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뚱보 거인과의 인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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뚱보 거인과의 인연

[‘바이크 보헤미안’ 최광철의 수상한 여행 3] ⑧기대의 대가

나는 일행과 함께 필 포레스트 로지 정문을 나와 에코 로지 숙소를 찾아 핸들을 돌렸다.


채 10분도 지나지 않아 도로변 작은 레스토랑에 ‘OPEN’이라고 쓰인 형광판이 눈에 띄었다. 순간 정신이 번쩍 들고 너무 반가웠다. 이토록 작은 마을에 늦게까지 문을 연 식당이 있다는 게 의외였다.

자전거 여섯 대가 레스토랑 마당을 꽉 채웠다. “영업 중이신가요?” 나는 삐걱거리는 목재 출입문을 열고 들어갔다.
“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침침한 조명 탓에 안쪽에 있는 여종업원을 얼른 알아차리지 못했다.
“잠깐만요.” 나는 바깥에 서있던 일행들에게 들어오라며 힘껏 손짓했다.
“안녕하세요. 반가워요. 와∼, 따스해요.” 일행은 우비를 벗어들고 들어오며 모두 한마디씩 던졌다.

ⓒ최광철 여행작가·방송인

열 평 남짓 레스토랑 안쪽 바(BAR)에는 네 명이 맥주잔을 들고 여종업원과 마주 앉았고, 식당 홀에는 대여섯 명이 앉을 수 있는 빈 테이블 두 개가 놓여있었다.

‘와우, 하하하.’ 바에 앉아있던 손님들이 일행들을 보자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며 소리쳤다.

“여기서 저녁 좀 먹으려고요.” 여종업원에게 말했다.
“네. 저기 빈 테이블에 앉으십시오.” 바 끄트머리 출입문을 번쩍 들어올리고 나와 메뉴판 여섯 개를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치즈 피자 라지 두 개와 콜라 1.5리터짜리 두 병 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근데요. 혹시 이 근방에 에코 로지라고 있나요?” 주문을 받고 돌아서는 여종업원에게 물었다.
“에코 로지요? 네, 저기 저분이 에코 로지 매니전데요.” 바에서 맥주를 마시고 있는 뚱보 거인을 가리키며 말했다.
키 2미터, 몸무게 100킬로그램은 족히 넘어 보이는 뚱보 거인의 덥수룩한 구레나룻이 경계심을 자아냈다.

“저기요, 저희 에코 로지를 찾고 있는데요.” 나는 가까이 다가가 정중하게 물었다.
“….” 뚱보 거인은 아무 말 없이 빙그레 웃음만 띠었다.

“한국에서 왔어요. 뉴질랜드 자전거 여행을 하고 있어요. 엊그제 크라이스트처치를 출발했습니다. 오늘 저녁 에코 로지에서 묵으려고 해요. 가능한지요?”
또박또박 단어를 끄집어냈는데 내 말을 잘 알아듣지 못한 듯했다. 게다가 나는 뚱보 거인의 말은 한마디도 제대로 알아들을 수 없었다.


ⓒ최광철 여행작가·방송인

필담이 오가고 착오를 거듭하면서 차츰 무슨 말인지 서로 조금씩 이해가 깊어졌다.

“1인당 십오 달러, 일행이 여섯 명이니까 모두 구십 달러입니다.”
“네, 좋아요.” 나는 즉답했다. 지금 가격을 논할 상황이 아니었다.
“위치를 알려드릴 테니 그곳으로 가시죠.”
“먼 곳에 있나요?”
“아뇨. 좀 외딴곳에.”
“그럼 잘 곳을 먼저 좀 확인할 수 있을까요?”
“….”
뚱보 거인은 반쯤 남은 맥주잔을 내려다보고는 쓴웃음을 지었다.

“내가 갔다 올게요.”
피자를 기다리고 있는 일행을 남겨두고 뚱보 거인의 뒤를 따라 레스토랑을 나섰다.

“따라오세요.”
불과 100미터 정도 걸어 도착한 곳은 뚱보 거인의 집 차고였다. 그는 셔터 문을 들어올렸다.
“옆에 타십시오.” 작은 트럭에 올라타며 내게 말했다.
“예, 에코 로지가 먼 곳에 있나 봐요?”
“아뇨. 멀지 않아요.” 대답이 무뚝뚝하게 들렸다. 이렇게 덩치 큰 사람 옆에 앉은 적이 처음이다.


ⓒ최광철 여행작가·방송인

차고를 빠져나와 큰 고개를 넘어 한참을 달리자 오른쪽으로 들어가라는 손바닥 크기의 작은 에코 로지 방향 표지판이 전조등에 반사됐다.
뚱보 거인이 샛길로 핸들을 돌리자마자 곧바로 차량이 교행하기 어려울 정도의 좁은 진흙길이 나타났다. 누가 언제 이곳에 들어왔는지 흔적이 없고, 양옆에 잡풀이 무성해 도랑과 노면이 제대로 구분되지 않았다.

‘쭈르륵쭈르륵.’ 바퀴가 진흙에 미끄러지면서 길게 지그재그로 움직였다.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웅덩이를 텀벙거리며 연신 통과했다. 갑자기 푹 꺼진 도로를 넘느라 바이킹 타는 전율을 느꼈다. 비는 계속 내리고 있었다.

‘이거 어쩌지.’ 나 혼자 중얼거렸다. 설사 가봐서 로지가 괜찮다고 하더라도 가로등도 없는 캄캄한 밤중에 일행들이 자전거를 밀고 들어올 수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서 그냥 돌아가자고 할까.’라고 생각했지만 차마 되돌아 나가자고 말하기엔 너무 깊이 들어왔다.
드디어 2킬로미터 넘는 진흙탕 길을 통과해 시커먼 건물 뒷마당에 차를 세웠다. 스무 평 남짓 마당을 에워싼 고목들이 으스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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