자는 마침내 지난해말 35년만에 형무소 정원을 초과했다. 구치소를 제외한 일본의 전국 형무소 59개소의 상황을 살펴보면, 정원 대비 수용비율이 7월말 현재 1백14.5%에 달했다. 수형인들은 빽빽하게 모로 누워 칼잠을 자야 했다. 당연히 형무소내 보안상황도 크게 악화됐다.

법무성은 이에 2001년부터 올해에 걸쳐 기존 형무소를 증축하는 방식으로 정원을 약 5천명가량 늘렸으나, 3년후에 정원이 약 1만명 부족하다는 관측이 나오자 반세기만에 새로 형무소를 짓기로 결정한 것이다.

***10년 불황에 혐오시설이란 없다**

종전에 일본에서 형무소는 대표적 혐오시설이었다. 자기 지역에 형무소를 새로 짓기를 허용하기는커녕 있는 시설도 다른 곳으로 옮겼으면 하는 것이 일본 지방자치단체들의 한결같은 생각이었다.

그러나 십수년째 계속된 장기불황이 일본 지차체의 생각을 1백80도 바꿔버렸다. 법무성이 새로 형무소를 짓기로 하자 벌써 20여개 일본 지자체들이 유치 의사를 밝히고 나섰다.

이들의 노림수는 두가지이다.

하나는 형무소와 함께 세워질 교도관 숙소 등 연관시설 건설에 따른 경제적 효과다.
다른 하나는 수형자와 교도관 등 인구증가에 따른 지방교부세 등의 증액이다.

한마디로 말해 죽어가는 지역경제를 살리기 위해선 형무소가 아니라, 그보다 혐오스런 시설이 들어와도 마다할 이유가 없다는 게 이들 지자체의 생각인 것이다.

얼마 전 국내에서도 개봉된 일본영화 '배틀 로얄'이라는 영화가 있다. 고교생들에게 왕따 당한 선생이 자위대와 손잡고 학생들을 외딴 섬에 가둬놓고 '근성'을 키운다는 이유로 단 한명만 살아남을 때까지 서로를 죽이도록 몰아간다는 황당한 스토리의 영화다. 그러나 이 영화를 본 많은이들이 "병든 일본의 내면을 보는 듯하다"고 말했다.

한 나라의 거품경제가 꺼지면서 쇠락할 때 구성원들이 얼마나 피폐해지는가를 지금 일본은 우리에게 웅변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지금 우리 사회 일각에서도 목격되는 거품경제의 폐해를 미리미리 경계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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