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막식 이래 계속되는 경기장 공석(空席)사태로, 입장권 수입을 주수익으로 하는 한국과 일본에 '월드컵 적자' 비상이 걸리는 동시에 월드컵대회 이미지도 크게 실추시켰다. 전세계에 중계되는 게임 화면마다 흉하게 뻥뻥 뚫린 관람석이 비치고 있기 때문이다.
이같은 사태 발생의 일차적 책임은 해외판매분 판매를 주먹구구식으로 해온 영국의 바이롬사와, 이같은 부실기업에게 블래터 회장과의 특수관계를 이유로 일을 맡긴 세계축구연맹(FIFA)에게 있다.
더 큰 문제는 이번 사태가 애당초 한국월드컵조직위원회(KOWOC)와 FIFA간의 '불평등 협상' 과정에 잉태된 것이며, 몇달 전부터 공석 사태가 예견됐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월드컵조직위가 대책 마련을 소홀히 해온 데 있다는 점이다.
호미로 막을 수 있는 것을 가래로도 막기 힘든 사태로까지 발전시킨 책임이 한국월드컵조직위에게 있는 것이다.
***바이롬, 블래터와의 혈연 앞세워 2백억원대 해외판매분 대행권 독식**
지금 '빈자리 사태'의 모든 책임은 영국의 바이롬사에게 돌려지고 있다. FIFA도, 한국 월드컵조직위도, 일본 월드컵조직위도 마찬가지다. 바이롬이 시쳇말로 '죽일 X'인 것이다.
바이롬은 원래 FIFA의 숙박업소 대행업을 해주던 일개 에이전시에 불과했다. 바이롬의 창립자인 하이메 바이롬, 엔리케 바이롬 공동대표는 지난 94년, 98년 월드컵때 VIP의 개최지 숙박업소를 예약해주던 별볼일 없던 에이전시들이었다. 그러던 것이 2002년 한일 월드컵이 확정되면서 3년전에 정식으로 바이롬이라는 회사를 설립했다. 그러나 정식 직원은 지금까지 단 3명에 불과하고, 20명의 임시직들이 일을 돕고 있을 뿐이다.
이들이 바이롬이라는 회사를 설립한 것은 한일월드컵 티켓 해외판매분 판매대행을 맡기 위해서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회사를 설립해야만 블래터 FIFA회장의 친척들이라는 '혈연'을 앞세워 거액의 수수료를 챙길 수 있는 해외판매분 대행권을 따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들은 블래터가 98년 FIFA회장이 되자, 그의 후광을 내세워 한 몫을 잡으려 한 셈이다.
이들은 의도대로 한일월드컵의 해외판매분 판매대행권을 따내는 데 성공했다. 바이롬은 한국 월드컵조직위로부터 71만여장, 일본 월드컵조직위로부터 64만여장 등 도합 1백35만장의 해외판매분 대행권을 따냈다. 더욱 놀라운 대목은 이들이 받기로 한 판매수수료였다. 총 판매액의 9.19%를 수수료로 받기로 한 것이다. 이례적으로 높은 비율이다.
월드컵 입장권의 가격은 그후 평균 16만원으로 책정됐다. 따라서 1백35만장이 모두 팔린다고 가정할 경우 바이롬이 얻게 되는 수수료 수입은 무려 2백억원에 달한다.
그러나 이렇게 큰 돈을 벌겠다면서도 투자는 전혀 안했다. 이들은 입장권 판매대형 경험이 전무했다. 각국 축구협회가 어떻게 팔아주겠지 하는 생각이 가득했다. 게다가 인터넷상으로 판매를 한다고 하면서도 서버를 고작 3대만 설치해 접속이 안 될 정도로 투자를 도외시했다. 한 마디로 이번 '빈자리 사태'는 예고된 사고였다.
월드컵 대회를 한달여 앞둔 지난 4월부터 상황은 심각하게 돌아갔다. 각국 축구협회등이 무더기로 티켓을 반송해온 것이다. 그럼에도 바이롬은 거짓말로 일관했다.
바이롬의 하이메 바이롬 공동대표는 지난 5월2일 영국 BBC와의 인터뷰에서 "입장권 판매가 98 프랑스월드컵 때를 능가하고 있다"고 큰소리쳤다. 판매 부진에 허덕이면서 판매현황 집계도 못한 상황에서 이는 명백한 거짓말이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정작 한심했던 것은 한국 월드컵조직위가 보인 모습이었다. 한국 월드컵조직위의 인병택 홍보국장은 지난 5월2일 BBC와의 인터뷰때 "월드컵 개막때면 거의 모든 입장권이 매진될 것으로 확신한다"고 말했다. 위기가 다가오고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설마'하는 심정으로 진실 은폐에 급급했다는 의혹을 사는 대목이다.
***바이롬과 체결한 호텔숙박대행 '노예 계약'**
바이롬의 전횡에 따른 손실은 이것뿐만이 아니었다.
한때 '월드컵 특수'를 기대하던 여행사, 숙박업소, 항공사 등 우리나라 관광업계는 지금 한마디로 초상집 분위기다. 국내업계는 한때 월드컵때 방한할 외국인 관광객숫자가 최고 56만명에 달할 것으로 내다봤었다. 그러나 지금은 기껏해야 12만명 정도로 크게 낮춰잡고 있다.
이렇게 관광객 숫자가 격감한 핵심요인을 제공한 이가 다름아닌 바이롬이다. 바이롬은 지난 2000년 3월 월드컵 입장권 해외판매분 판매대행권 독식에 이어, FIFA의 숙박대행업체 자격으로 2백20여개에 달하는 한국의 관광호텔 예약 숙박권 전체를 독점 판매해주기로 하는 협약을 한국 월드컵조직위와 체결했다.
그런데 이렇게 큰소리를 치며 호텔 숙박권을 가져갔던 바이롬이 월드컵 개최 한달 전인 4월30일 돌연 일방적으로 해지를 통고해왔다. 바이롬이 해지한 관광호텔의 연 객실(객실x숙박 일수)은 전체의 70%로 무려 56만3천개에 달했다.손님을 유치할 실력이 없자 '나 몰라라' 내놓은 것이다. 호텔업계는 황당했으나 위약금조차 요구할 수 없었다.
한국 월드컵조직위가 바이롬과 계약을 하면서 "2002년 4월30일까지 해약하면 위약금을 물지 않는다"는 말도 안되는 조건으로 계약을 체결했기 때문이다.
한 외국계 여행사 대표는 "월드컵조직위가 바이롬과 체결한 '노예계약'으로 월드컵 특수는 헛장사가 돼버렸다"며 반드시 책임을 추궁해야 할 것으로 지적했다.
***한국월드컵조직위는 '나 몰라라'**
이처럼 초대형 사고를 연이어 터졌음에도 불구하고 현재 한국월드컵조직위는 '나 몰라라'이다.
월드컵 개막전에 빈자리가 생겼다는 것은 한마디로 '대형사고'다.
CNN은 1일(현지시간) 개막전 공석사태를 보도하면서"입장권을 구하지 못한 축구팬들 일부는 조직위 관계자들로부터 50만원을 줘야 구한다는 개막전 표를 5만원에 사라는 권유를 받기도 했다"며 입장권 판매 과정의 혼란을 지적했다. 매진된 것으로 알려졌던 월드컵 개막전의 경우 해외 미판매분이 1만장에 달한 것으로 개막 며칠 전 확인된 후 서둘러 막바지 판매에 나섰지만 결과적으로 3천5백석이 판매되지 못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 월드컵조직위 입장권판매 사업국장은 3일 본지와의 전화통화에서 "나는 지방에서 벌어지는 경기지원을 나와 입장권 공석 사태에서 손을 뗐다"고 말했다. 입장권 실무팀장 역시 전화통화에서 경기장 공석상태에 대해서도 "부산 경기장의 경우 축구전용구장이 아니다 보니 성화봉송대 뒷편 등 시야장애석이 많아 4만4천석 중 1만4천석이 표를 팔 수 없는 사석"이라며 "이 때문에 빈자리가 뭉텅이로 몰려있어 유난히 눈에 띄었을 뿐"이라고 책임회피에 급급했다.
현재 국내에서 열리는 32경기 가운데 아직 덜 팔린 입장권 해외판매분은 최소한 23만장으로 추정되고 있다. 한국조직위는 이 사실을 알고 있었던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또한 조직위 관계자는 지난 4월 영국을 방문했을 때 바이롬사는 정식 직원 3명에 불과해 임시직원들이 좌석판매 현황을 수작업으로 하고 있다는 것을 현장 목격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이처럼 수작업에 의존하다보니 23만장이 남아있어도 인터넷 예약이 가능한 입장권수는 당시 3만2천장에 불과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한마디로 이번 사태는 '인재(人災)'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월드컵조직위등은 책임 떠넘기기에만 급급한 상황이다. 과연 언제까지 이같은 '인재성 국부유출'을 계속해야 할지, 답답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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