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라디보스톡은 부동항(不凍港)입니다. 매서운 겨울 추위에도 얼지 않는 바다, 시베리아 철도의 종착지. 지리적으로는 러시아 동방의 출구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또한 이곳은 얼어붙은 러시아 대평원의 혹한을 이겨내는 생명의 기점이라고도 할만 합니다. '블라디보스톡의 봄'은 그래서 더 이상 밀려날 곳이 없는 밑바닥에서, 절망을 딛고 일어서는 러시아의 새로운 날을 상징하기도 합니다.
대학로에서 공연되고 있는 뮤지칼 〈밑바닥에서〉는 러시아 작가 막심 고리끼의 작품 〈밤 주막〉을 원본으로 하여 각색한 작품입니다. 1902년에 쓰여진 이 희곡은 캄캄한 동굴 속 같은 허름한 주막에 온갖 사각지대에 몰린 인물들을 등장시킵니다.
극은, 자신의 친딸을 누이동생처럼 기른 주막 여주인, 젊은 한량, 그를 사랑하게 되는 블라디보스톡에서 온 처녀, 사기꾼, 매춘부, 알콜에 중독된 배우, 폐병으로 죽어가는 소녀, 첫사랑을 버리고 백작에게 시집간 여자, 바로 그 백작과 기타 인물들로 이야기를 펼쳐 나갑니다.
암담한 제정 러시아의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는 주막집 분위기와, 그곳에서 갈등하는 이들의 삶은 자신들에게 주어진 운명을 이겨내지 못하고 이리저리 도전하다가 실패하고 무너지는 사람들의 비극을 그려내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다른 한편 이 작품은, 노래와 풍자와 춤을 잊지 않고 있습니다. 극중에 나오는 노래 〈블라디보스톡의 봄〉은 바로 그 비극을 털고 일어서려는 러시아 민중들의, 희망의 합창이기도 했습니다.
본명이 '알렉세이 막시모비취 뻬쉬고프'였던 막심 고리끼의 '고리끼'는 러시아 말로 '비참하고 쓰라리다'는 뜻으로, 그 자신이 겪었던 인생사의 힘겨움과 고된 역정을 그대로 표현한 이름이었습니다. 그는 이를 필명으로 쓰면서, 바로 그 밑바닥에서 처참하고 뼈아프게 살아가는 이들의 현실을 사실적으로 표현하는 동시에, 이들에게 진정한 희망을 불어넣는 길은 무엇인지에 대해 깊이 고뇌했던 것입니다.
〈밤 주막〉은 피곤한 인생을 한 잔의 술로 달래기 위해 주막을 찾아 온 이들의 삶을 따뜻하게 끌어안으려 했던 작품이었습니다.
대체로 아직은 젊고 연조가 길지 않은 배우들이었지만 이들이 전력을 다해 무대 위에서 펼쳐내는 연기와 노래는, 고달픈 인생의 무게를 잠시 내려놓고 우리의 보통의 현실보다 더욱 처절했을 삶 앞에서 그래도 여전히 희망을 이야기할 수 있다는 즐거움을 선사해줍니다.
더욱이 뮤지칼에 나오는 노래가 이제 갓 서른을 넘긴 젊은 제작자의 작곡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 러시아의 원곡인가 할 정도로 착각하게 해주는 그 능력에 탄복하게 됩니다. 혁명의 시대는 지났다고 하는 즈음에 이 작품을 선택한 그의 생각에도 놀라게 됩니다.
결국 진정한 변화는 밑바닥에서 나오는가 합니다. 기득권에 취해 있는 이들에게는 이 세상이 합리적이고 당연하게 보이니, 변화를 추구할 이유가 없습니다.
아니 그 변화는 도리어 두려운 것이 됩니다. 그래서 밑바닥에서의 절규는 이들에게 반역의 소리로 들릴 뿐입니다. 〈블라디보스톡의 봄〉을 노래하는 것도 이들에게는 불온한 짓이 될 사건입니다.
그러나 짜르 체제는 결국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인디오 출신으로 대통령이 된 볼리비아의 에보 모랄레스가 토해낸 그 첫 육성이 뜨겁습니다. "지난 500년의 식민주의를 청산하고, 볼리비아의 권리를 회복하겠다."
그는 또 이렇게 말합니다. "지난 500년 간의 투쟁은 헛되지 않았다. 이제 다가올 500년은 우리의 손에 있다. 모든 부정의와 모든 불평등의 현실에 종언을 고하겠다."
〈블라디보스톡의 봄〉은 볼리비아에서도 울려 퍼지고 있습니다. 볼리비아는, '전략적 유연성'이라는 이름 아래 미국의 동북아 기지가 된 우리보다 역사의 선두에 서 있음을 목격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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