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황유미 양, 너무 보고 싶습니다."
태안화력발전소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로 일하다 산재 사망 사고를 당한 고 김용균 씨 어머니 김미숙 씨가 영상에 나온 고 황유미 씨 사진을 가만히 쳐다보았다. 목련 꽃봉오리를 보고도 피우지 못한 아들이 생각난다던 어머니는, 수많은 삼성 노동자들의 영정을 보고 "너무 꽃다운 나이에 져서" 마음 아파했다. "그렇게 병으로 지금 힘들어 하고 죽어간 사람들, 너무 마음이 아픕니다. 저희 아들처럼 그렇게 죽어갔을 걸 생각하니까…."
2019년 3월 6일은 삼성반도체에서 일하다 백혈병으로 숨진 고 황유미(23) 씨의 12주기가 되는 날이었다.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 '반올림'은 서울 조계사에서 전자산업 산재 사망 노동자 추모 문화제를 열었다. '반올림 시즌2'의 시작이다.
2018년 11월 반올림과 삼성전자가 직업병 피해자에 대한 사과와 보상 등에 합의했지만, 끝이 아니다. 반올림이 받은 신규 제보자 220명 가운데 62%인 127명은 보상에서 제외됐다. 반도체와 LCD 사업장이 아닌 곳에서 일했거나, 보상 대상이 아닌 다른 암에 걸렸거나, 병을 진단받은 시기가 보상 범위에서 벗어난 경우들이다.
고 황유미 씨의 아버지 황상기 씨는 "삼성과 중재안 합의만으로 마냥 좋아할 일은 아닌 것 같다"며 "중재안에 합의하고 나니 중재안 바깥에 있는 사람들의 제보가 너무 많이 들어와 있는데, 중재안 바깥에 있는 사람들이 보살핌을 받기 위해서도 노력해달라"고 말했다.
반올림은 더 근본적으로는 '중대재해법' 제정 운동을 벌이고 있다. 황상기 씨는 "이런 사고를 막으려면 노동자들이 자기 사업장에서 병들거나 죽게 되면, 근본적으로 엄청난 손해를 본다는 것을 기업이 느끼도록 해야 한다"며 "국회에서 중대재해법이 꼭 통과되어서 어느 사업장이든지 일하는 노동자가 좀더 건강하게 일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황상기 씨는 마지막으로 "우리나라 학교에서는 학생들한테 노동자가 되는 교육을 시키지 않고 학교를 졸업하면 바로 현장에 투입되니까 노동자들이 자기가 노동자인 줄도 모르고 가서 막무가내로 일을 하다가 사고가 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황 씨는 "학교에서부터 학생들한테 산업안전보건 교육과 노동조합법 교육을 시키고 준비된 노동자를 만들어서, 준비된 노동자가 사회에 나와서 현장에서 일하면 지금보다 좀더 안전하고 회사도 좀더 건강한 사업장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고 김용균 씨의 어머니 김미숙 씨는 "우리 사회가 너무 안전하지 않고, 그래서 이렇게 직업병, 아니면 사고로 죽어가고 있는 것을 그냥 보고만 있고 싶지가 않다"며 "우리 아들 억울한 누명 쓴 거 풀고, 지금도 죽어가고 있는 사람들을 위해서 얼마나 내가 힘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싸우겠다"고 힘을 보탰다.
삼성전자 LCD 공장에서 일하다가 뇌종양에 걸려 시각, 언어, 보행 장애 판정을 받은 한혜경 씨는 "저희 반올림이요. 문제가 좀 해결됐다고 해서 끝난 거 아니에요. 그러니까 여러분들도 앞으로 많이 해주세요"라고 말했다. 이날 조계사에는 한혜경 씨가 그린 '안마하는 손'이라는 제목의 작품들이 전시됐다. "한혜경의 두 번째 싸움, 일하는 사람으로 살고 싶어요"라는 제목의 전시는 직업병 피해자의 '일할 권리'에 대한 메시지를 던졌다.
"한혜경의 손은 여전히 힘이 셉니다. 그 손으로 안마하는 사람으로 일하고 싶습니다. 내가 주무르면 엄마도 시원하다고 해요. 전문적으로 안마를 가르쳐 줄 선생님을 찾고자, 안마하는 손을 그리기 시작했습니다"라는 설명이 붙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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