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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대 선 '김정은 리더십', 그리고 文의 역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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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대 선 '김정은 리더십', 그리고 文의 역할

[이충렬 칼럼] '강경 노선'으로 돌아가선 안된다

1. 전투에 져도 전쟁에 이길 수 있다.

북한과 미국의 하노이 담판이 왜 성과없이 끝났을까? 현재까지 알려진 바를 토대로 추론한다면, 스몰딜에 가깝게 마련된 실무합의안을 트럼프 대통령이 제치고, 북한의 전면비핵화를 골자로 한 '빅딜'을 들이밀었고, 사전에 준비하지 않았던 북한이 이를 수용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존 볼턴 안보보좌관의 악역에 대한 설명도 있고, 마이클 코헨 변호사의 미 의회 청문회가 작용했다는 설명도 있다.

그러나 본질을 본다면, 터질 일이 터졌다고 볼 수 있다. 북미 사이의 협상은 본질적으로 '빅딜'에 기초하지 않으면 안된다. 설혹 동시행동의 원칙을 적용하더라도 비핵화로 가는 전체 그림은 제시되어야 했다. 필자는 김정은 위원장이 "비핵화 의지가 없다면 여기까지 왔겠는가"라는 언급에서 보듯 김정은 위원장이 획기적 내용물을 준비해서 왔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낙관적이었다. 그렇지만, 결과를 놓고 봤을 때, 북한은 비핵화에 대한 의지는 있으되, 이를 가시화할 액션플랜은 가지고 오지 않았다.

정상 간의 담판은 도박판의 판돈을 건 일대 승부다. 트럼프 대통령 스타일이라면 더욱 더 그러하다. 트럼프 대통령이 칩 전부를 내밀고 올인을 밀어부쳤을 때, 김정은 위원장이 작전타임을 요구해서, 하루 더 회담을 연장하더라도 최종 합의를 위한 노력을 더 할 수는 없었을까? 작년 12월 3일 필자는 '평양에서 두 정상의 빅딜을 기대한다' (바로가기)라는 글을 쓴 바 있다.

솔직하게 표현해서, 현재의 북미회담은 북한이 팍스아메리카나 체제의 시민권을 획득하는 과정이다. 중국은 7년이상 걸렸고, 베트남도 10년이나 걸렸다. 북한은 이제 시작이다. 그 과정은 불가피하게 북한이 양보할 것이 더 많을 수 밖에 없고, 순간 순간 모욕감을 느낄 일이 생길 수밖에 없다.

현재의 북미대좌를 역사적 안목에서 본다면, 1853년 페리제독의 함대가 동아시아(즉 일본)에 출현한 이래, 미국의 최고지도자가 일본을 건너뛰고 한반도 문제에 직접 당사자로 참여한 최초의 사변이다. 그 점에서 필자는 워싱턴의 기득권 세력과 일본의 반대를 무릅쓰고 북한과 직접 대화를 추진하고 있는 트럼프 대통령에게 대단한 감사의 념을 가지고 있다.

북한으로서는 (이번 하노이 회담이) 불쾌하고 괘씸하겠지만, 이 담판의 역사성을 중시해야 한다. 길고 긴 협상의 한 고비로 해석해 주기를 바란다. 북한이 언젠가 오늘의 중국이나 베트남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의심하지 않는다.

2. 김정은 위원장의 신노선을 지지한다

김정은 위원장이 핵·경제 병진 노선을 뒤로하고, '경제건설 우선주의' 노선을 내건 것을 진심으로 환영한다. 한반도에서 전쟁의 가능성을 없애고, 평화를 정착시킬 수 있다면 무엇인들 못하랴. 하물며, 남북한의 협력으로 다 함께 번영할 길이 있다면 더 무슨 말이 필요하랴.

북한의 신노선이 성공해서, 번영하는 북한이 나온다면, 동아시아는 유럽 못지않은 지역이 될 것이다. 그 길로 가는 첫 번째 관문이 미국과의 관계정상화다. 이제 선택해야 한다. 어렵게 만든 핵무기를 끌어안고 갈 것인지 아니면 포기하고 남한과 미국과 공존의 길로 갈 것인지.

하노이로 가기전에 <노동신문>에서는 '우리는 이제 되돌아갈 길이 없다. 앞으로 나아갈 뿐이다'라는 비장한 글이 실리기도 했다. 그렇다. 김정은 위원장의 선택은 이제 하나 뿐이다. 그런데, 북한의 앞길을 마뜩치않아하는 세력은 너무 많다. 일본의 극우세력이 그러하고, 미국의 대다수 주류세력도 북한의 선의를 의심한다.

지금 세계의 촉각은 김정은 위원장의 다음 행보를 주시하고 있다. 다시 핵실험을 재개할 것인지 아니면 새로운 제안으로 미국과 협상을 재개할 것인지.

이번 하노이 회담을 통해 김정은 위원장은 소중한 것을 얻었다. 회담으로 가는 전 과정을 통해 정상국가의 지도자로서의 안정감을 보여주고 신뢰를 주었다. 이번에 본 북한은 그동안 선전되어온 불량국가(rogue state)의 모습이 아니었다. 이 소중한 성과를 김 위원장은 계속 축적해야 한다. 다시 강경노선으로 되돌아가는 것은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3. 남한의 '중재자'론을 폐기할 때

북한이 중국이나 베트남과 다른 점은 '남한의 존재'다. 다행히 남한은 촛불혁명이후 절대다수의 국민이 북한과의 평화공존을 지지하고 있다. 촛불정부의 문재인 대통령도 김정은 위원장의 신노선을 강력히 지지하고 있다.

남북의 두 지도자는 작년 한해에만 3번을 만났고, 아마도 앞으로는 더욱 많이 만나게 될 것이다. 고립무원이라고 느끼는 북한으로서는 남한이 야속할 수 있다. 북한으로서는 이 어려운 시기에 남한이 같은 민족으로서 더 힘이 되어 주기를 바랄 것이다.

지난 1년 사이의 신뢰구축을 전제로 할 때, 남한의 역할에 대해 전면적인 재고찰이 필요하다. 그동안 남한은 북미의 중재자 역할을 자임해왔다. 그 결과 북한과 미국으로부터 쌓은 신뢰를 바탕으로 북미 직접 대좌에 이르게 되었다.

그런데 이제 '중재자' 역할은 그만해도 될 때가 되었다. 동맹인 미국의 입장에서도 같은 민족인 북한의 입장에서도 남한이 '중재자'로서 제3자인척 하는 것이 불만스러울 수 밖에 없다. 이제 남한은 그동안 쌓은 신뢰자본을 바탕으로, 적극적인 '문제해결자'로 나서야 한다고 본다.

미국에 대해서는 동맹의 입장에서 '미국의 안보위협'을 적극 해소하겠다는 입장을 명확히 표명해야 한다. 즉 북한의 비핵화라는 공동의 목표를 분명히 해야 한다.

동시에 북한에 대해서는 '북한의 체제보장'에 대해 스스로 인질이 되는 한이 있더라도 보장하겠다는 약속을 해야 한다.

남한정부는 미국의 여론과 지도부를 설득하는 데 적극 나서야 한다. 동맹으로서의 신뢰를 확고히 주면서 동시에 한반도 문제의 당사자로서 어떤 역할을 하고 싶어하는 지 미국 주류사회에 분명히 알리고 설득해야 한다.

그 결과는 남북미의 3자 정상회담이 될 것이다. 북미간의 3차 정상회담도 가능하겠지만, 현재의 정세를 감안해 볼 때, 문재인 정부가 스스로 중재안을 만들어 '남북미 3국 정상회담안'을 추진해 볼 때라고 판단한다.

북한의 신노선이 안착하고, 북미관계가 정상화되면, 최대의 수혜자는 누구일까? 필자는 대한민국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우리가 가장 열심히 노력해야 한다. 목마른 사람이 우물을 파야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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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충렬

『박정희 김대중 김일성의 한반도 삼국지』(2015년, 레디앙) 저자. 1957년 출생. 유신시절 민주주의 운동에 평생 헌신할 것을 맹세, 민주화운동·노동운동·정당활동에 참여하고, 김대중·노무현정부에서 미관말직을 지냈다. 2012년 대선이후 당대에 대한 기대를 접고 강화도에 귀촌, 언젠가 이 땅에 사필귀정(事必歸正)의 역사가 꽃피는 날을 간절히 바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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