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6월29일, 한반도에서는 두 개의 상반되는 풍광이 연출됐다.
***첫번째 풍광, '열린 민족'의 초상**
첫번째 풍광.
6월 한달을 뜨겁게 달구었던 월드컵 3.4위전이 달구벌에서 열렸다. 지난 10일 16강 진출권을 놓고 미국팀과 치열한 경기를 벌였던 바로 그 장소였다.
이날 경기는 경기 자체로는 졸전에 가까왔다. 선수들 사이에서 긴장감의 해이가 읽혔다. 당황함이 읽혔다. 그 결과 졌다. 그러나 이 날 달구벌의 붉은악마들은 경기를 시작하기 전에 경기상의 '이기고 짐'을 의미없게 만들었다.
경기 시작전 터키 국가가 연주되는 순간의 일이다. 관중석의 붉은악마들이 거대한 터키 국기를 끌어올렸다. 우리의 대형 태극기와 같은 크기의 대형국기였다. 이 장면을 본 모두가 환호했다. 이 장면을 목격한 터키선수들은 물론, 터키국민 그리고 아마도 세계인들 모두가 감동했을 게 틀림없다. 이렇게 멋진 나라, 멋진 민족이 또 어디 있겠는가. 붉은악마들이 연출한 이 장면 하나로 이날 게임은 '이기고 짐'의 한계를 일찌감치 넘어섰다.
붉은악마들은 이날 3-2로 우리팀이 패해 적잖이 허탈했음에도 경기가 끝난 뒤 또한차례 대형 터키국기를 끌어올려 승리를 축하해줌으로써 패배를 승리로 승화시켰다. 터키팀의 한 관계자는 경기가 끝난 직후 한 장의 태극기를 구해 운동장을 돌고 또 돌았다. 아마도 이런 식으로라도 한국 국민들에게 감사의 뜻을 표시하고 싶었던 듯 싶다.
월드컵 대회 초반만 해도 우리나라에 대한 터키의 감정은 썩 좋지 않았다. 터키-브라질전때 브라질 히바우두 선수의 교활하면서도 천박한 '할리우드 액션'에 순진한 우리나라 주심이 속아넘어가 터키에게 불리한 판정을 내렸던 까닭이다. 그러나 이날 붉은악마들의 멋진 터키국기 응원으로 이 모든 감정은 눈녹듯 사라졌다. 도리어 비온 뒤 땅이 더 굳듯 양국 관계는 좋아질 게 확실하다.
터키전에 한창 앞서 지난 10일 이곳 달구벌에서 미국전이 벌어졌을 때 우리 선수들은 그 유명한 '오노 세리모니'를 연출, 세계인들의 뇌리에 강한 인상을 심어준 바 있다. 한국민의 자주의식이 얼마나 분명한가를 또렷하게 각인시킨 것이다.
붉은악마들은 그로부터 19일후 대형 터키국기 응원을 통해 한국민이 자주성이 강한 동시에 얼마나 상대방을 존중하는 민족인가를 보여줌으로써 '열린 민족' '열린 민족주의'의 건강함을 세계에 과시했다.
2002년 6월29일의 첫번째 풍광은 이처럼 감동, 그 자체였다.
***두번째 풍광, '닫힌 민족'의 초상**
두번째 풍광.
이날 오전 10시25분의 일이다. 서해 연평도 서쪽 14마일 해상에서 북한의 기습공격으로 남북간에 30여분간에 걸쳐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다. 축구경기같은 게임이 아니라 '실전'이었다. '전쟁'이었다. 이날 전투로 4명의 꽃같은 우리측 젊은이들이 죽고 1명이 실종됐으며 19명이 크고작은 부상을 입었다.
이 소식을 접한 모두가 어이 없었다. 동시에 강한 배반감을 느꼈다.
'북한, 과연 이 정도밖에 안되는 존재인가.'
이번 사태를 저지른 북한의 속내는 아직 정확히 알 길 없다. 일각에서는 최근 우리 대표팀의 월드컵 경기까지 녹화방송할 정도로 남북대화 의지를 분명히 한 북한 지도부에 대해 군부의 극좌세력들이 일으킨 도발이 아니냐는 해석이 나오기도 하나 이 또한 추정일 뿐이다.
그 원인이야 어떠했든 이번 사건은 남쪽 대화세력의 두 날개쭉지를 꺾어버리는 결과로 이어질 게 분명하다. 특히 가뜩이나 3홍 비리에 따른 레임덕으로 거의 힘이 사라진 김대중대통령에게 준 타격은 결정적일 것이다.
이미 이같은 예상은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연평도 교전이 있은 지 몇시간 뒤인 이날 오전 국회 국방위 간담회가 긴급 소집됐다. 큰 사건이 터지면 언제나 되풀이되는 악습이나, 이날도 국회의원들은 진두지휘에 전념해야 할 책임자들을 모두 국회로 불러 들였다. 국방장관, 합참의장 등이 불려나왔다.
이날 간담회는 야당인 한나라당의 운동장이었다.
"도대체 대한민국 대통령이나 국방장관, 합참의장은 누구를 위해 있느냐. 대통령과 국방장관의 사과만으론 안된다. 최소한 국방장관은 책임져야 한다. 이런 사태를 막으려면 확전을 각오해야 한다. 전쟁 한번 하라."(한나라당 강창성 의원)
"이번 사태는 주적 개념을 철회하면서까지 대북 경각심을 희석시키고 교전수칙대로 하지 않고 북한 봐주기 식으로 대처해서 북한의 간을 키워준 결과가 아니냐."(한나라당 박세환 의원)
지난해 9.11테러로 미국 심장부가 초토화됐을 때 일이다. 국회와 언론 등 미국 지도부는 책임 추궁을 '유보'했다. 비상사태때에는 일단 정략적 시각을 접고 통합하는 게 필요하다는 게 미국의 선택이었다. 하지만 우리나라가 지금 보여주고 있는 초상은 그렇지 않다. 정략과 공격이 우선시하고 있다.
'닫힌 민족' '분열된 민족'의 초상이다.
2002년 6월29일의 두번째 풍광은 이처럼 절망감, 그 자체였다.
***'열린 민족'과 '닫힌 민족' 사이의 기로**
두 개의 상반된 풍광이 엇갈리고 있다.
정확히 15년전인 1987년 6월29일에도 이 땅에선 비슷한 풍광이 연출됐었다. 국민들의 열화같은 반독재 투쟁으로 전두환 정권은 붕괴직전의 위기에 몰렸다. 그러자 집권세력간의 밀실협의 끝에 노태우 민정당 대통령후보가 민의를 받아들여 전두환 대통령을 밟고 넘어가는 모양새의 이른바 '6.29선언'을 내놓았다.
밀실음모를 모르는 일반 국민들은 '승리'에 열광했다. 밀실음모의 냄새를 맡은 일각에서는 경계의 소리가 나왔으나 열광의 환성에 파묻혔다. 그리고 이어 정권욕에 사로잡힌 양김이 분열했다. 그후 나타난 결과는 지역주의의 급팽창이었고, 가뜩이나 반토막난 상태인 민족의 사분오열이었다.
그로부터 15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또하나의 기로를 맞고 있다.
'열린 민족'과 '닫힌 민족' 사이의 기로이다.
과연 어떤 길을 선택할 것인가. 6월의 '하나됨'의 축제가 끝난 지금부터 우리가 6월의 감동을 바탕으로 치열하게 고민해야 할 과제이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