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니 샌더스 미국 연방상원의원(77·무소속·버몬트)이 2020 대선 출마를 공식화한 지 12일만에 시카고에서 처음 개최한 대규모 집회에 1만2천여 인파가 운집했다. 2016 대선 민주당 경선판을 달궜던 '버니 열풍'의 불씨가 꺼지지 않았음을 입증한 셈이다.
4일(현지시간) 시카고 언론과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 등에 따르면 전날 밤 7시 시카고 관광명소 '네이비피어'(Navy Pier)에서 시작된 샌더스 유세 현장에 미 중서부의 열성 지지자들이 모여들었다. AP통신은 참석자 수를 1만2천500명으로 추산했다.
청중의 환대를 받으며 단상에 오른 샌더스는 "우리는 3년 전 시작한 정치혁명을 완수하기 위해 오늘 이 자리에 모였다"고 말해 더 큰 환호를 샀다. 그는 "최종 목표는 민주당 경선 승리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꺾는 일도 아닌, 미국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는 것"이라고 밝혔다.
'민주적 사회주의자'를 자처하는 샌더스는 "우리가 뜻을 모을 때 1% 특권층만이 아닌 모두를 위한 국가 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다"며 월가·대형 보험사·제약사·정유사·군수업체·교도소 산업 등에 대한 개혁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인종주의·성차별·외국인 혐오·동성애 혐오·종교적 편협성 등으로부터 자유로운 나라, 정의가 구현되는 사회를 만들어가겠다"면서 정부 주도의 전국민 단일 건강보험 제도·연방 최저임금 15달러 실현·저소득층 주택건설·공립대학 무상교육·사회보장 확대, 포괄적 이민개혁도 다짐했다.
샌더스는 1960년대 시카고대학 재학 시절, 흑백분리 반대 운동에 투신했던 경험을 소개하면서 당시 형성된 세계관이 정치철학의 밑바탕이 됐다고 말했다.
그는 "진정한 변화는 '위에서부터 아래로'가 아닌 '아래서부터 위로 이뤄질 때' 가능하다는 사실을 그때 깨달았다"고 밝혀 박수갈채를 받았다.
샌더스는 시카고 경찰관으로부터 16차례 총격을 받고 사망한 흑인 소년 라쿠안 맥도널드(2014년 당시 17세), 텍사스 주에서 교통단속에 걸려 수감된 지 사흘 만에 숨진 채 발견된 샌드라 블랜드(2015년 당시 28세) 등을 상기하며 "비무장 소수계에 대한 공권력의 끔찍한 폭력"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1시간에 걸친 첫 대중 연설을 마무리 하면서 "컴패션을 갖고, 정의와 인간 존엄 구현의 필요성을 믿는다면 이루지 못할 일은 없다"며 "함께 앞으로 나아가자"고 호소했다.
뉴욕 주 브루클린 출신 샌더스는 하루 앞선 2일 브루클린 칼리지에서 이번 대선 출정식을 열고 "중산층 유대계 가정에서 태어나 자란 과거를 잊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폴리티코는 샌더스가 2016년 캠페인 당시에는 개인적 이야기를 잘 꺼내지 않았었다며 이번 캠페인 전략의 변화를 설명했다. 또 샌더스가 당시 유색인종 장년층 유권자들의 표심을 얻지 못했다면서 이번 선거에서는 초반부터 인종 문제를 적극 앞세우고 있다고 분석했다.
거대 양당 체제가 공고한 미국 의회에서 약 30년간 무소속을 고수해온 샌더스는 2016 대선 민주당 경선에 참가, '아웃사이더 돌풍'을 일으키며 관심을 모았다.
그는 민주당 기득권층의 지지를 받은 힐러리 클린턴과의 싸움에서 이기지 못했으나, 23개 주에서 승리하며 43.1%에 달하는 득표율을 거뒀다.
한편 공화당 전국위원회(RNC)는 시카고 집회가 열리기 수시간 전 "샌더스의 모든 공약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126조 달러(약 15경 원)의 예산이 필요하다"며 "미국 경제가 감당해낼 수 없다"고 주장했다.
샌더스는 금주 뉴햄프셔·사우스캐롤라이나·네바다·캘리포니아·버몬트 등을 돌며 캠페인을 이어갈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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