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부 독재시절 민주화 운동에 참여하는 등 교계와 사회를 향해 목소리를 내 온 문동환 목사가 9일 오후 소천했다. 향년 98세.
문 목사는 일제강점기이던 1921년 5월 5일 북간도 명동촌에서 독립신문 기자로 일했던 부친 문재린 목사와 여성운동가였던 김신묵 여사의 3남 2녀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늦봄 문익환 목사의 동생이다.
고인은 독립운동과 기독교 선교의 중심지였던 명동촌에서 형 문익환 목사, 윤동주 시인 등과 함께 자라면서 어려서부터 민족과 나라를 위해 헌신하는 삶에 뜻을 뒀다.
목회자인 고인이 평생 사회 운동에 투신한 계기는 형 문익환과 여행 중 얻은 깨달음 덕분이었다. 고인은 경상도 금오산을 지나면서 너무도 힘들게 살아가는 민중들을 보며 '고난받은 민초들의 삶의 현장으로 내려가는 게 구원'이라는 확신을 얻었다고 회고한 바 있다.
한국전쟁이 발발한 이후인 1951년 미국 유학을 떠나 박사학위를 받았고, 1961년 모교인 한신대 교수로 초빙받아 귀국했고, 미국 유학 중 만난 헤리엇 페이 핀치백(문혜림) 여사와 결혼했다.
고인은 이승만에서 박정희로 이어지는 독재정권의 부조리함을 교육 현장에서 설파했다. 1976년 명동성당에서 '3.1 민주구국선언문' 사건으로 투옥돼 2년 가까이 복역했다. 석방된 후에는 민중운동에 깊이 참여했고 동일방직 및 와이에이치(YH) 노조원의 투쟁을 지원하다 다시 투옥되기도 했다.
1986년 한신대에서 정년퇴임을 한 후 재야에서 민주화 활동을 하던 중,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의 권유로 민주화운동을 했던 젊은 청년 활동가들을 이끌고 평화민주당에 입당, 평민연(평화민주통일연구회) 이사장으로 활동했다. 1988년에는 전국구 의원으로 국회에 진출해 평화민주당 수석부총재를 지냈고, 국회 5.18 광주민주화운동 진상조사특별위원회 위원장으로도 활동했다.
유족으로는 부인과 아들 창근·태근, 딸 영혜·영미(이한열기념관 학예실장) 씨 등이 있다. 영화배우 문성근 씨는 그의 조카다.
빈소는 연세대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다. 발인은 12일 오전 8시, 장례예배는 오전 9시 한신대 채플실에서 열린다. 장지는 마석 모란공원에 마련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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