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이 지지부진한 금융개혁의 대가를 톡톡히 치르고 있다. 부실채권이 줄어들기는커녕 점점 늘어나고 있는 것. 일본 정부가 지금까지 공식적으로 밝힌 부실채권 규모는 26조엔이었다. 그러나 2일 일본 금융청은 지난 3월말 기준으로 부실채권 규모가 43조2천억엔이라고 발표했다. 이는 지난해 3월 33조6천억엔과 비교해 9조6천억엔 즉 28.6%나 증가한 것이다. 이에 따라 부실채권 비율도 5.3%에서 8.4%로 늘어났다.
금융청의 발표자료에 따르면 부실채권 판정기준을 엄격히 함으로써 부실채권 규모가 크게 증가하게 됐다. 이 같은 부실 채권의 총액과 증가폭은 현재와 같은 집계가 시작된 1999년 3월 이후 최대 규모다.
그러나 금융전문가들은 이처럼 부실채권이 늘어난 근본 요인은 각 은행별로 자산 평가를 강화하고 금융청이 특별 검사를 실시한 영향보다는, 디플레이션이 장기화되고 있는 가운데 금융개혁은 제대로 손을 대지 못한 탓이 큰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대형은행을 중심으로 부실 채권 총액이 늘어났다. 43조2천억엔 중 시중은행, 장기신용은행, 신탁은행 등 주요은행이 28조4천억엔을 차지하고 지방 등 제2급 은행 합계는 14조 8천억엔이다.
금융청의 분류기준에 따르면 부실채권은 1999년부터 금융재생법을 적용한 채권으로서 요(要)관리 채권, 위험채권 및 파산갱생 채권을 합한 불량채권으로 통칭된다. (참고로 일본은행법에 따른 불량채권은 리스크관리채권으로 불리며 이 기준으로는 불량채권이 42조엔으로 집계돼 일부 외신에서는 42조로 보도됐다. 42조엔의 규모도 93년 발표 이래 최대다).
내역별로는 실질적인 파산 부실 채권인 위험채권 및 파산갱생채권은 26조7천억엔으로 전년보다 4조엔이 증가했으며, 상대적으로 리스크가 적은 요관리 채권은 5조6천억엔이 늘어난 16조5천억엔으로 집계됐다.
그러나 미국 등 서구 금융계에서는 일본의 실제 부실채권 규모가 이보다 최고 1백조엔이 많다는 주장도 계속 나오고 있다. 일본경제신문도 2일 "불량채권의 예비군이라고 할 수 있는 '요주의채권'도 1백조엔에 이른다"고 보도했다.
일본 중앙은행 총재인 하야미 마사루도 지난 7월18일 증시 침체로 일본 은행들의 자기자본 비율이 낮아질 수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하야미 총재는 "최근 일본 증시의 주가하락은 은행들의 손실과 직결된다"고 우려했다. 과거 일본 은행들은 부실 대출을 주식의 수익률로 메꾸었다는 점 때문이다. 이러한 손실로 자기자본비율을 10% 이상으로 유지해왔던 주요은행들의 자기자본비율이 다시 감소할 것으로 하야미 총재는 경고했다.
금융청은 2005년 3월말까지 불량채권문제를 정상화해 불량채권의 비율을 3%~4% 정도로 낮추는 '재생시나리오'를 세워놓고 있다. 그러나 이번 집계에서 13개 대형 은행들의 부실채권 비율이 8.4%로 지난해에 비해 오히려 3.1% 포인트 높아진 것으로 나타나 일본 정부의 개혁의지가 부족했음을 여실히 드러냈다.
이에따라 니혼게이자이신문은 "불량채권이 계속 확대된다면 재생시나리오가 수정될 가능성도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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