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은 4일 "하노이 담판이 결렬되면서 문재인 대통령이 갖는 중재자 역할이 어느 때보다 부각됐다"며 "북미 간 중재를 위한 '원포인트' 판문점 남북정상회담을 조속히 열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 전 장관은 국회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한반도비핵화대책특별위원회 초청 간담회에 나와 '2차 북미정상회담 평가 및 향후 과제'를 주제로 한 강연에서 이같이 밝혔다.
그는 "(합의 결렬 이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문 대통령의 중재를 부탁했고, 북한 역시 중재를 마다하지 않을 것"이라며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답방이 남아 있지만, 급한 현안인 만큼 이른 시일 안에 판문점 같은 곳에서 이 의제만 가지고 만나 우리가 생각한 창의적 발상과 아이디어를 교환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전 장관은 2차 북미정상회담에서 양국 간 비핵화 담판이 결렬은 됐지만, 비핵화 진전에 긴요한 몇 가지 자산을 남겼다고 총평했다.
그는 "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 대북특별대표와 김혁철 북한 국무위원회 대미특별대표가 정상 간 간접대화에 상시로 참여, 디테일에서 발생할 수 있는 문제를 1차 정상회담 때보다 비교적 최소화했다"며 "북미협상은 톱다운 방식으로 진행됐는데 이렇듯 양국의 사전 실무협상이 한 단계 진화한 것은 긍정적 요소"라고 진단했다.
이어 "종전선언이나 연락사무소 개설과 관련해서도 북미 양국은 서로 논의를 통해 절충할 수 있다는 인식을 공유한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이 전 장관은 북미 간 합의가 결렬된 배경에 대해 "회담 과정에 대한 정확한 파악이 미진한 상황에서 결렬 배경을 단정하는 것은 무리"라면서도 "북미 간 비핵화 인식이 서로 어긋났고, 계산법이 달랐다"고 분석했다.
이 전 장관은 "미국은 비핵화 전 제재완화에 대한 강한 부정적 인식을 지닌 데다 민생분야 제재를 대북제재의 본질로 인식하는 경향이 엿보였다"면서 "반면 북한은 비핵화 진전과 제재완화의 동시 진행을 주장해 결국 합의가 결렬된 것 같다"고 했다.
그는 "북한에 대한 미국의 압박수위가 10m 높이의 댐이라고 한다면, 북한은 비핵화 진행에 따라 그 댐 높이를 단계적으로 낮춰주길 원하지만, 미국은 단 10㎝만 낮춰도 제재완화라는 댐이 터진다는 생각을 갖는 것 같다"며 "이게 바로 하노이 합의가 결렬된 근본적 원인"이라고 추정했다.
그는 이번 합의 결렬이 한반도 내 군사적 긴장을 높일 가능성은 극히 미미하다고 내다봤다. 북미회담에서 합의가 결렬되면 으레 한반도 안보 긴장이 고조되는 관성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이 전 장관은 트럼프 대통령이 기자회견에서 한미연합군사훈련의 중단 지속 의사를 표명한 데다 추가 대북제재에 대해서도 부정적 의사를 밝혔다는 점에 주목했다.
아울러 한미 양국이 올해부터 키리졸브(KR:Key Resolve) 연습과 독수리훈련(FE:Foal Eagle) 연합훈련을 하지 않기로 한 데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하노이 회담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한 것도 그러한 전망에 힘을 싣는다고 이 전 장관은 짚었다.
이 전 장관은 '금강산관광 재개·개성공단 재가동'을 북미 비핵화 논의에서 따로 떼어내려는 노력이 요구된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이 전 장관은 "이번 회담에서 드러나기도 했지만, 금강산·개성공단 카드로 북한이 비핵화를 내줄 가능성은 생각보다 적다"며 "금강산·개성공단 문제를 비핵화와 연동하기가 쉽지 않은 만큼 한국은 미국 정부와 협상해 이 문제를 제재 외의 영역으로 바꾸는 노력을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