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다른 '아들·사위·부인 사랑'(?)으로 궁지에 몰린 이명박 서울시장과, 사위 개업식에 직원을 동원한 혐의를 받고 있는 서울시 감사관에 대한 비난글들이 일반시민은 물론, 서울시 직원들 사이에서도 연일 쇄도하자 서울시가 이들 글 가운데 일부를 무단 삭제하는 동시에, 앞으로는 아예 예고없이 이들 글을 삭제하겠다는 방침을 밝혀 큰 물의를 빚고 있다.
힘으로 직원들의 언로(言路)를 막겠다는 초헌법적 발상을 하고 있는 것이다.
***"정치관련 의견은 예고없이 삭제하겠다"**
서울시는 9일 서울시 홈페이지의 직원 자유토론방에 "최근 일부 네티즌이 본 자유토론 게시판의 취지와는 달리 특정 정치인·정당 및 언론사 등에 관한 의견을 게시하여 이용시민의 불편을 초래하고 있어 앞으로 시정과 무관한 정치관련 의견은 예고없이 삭제하겠다"고 공지했다.
이같은 공지는 지난 3일 이명박 서울시장이 거스 히딩크 감독에게 명예시민증을 수여하는 공식석상에 아들과 사위를 참석시켜 히딩크와 사진촬영을 하도록 한 데 이어, 태풍으로 경계령이 내린 4일에는 업무시간에 부인이 동문회장으로 있는 모대학의 최고경영자 과정에 참석해 강연한 이래 일반시민은 물론, 서울시청 직원들 사이에서도 이 시장의 공과 사를 구분 못하는 행동을 비판하는 글들이 쇄도하고 있는 데 따른 대응조처로 읽힌다.
그러나 이같은 공지는 네티즌의 강한 반발만 초래하고 있다.
이 공지를 본 한 네티즌은 "내 글을 지우면 헌법에 위배되는 거 알지?"라는 문장으로 시작한 글에서 이명박 시장에게 "배고프고 힘든 어린 시절 벌써 잊었냐. 자식한테는 힘들게 살아가는 걸 가르쳐야 성공할 수 있다. 어려서 썩은 사과 먹던 시절 잊지 말고 살라"고 질타했다.
도리어 불길에 기름 부은 격이다.
한 네티즌은 "요즘 세간에서 거세게 일고 있는 이명박 시장에 대한 비난이 왜 시정과 무관한 정치관련 의견인가"라고 반문하며 "현대건설 출신의 이 시장이 게시판 글을 일방적으로 삭제하는 등 불도저처럼 밀어부치면 비난여론도 잠재울 수 있다는 과거의 '노가다 식' 착각에 빠져 있는 게 아닌지 모르겠다"고 냉소했다.
***서울시, 공지에 앞서 7일에는 비판글 일괄삭제하기도**
서울시는 이에 앞서 지난 7일에는 한의사인 사위의 개업식에 직원들을 동원한 의혹을 사고 있는 서울시 감사관에 대한 내부고발 및 이에 대한 비판기사들을 일괄삭제해 큰 물의를 빚었다. 또한 일각에서는 서울시가 비판 글을 올린 직원들의 IP를 추적중이라는 이야기도 흘러나왔다.
이에 서울시청공무원직장협의회는 8일 서울시 정화보개발담당관을 만나 강력히 항의한 뒤, 면담결과를 공식 발표했다.
"감사관 사위의 한의원 개업식에 직원들이 수발을 하도록 하였다는 내용을 고발한 사무자동화 자유게시판의 의견이 무단삭제된 것과 관련하여 정보화개발 담당관과 면담한 결과, 2002년 7월7일(일요일) 감사담당관으로부터 삭제요청이 있어 자체적으로 판단해 삭제했다"는 내용을 확인했다. 또한 직원들의 IP 추적은 없다는 답변도 있었다.
직장인 협의회에서는 일련의 사태에 대해 다음과 같이 발표한다.
모든 문제에 대하여 본인이 떳떳하게 밝히면 될 것을 음성적으로 해결하려는 것 자체가 이번 사태확산의 계기가 되었다고 보며, 차후 지위를 이용해 타부서에 부담을 주는 압력은 절대로 있어서도 안되며 이럴 경우 절대로 묵과하지 않을 것이다.
감사관의 행태에 대한 문제점 못지않게 직원이 올린 글을 담당부서로 하여금 삭제한 것은 직원들의 '알권리'를 박탈하는 것이며, 특히 간부와 관련된 일이라 하여 발생하였다면 더더욱 심각하다 할 수 있다.
앞으로 우리의 주장이나 의견은 온라인을 통하여 제기되고, 결정이 날 것이다. 이런 시대의 흐름에 역행하는 악의적인 조작이나 개입은 있어서는 안되며, 보다 더 자유롭고 창조적으로 서울시의 모습을 얘기하고 논쟁할 수 있도록 보호하여야 할 것이다."
***"폭설이 내릴 때는 눈을 쓸지 않는 법"**
이명박 시장이 현대건설 재직시절 하늘같이 떠받들었던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은 생전에 다음과 같은 명언을 남겼다.
"폭설이 내릴 때는 눈을 쓸지 않는 법이다."
자신이 잘못해 비판이 쇄도할 때에는 조용히 비판을 받아들여야지, 손바닥으로 하늘가리기식 대응을 해봤자 도리어 비판여론만 증폭시킬 뿐이라는, 산 경험에 따른 가르침이다.
이 시장이 지금 보여야 할 모습은 "내가 누군데"라는 식으로, 자신을 비판하는 글들을 분서갱유하려 하는 진시황적 자세가 아니다. 그런다고 이 시장에 대한 비판은 사라지지 않는다. 도리어 증폭될 뿐이다.
지금은 이 시장의 일거수일투족이 순식간에 수백만 네티즌에게 노출되는 인터넷 풀뿌리 민주주의시대이기 때문이다. 이 시장은 시정에 임하기에 앞서, 우선 세상이 어떻게 바뀌었는가부터 깨달아야 할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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