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국민 수준에서의 '친일'"을 성찰한다
요즘 TV 방송이나 신문기사에서 '덕후'라는 말을 너무 많이 보게 된다. 이른바 '진보언론’도 예외가 아니다. '덕후’란 순수 일본어인 '오타쿠(御宅)'의 한국식 발음으로 만들어낸 '억지 조어(造語)'다.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이제 '덕질'이니 '입덕'이라는 말까지 생겨나 널리 사용되고 있다.
최근 일본의 유명한 경제평론가 오마에 겐이치는 한일 양국관계가 계속 악화되고 있지만 일본을 찾는 외국인 관광객 중 한국인이 1/4이나 된다면서 "한국 국민의 수준에서는 '친일'이 계속되고 있다."며 '조롱'했다. 우리 모두 심각하게 성찰해야 할 대목이다.
곧 3·1운동 100주년을 맞는다. 일본은 여전히 침략과 식민지배에 대해 아무런 반성도 없다. 오히려 독도 문제나 위안부 문제 그리고 최근의 초계기 문제와 국회의장의 일왕 사과 발언 등 분야를 가리지 않고 전방위로 우리 측을 힐난하는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 사회에는 일본식 용어가 범람하고 있고, 더구나 우리들 스스로 무분별하게 확산시키고 있다.
'-함', '-음'의 개조식 보고서, 권위적이고 비민주적인 문장
공공기관이나 기업의 보고서에서 '-함'이나 '-음' 또는 '-임'으로 문장을 끝맺음하는 형태를 흔히 볼 수 있다. '-다'로 문장을 끝맺는 일반적인 '서술식' 문장이 아니라 이른바 '개조식' 문장이다. 공공기관에 근무하는 필자는 회의록을 비롯해 각종 서류문서에 시종여일 관통하는 이러한 개조식 문장을 보면 가슴이 턱 막히는 느낌을 받는다.
그러나 '-함', '-음', '-임'으로 문장을 끝맺는 이러한 문장 방식은 일제 잔재다. 즉, 구한말 일제 강점기를 전후로 하여 우리나라에 이식된 것이다. 물론 권위주의적이고 민주주의의 시대정신에 반한다. 일본 메이지(明治) 시대에 '대일본제국 헌법'을 비롯하여 "권위가 요구되는" 법령의 문장이나 교과서 등에서 이른바 '문어(文語)'가 사용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일본의 '문어' 문장들은 이를테면, "천황은 육해군을 통수함(天皇ハ陸海軍ヲ統帥ス, '대일본제국헌법' 제11조)" 등의 형식을 띠고 있었다. 이러한 문장 형태를 통해 일본이 의도한 바는 바로 문장 자체에 '권위(權威)'와 위엄을 부여하고자 한 것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문장방식은 우리의 관료사회와 기업문화를 권위주의적으로 관철시켜왔다. 3.1절 100주년을 맞는 지금, 민주주의의 시대정신에 반하는 이러한 개조식 문체(文體)는 이제 지양되어야 한다.
우리들이 일상적으로 무심코 사용하고 있는 언어와 문장방식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크게 우리들의 심리와 그리하여 삶 전체를 강력하게 지배하게 된다. 언어란 개념을 담는 그릇으로서 언어생활은 인간의 사고방식을 구체적으로 규정하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천황의 덕을 흠모하여 귀속하다"는 의미를 지닌 '귀화'라는 용어부터라도 하루바삐 고쳐지기 바란다.
에듀파인, 에너지바우처, 베리어프리...이 나라는 영어가 자국어인가?
요즘 언론에 자주 소개되는 '에듀파인'이란 초·중·고등학교와 국공립유치원에 의무적으로 적용되고 있는 국가회계제도를 지칭하는 용어다. 언필칭 국가 백년대계를 담당하는 교육부는 영어 줄임말로 된 이러한 용어를 공공연하게 내걸고 사용할 수 있는 것일까? '주민센터'라는 용어가 도입된 이래, 너무나 영어를 사랑하고자 했던 이명박 정부를 거쳐 우리 공공기관들은 커뮤니티케어, 에너지바우처, 베리어프리 등등 정작 정책시행 대상자는 물론 국민 대부분이 도무지 알아들을 수도 없는 홍보성 정책 용어들을 마구잡이로 쏟아내고 있다. 과연 이 나라는 영어를 자국어로 삼는 나라인가?
언어는 국가 주권의 주요 구성요소이며, 사회연대를 위한 중요한 조건이다. 우리가 맞이하는 3.1운동 100주년이란 비단 일본 식민지로부터 완전한 독립이라는 의미만이 아니라 이 나라가 진정으로 자주적인 정상국가로 거듭나야 한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어야 할 터이다. 다시 강조하건대, 언어는 바로 한 국가의 정체성과 역사 그리고 문화를 구성하는 주요한 요소이다. 스스로의 언어를 소중히 여기지 않는 민족은 결코 소중해질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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