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딩크 감독이 8강 신화를 이룩한 18일 영국의 경제전문지 파이낸셜 타임스(FT)는 "히딩크 감독으로부터 한국이 받은 영향은 축구보다는 기업경영 분야에서 더 큰 것처럼 보인다"고 보도했다.
특히 '히딩크 쇼크'는 바깥세계에 대해 폐쇄적이기로 악명높은 '은둔의 나라'에 외국으로부터의 영향을 편안하게 받아들이는 개방성을 확산시켰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특별하다는 지적이다.
***이건희 삼성 회장, "히딩크는 리더십의 전형"**
FT에 따르면, 지금 한국기업들 사이에서는 월드컵 출전 18년간 14번 싸워 한 번도 이겨보지 못한 '불운한' 한국축구대표팀이 1년여에 불과한 짧은 기간 동안 어떻게 세계적인 축구 강국으로 탈바꿈했는지를 놓고 경영연구가 한창이다.
'히딩크 따라배우기' 캠페인을 벌이고 있는 삼성그룹은 그런 대표적인 사례다. 이건희 삼성 그룹 회장은 "히딩크 감독이 리더십의 전형을 보여주었다"고 극찬했다.
이상철 KT 사장도 "주입식 교육에 익숙한 한국인들에게 창조적인 능력을 발휘하도록 고무시킨 히딩크 감독의 노력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면서 "우리도 과거의 틀을 깨고 창조적인 사업조직이 되어야 하며 히딩크 감독의 용병술에서 바로 이같은 점을 배울 수 있다"고 말했다.
FT는 "1997년 외환위기 전만 하더라도 외국계 CEO들은 재벌가문이 지배하는 한국의 대기업 조직에서 별다른 영향력을 보여주지 못했다. 외환위기 이후 선진국의 새로운 경영기법과 유연한 경영방식 등이 도입되기는 했다. 하지만 히딩크 감독은 한국의 제조업과 금융업 등 전분야에 걸쳐 대외적인 개방성을 친근한 것으로 확산시키는 역할을 해냈다는 점에서 특별한 존재가 되었다"고 보도했다.
***연공서열·학벌 타파**
히딩크 감독이 경영연구 사례감으로 떠오른 것은 그가 한국팀을 맡으면서 고민했던 문제들이 한국의 기업들이 겪고 있는 문제들과 유사하다는 점 때문이다. 히딩크 감독은 연장자에 대한 복종을 강요하는 엄격한 위계질서로 상징되는 유교문화야말로 성공을 저해하는 요소로 꼽았다. 그는 나이 어린 선수들이 선배들에게 말하길 꺼려한다는 점과, 훈련할 때 선배에게 태클을 거는 것도 피하려는 대목을 눈여겨 보았다.
이처럼 경직된 관계를 깨기 위해 히딩크 감독은 경기장에서는 '형'이라는 호칭 대신 이름을 부르도록 했다. 또한 인기나 연고 등을 무시하고 젊은 선수들을 과감하게 발탁했다.
심지어는 대표팀의 맏형인 홍명보 선수에게조차 강도 높은 체력훈련을 받지 않으면 명단에서 제외해 버리겠다고 경고했다.
강한 훈련과 선수들의 열정을 결합시켜 창조적인 플레이를 가능하게 했던 것도 히딩크 감독의 이같은 리더십 덕분이었다.
***"이탈리아전에서 한국이 졌어도 히딩크 열풍은 계속됐을 것"**
FT는 이러한 히딩크 감독의 리더십이 각광받으면서 그가 "한국의 영웅이자 기업경영모델로 떠오르고 있다"면서 "이탈리아전에서 한국이 졌어도 히딩크 열풍은 계속되었을 것"이라고 전했다.
FT는 "한국의 정치인들도 지난 6.13 지방선거에서 '히딩크처럼 일하겠다'고 주장하면서 유권자들에게 한 표를 호소했고, 한국정부는 히딩크 감독에게 명예국적을 부여할 것을 검토하고 있으며, 그의 모습을 본딴 인형들이 날개돋힌 듯 팔리고 있다"며 '히딩크 열풍'을 전했다.
그러나 FT는 "개인 차원에서 '히딩크 열풍'의 가장 큰 수혜자는 정몽준 대한축구협회장일 것"이라는 점도 덧붙였다. 그는 히딩크 감독을 영입하는 데 앞장 선 정치인이자 경제인이기도 하다. 때문에 FT는 "정 회장은 한국대표팀의 눈부신 성공에 힘입어 월드컵 대회가 끝나면 올해 연말 대선을 겨냥한 출마선언을 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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