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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적 냉담자'를 위한 변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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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적 냉담자'를 위한 변명

<데스크 칼럼> 사상 최저 투표율, 한나라당도 패배자

가톨릭에서는 교회에 안 나오는 신자를 '냉담자'라 부른다. 한국은 80년대만 해도 전세계에서 가장 가톨릭 신자증가율이 높은 나라로, 세계 가톨릭계의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전세계적으로 신자가 줄어드는 마당에 유독 한국에서만 가톨릭 신자가 늘어난 원인은 간단명료했다. 70~80년대 민주화 운동의 맨앞에는 언제나 가톨릭이 자리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90년대 들어 상황이 달라졌다. 한국 가톨릭 수뇌부는 교회의 '대형화'와 '고급화'를 지향했다. "가난한 열 명의 신자보다는 돈많은 한 명의 신자가 더 중요하다"는 식의 접근이었다. 그 결과는 '냉담자'의 증가였다.

***전례없는 '정치적 냉담자'의 급증**

가톨릭의 표현을 빌면, 이번 6.13 지방선거에 대거 불참한 유권자들을 '정치적 냉담자'라 부를 수 있다.

이번 6.13 지방선거 투표율은 선거사상 처음으로 50% 아래로 떨어져, 지난95년 제1차 6.27선거의 68.4%, 98년 2차 6.4선거의 52.7%에 크게 못미쳤다.

이처럼 투표율이 낮은 원인을 놓고 해석이 구구하다.

일각에서는 전국을 휩쓸고 있는 '월드컵 붐' 탓으로 돌리기도 하고, 유권자의 거의 60%를 차지하고 있는 20~30대 젊은층의 정치 무관심을 원망하기도 한다. 엉뚱하게 '선진국형 정치로의 전환' 운운하는 이들도 있다. 심지어는 이들 선거 불참자를 '회색분자' 또는 '정치적 무뇌아(無腦兒)'로 매도하며, 참정권을 제한해야 한다는 극한적 주장까지 들린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투표율 급락은 월드컵이 아닌 정치권의 책임**

월드컵이 투표율 저하와 관련 있다는 분석은 일면 설득력이 있어 보이나, 엄격히 따져보면 허구다.

한 예로 월드컵 대회 개막전에 증시 주변에서는 "월드컵이 열려 우리나라가 선전하면 주가가 오를 것"이라는 기대섞인 전망들이 많았다. 그러나 월드컵과 주가는 무관했다. 우리 대표팀이 사상최강의 전력으로 선전을 거듭함에도 주가는 도리어 크게 내렸다. 주가를 결정하는 요인은 월드컵이 아닌, 미국경제나 원화환율 같은 '경제요소'였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투표율을 결정하는 것은 월드컵이 아닌, 정치쟁점이나 투표행위의 역사성 같은 '정치요소'이다.
이런 시각에서 볼 때 정치권은 유권자들을 투표장으로 끌어들일 만큼 매력적 존재가 결코 못됐다. 이들은 또한 유권자들로 하여금 85년의 2.12 총선이나 97년말 대선때처럼 투표행위의 역사성을 느끼게 할 만큼 선명한 대립각을 세우는 데에도 실패했다.

선거관리위원회는 선거 며칠 전에 유권자들을 상대로 투표참여 여부를 물었었다. 그 때 나온 결과는 45%만이 투표에 참여하겠다는 것이었다. 이 조사결과는 실제의 투표율과 정확히 일치했다. 이른바 '정치적 냉담자'들은 이미 오래전 선거불참을 결심했던 것이다. 월드컵과 이번 투표율이 별다른 상관성을 갖고 있지 않음을 보여주는 한 증거이다.

그럼에도 일각에서는 "최선이 아니면 차선의 선택이라도 해야 마땅했다"고 질책한다. 그러나 기권도 엄연한 '정치행위'다. 기권을 택한 유권자를 의식없는 '우중(愚衆)' 정도로 폄하하는 것은 분명한 잘못이다.

***유권자들이 정치권을 떠나게 만든 것은 정치인들이었다**

불과 두어달 전까지만 해도 유권자들은 강한 정치참여 의지를 드러냈었다. 3월 민주당 경선과정에 노무현 바람이 질풍노도처럼 몰아치면서였다. '노풍'은 변화를 희망하던 유권자들을 정치의 장으로 끌어들이는 데 성공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정치적 냉담자'는 그렇게 많지 않았다.

그러나 '3홍 비리'가 터지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아니, 보다 정확하게 표현하면 '3홍 비리'에 대한 민주당 및 노무현 민주당 대통령후보의 대응이 국민 일반의 생각과 궤도를 달리 하면서 상황은 바뀌었다.

국민은 위정자 친인척 및 가신 등 집권세력의 만연한 부패에 분노했다. '부패 대 반부패' 대립국면의 출현이었다.

그러나 민주당이 내세운 전선은 '민주 대 반민주'였다. DJ-YS 화해를 통한 신민주연합전선 구축이란 당면한 위기를 빗겨가기 위한 정략으로 유권자들에게 비쳤다. 이에 따른 민심 이반은 이번 6.13 선거과정에 DJ의 지지기반인 광주와 노무현후보의 지지기반인 부산에서의 '강한 반발'로 표출됐다. 광주에서는 민주당 후보를 막판에 교체하는 진통을 겪어야 했고, 부산에서는 민주당 후보가 대참패했다.

이같이 민심과 이반된 전선의 구축은 많은 유권자들을 '정치적 냉담자'로 만드는 데 결정적 작용을 했다. 그 결과는 유권자의 집단적 선거 불참이었고, 민주당의 참패였다.

***한나라당도 패배자**

선거 결과에 지금 한나라당은 열광하고 있는 반면, 민주당은 초상집 분위기다.

그러나 한나라당 역시 눈앞 승리에 취해 환호만 할 일도 아니다. 분명 이번 선거에서는 한나라당이 대승을 거두었다.

하지만 선거에 불참한 전체 유권자의 절반 이상은 한나라당에 대해서도 '노(NO)'라는 신호를 보냈음을 알아야 한다. 또한 이번 지방선거 승리가 한나라당이 잘해서라기보다는 현 집권세력의 권력형 비리에 대한 국민의 심판에 따라 어부지리로 얻은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들 정치적 냉담자를 끌어들이지 못한다면 연말 대통령선거가 이번 지방선거의 재판이 될 것이라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민주당도 이번 참패를 계기로, 내부에서 부패세력을 솎아내는 철저한 자기개혁을 단행해야 한다. 이번 참패의 원인을 '지역주의 부활' 운운하는 식으로 모호하게 흐리려 해선 안된다.

노무현 바람의 본질은 초(超)지역주의였고, 전면적 개혁이었다. 그러나 선거결과 민주당은 지역당으로 전락했다. 그러나 호남에서조차 반(反)부패의 요구가 거셌음을 민주당은 시인해야 한다. 아무리 그 과정에 큰 진통이 따르더라도 민주당은 치열한 반부패 내부투쟁을 벌여 다시 태어나야 한다.

***교자필패 애자필승(驕者必敗 哀者必勝)**

정치권 이상으로 냉담자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 가톨릭은 냉담자 급증의 원인을 '내부'에서 찾고 있다고 알려지고 있다. 가톨릭은 더이상 이들 냉담자를 '잃어버린 양' 또는 '집 나간 탕아'에 비유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80년대 가톨릭이 했던 '소금'의 역할에 기대를 걸고 교회로 들어왔던 이들에게 실망을 안겨준 교회 지도부에게서 그 책임을 찾는 시각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여야 정치권 모두 가톨릭 지도부와 마찬가지 선택을 해야 한다. "내 탓이오"라는 자성부터 해야 하는 것이다.

이번 6.13 선거의 '정치적 냉담자'가 연말 대선에서도 '정치적 냉담자'가 되리라는 보장은 그 어디에도 없다. 이들 정치적 냉담자야말로 한국사회에서 가장 '차가운 열정'을 지닌 유권자이며, 따라서 이들을 잡을 수 있을 만치 앞으로 자기개혁에 철저한 세력들만이 연말 대선에서 집권세력이 되리라는 사실을 정치권은 명심해야 할 것이다.

'교자필패 애자필승(驕者必敗 哀者必勝)'의 가르침을 잊지 말아야 할 때이다. 교만한 자는 망하고, 애처러울 정도로 다시 태어나고자 하는 자가 이기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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