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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 아버지라던 잭 웰치, 너마저..."

미국 1천여개 기업CEO, 연봉 많이 받으려 회계조작

"지금 미국 금융계에 지독한 파산 태풍(perfect storm of failure)이 몰아닥치고 있다".

리처드 그라소 뉴욕증권거래소(NYSE) 회장이 잇따른 분식회계로 미국의 대표적 기업들이 파산 위기에 몰리고 있는 상황을 개탄하며 내뱉은 말이다.

***"잭 웰치, 너마저..."**

그라소 회장이 이런 개탄을 하게 된 것도 당연하다. '세계CEO(최고경영자)의 아버지'라 불리던 제너럴 일렉트릭(GE)의 잭 웰치 전 회장마저 회계부정으로 조사를 받게 될 위기에 몰렸기 때문이다.

잭 웰치가 어떤 인물인가. 미국 재계가 전세계에 미국 경제시스템의 우월성을 자랑하던 간판이었다. 국내 CEO들도 가장 존경하는 인물로 서슴없이 잭 웰치를 꼽아왔으며, 국내 CEO의 간판주자인 김정태 국민은행장의 경우 잭 웰치 자서전 2만여권을 사서 전 직원이 읽게 할 정도였다.

이같은 잭 웰치마저 회계조작 의혹에 휘말려 들었으니, 그락소 회장이 미금융계의 파산 도미노를 예견하는 것도 지나친 과장이 아니다. 한 마디로 말해 "잭 웰치, 너마저..."라는 비명이다.

***잭 웰치, 연기금 운용실적 뻥튀기**

영국 BBC 방송의 30일(현지시간) 보도에 따르면, GE는 1999~2000년 두 해에 걸쳐 연기금 운용사업에서 21억 달러를 번 것처럼 이익을 과도하게 부풀려 회계처리를 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이 기간은 잭 웰치가 CEO로 재직하던 기간이었다.

잭 웰치가 이런 무리수를 둔 이유는 실적을 월가의 전망치에 맞추기 위해서였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GE는 회계부정 사실이 드러나기 며칠 전인 지난달 27일 "올해 3.4분기에 순익이 두자리수 증가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뻔뻔스러운 전망을 내놓았다. GE의 최고재무책임자(CFO)인 키스 셔린은 이날 뉴욕에서 투자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이같이 밝히면서 "2.4분기 순익이 기존 전망치인 주당 44센트를 충족시킬 것"이라고 호언했다.

이에 앞서 GE의 최고경영자(CEO)인 제프리 이멜트는 지난달 "GE의 순이익이 2.4분기에 순익이 14% 증가하고 매출은 3~5% 증가해 2.4분기 주당 4센트의 순익을 낼 것이라는 전망치를 달성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GE의 부정회계처리에서 드러나듯 이러한 전망도 소위 월가 전문가들의 예상치에 부합하기 위해 내놓은 거짓말이 아니냐는 것이 월가를 지켜보는 투자자들의 지배적 시각이다. '양치기 소년의 거짓말 법칙'이 작동되고 있는 양상이다.

***이코노미스트, "미국기업 1천여개가 회계장부 조작"**

당연한 결과로 뉴욕 증시에서 GE주가는 연일 하락하고 있다. 이미 지난 5월부터 나돈 부정회계 의혹으로 주가는 올 들어 27.52%나 빠졌다.

설상가상으로 GE 전체 수익 40%를 차지하고 있는 GE캐피탈 등 금융자회사들이 최근 분식회계 사실이 드러나 파산한 월드콤의 채권 보유로 최소한 1억1천만 달러의 손실을 입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제까지 GE는 기업 인수합병(M&A) 때문에 회계 장부 조작이 쉬웠을 것이란 의혹을 받았으나 구체적인 회계조작 사례가 밝혀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따라서 인수합병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차후 더 많은 부정회계 사례가 밝혀질 것으로 전문가들은 예상되고 있다.

정직한 투자법으로 존경받고 있는 '투자의 달인' 워렌 버핏은 이미 GE를 비롯해 제너럴 모터스(GM), 엑손 등 미국의 대표적 기업들이 연기금 운용수익을 미래의 실적을 부풀리는 주요수단으로 삼고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영국의 이코노미스트지는 "97년 이후 회계장부에 손을 댄 적이 있는 미국기업이 1천개에 육박하고 이에 따라 미국 부유층 80%가 기업의 재무제표를 믿지 않게 되었다"고 일침을 가했다.

그동안 두 자리 숫자의 고수익을 올리며 '미국식 경영의 전범'으로 추앙받아온 GE도 사실 미국 기업 투명성 부문에서 최악의 기업으로 선정될 정도로 기업 투명성이 취약한 것으로 드러나 충격을 준 바 있다. 지난 6월초 펀드 매니저에게 기업의 지배구조 현황을 자문해주는 미국 투자가 책임연구센터(IRRC)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GE의 전체 이사 19명 중 사외이사가 7명에 불과해 20대 대기업 평균 67%에 훨씬 밑도는 37%에 불과했다. 이밖에 GE는 최고의 경영자로 추앙받던 잭 웰치의 퇴임 이후 구심점을 찾지 못하고 있으며, 최근 들어 유동성 우려, 불성실 공시 및 순익 감소 등이 불거지면서 월가에서는 'GE 위기설'이 계속 흘러나왔다.

***GE의 유동성 위기 우려, 채권매입 중단**

'채권업계의 워렌 버핏'으로 불리는 빌 그로스 핌코 회장은 지난 3월 "GE가 유동성 위기에 처할 수 있다"며 "GE의 기업어음 매입을 중단하겠다"고 밝혔었다.

그는 "현재 금리가 낮은 수준이기 때문에 GE가 버텨나갈 수 있겠지만 금리가 인상될 경우 단기채무를 감당하지 못할 수준"이라고 경고했었다.

특히 잭 웰치 전회장 시절부터 신화적인 '두자리수 성장세'를 유지해왔던 GE의 순익 감소현상은 GE의 성장신화가 붕괴되는 조짐으로 해석되고 있다. GE는 올 1분기 순익이 전년 동기 대비 3% 감소한 25억달러를 기록, 7년만에 처음으로 순익이 감소했다. GE의 순익부진은 최근 GE 산업부문의 성장세를 지속하게 해준 원동력인 가스 터빈 부문이 급격히 위축되고 있기 때문으로 알려졌다.

GE는 이미 시가총액 1위 자리에서도 밀려났다.

지난 6월 11일 마이크로소프트(MS)에게 시가 총액 1위 자리를 내준 이후 6월 28일 종가기준으로도 GE의 시가총액은 2천8백86억9천2백20만 달러로 MS의 2천9백62억2천5백80만 달러에 이어 2위를 차지하고 있다.

***미국 CEO, 하루아침에 존경의 대상에서 사기꾼으로 전락**

GE마저도 앞날을 불투명하게 만들며 과거의 신화적인 최고경영자 잭 웰치 등이 허상이었음이 드러나면서 현재 미기업 CEO들의 위상은 땅에 떨어졌다. 불과 1, 2년전만 해도 제왕적 권한을 누리며 "대통령도 기업 최고경영자들을 본받아야 한다"며 추앙받던 CEO들은 이제 '사기꾼'으로 불리고 있다.

10년 미국의 호황이 시작되면서 CEO들은 기업수익에 대해 제때 보고하지 않아도 이사회는 아무런 불평을 하지 못했고 심지어는 이사회 회의에 이들이 참석하는 자체를 영광으로 삼았을 정도였다.

그러나 지금은 정반대가 됐다. 이사회 회의에 이들을 불러 노골적으로 조롱하거나 호통을 치는 일은 보통이고 연봉삭감, 사임을 강요하는 일도 다반사처럼 됐다.

회계조작 혐의로 증권거래위원회(SEC)의 조사를 받고 있는 통신업체 '퀘스트 커뮤니케이션' 은 최근 이사회를 열어 CEO 조지프 나치오를 회사에 감당할 수 없는 과도한 부채를 남겼다는 이유로 해임시켰다.

잭 웰치 후임으로 제너럴 일렉트릭(GE)의 CEO가 된 제프리 이멜트는 대주주들의 분노를 누그러뜨리기 위해 기업정보를 이사회에 보고해야 했는데, 이는 잭 웰치 회장 시절에는 상상조차 할 수 없던 일이다.

***CEO, 연봉 많이 받아가기 위해 회계조작 감행**

그러나 금융전문가들은 CEO들이 '사기꾼'이 될 수 있는 빌미는 1980년대 말 투자자들 자신이 제공했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당시 투자자들은 기업 주가에 관계없이 CEO가 엄청난 보수를 받는 것에 불만을 품고 이들의 연봉을 주주들의 이익과 연계시키는 조치를 담은 'CEO개혁안'을 만들었다. 스톡옵션(주식매입선택권)도 기업가치와 연봉을 한데 묶기 위한 방편이었다.

그러나 월가의 이코노미스트들은 "CEO들이 주가를 올림으로써 보수를 더 받게 된 상황에서는 기업의 대차대조표는 돼지저금통과 같은 것이 될 수밖에 없다"고 꼬집었다. 연봉의 열쇠를 쥐고 있는 기업가치를 높이기 위해 CEO들은 분식회계, 기업수익 허위발표를 서슴지 않게 되었다는 분석이다.

이 때문에 컨퍼런스 보드, 뉴욕증권거래소 등 민관 금융당국은 최근 CEO들의 막대한 권한과 이익을 제한하기 위한 일련의 조치를 강구하고 있다.

미국 정부도 스톡옵션을 줄이고 경영투명성을 제고하는 방안을 마련해 기업경영 전반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올해말 발표할 예정이다.

일각에서는 새로운 가이드라인이 CEO들의 자율성과 창의성을 해칠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하고 있어 '주식회사 미국'의 환골탈태가 쉽지 않을 것임을 예고하고 있다.

세계최대 펀드매니저인 조지 소로스도 29일 BBC와의 인터뷰에서 "미국기업들의 회계 부정 사건은 성공만을 중시하는 미국 문화의 병폐"라며 "원칙과 가치, 그리고 도덕적 기준에 새로운 성찰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마디로 말해 지금 미국자본주의가 직면한 위기의 이름은 '도덕적 암'이라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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