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린 파월 미 국무부 장관은 지난해 3월7일 의회 청문회에 나와 "수단보다 이 지구상에서 더 비극적인 곳은 없다"고 말했다. 과연 수단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었던 것일까.
수단 북부는 이슬람 근본주의를 외치는 아랍인들이 장악하고 있다. 그러나 지난 83년 흑인들을 기반으로 한 수단인민해방군(SPLA)이 궐기한 이래 내전이 끊이지 않고 있다.
양측의 충돌로 남부지역에서만 2백여 만명이 살해되고, 4백만명이 난민이 되었다. 더욱이 국제사회를 경악시킨 것은 수단 정부가 수만명에서 10만명에 이르는 여자와 아이들이 노예로 부리고 팔아먹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월가와 미연준, 재무부등 수단사태 종식에 반대**
현재 수단 이슬람 정부는 특히 남부지역의 아프리카 흑인, 기독교인, 토속신앙인들을 무차별 탄압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뉴욕 타임스의 최근 보도에 따르면, 수단정부는 교회, 병원, 난민수용소, 구호단체 본부 등을 가리지 않고 무차별 공세를 강화해 쑥대밭을 만들고 남부 주민들을 굶겨죽이기 위해 이곳으로 가는 구호물자도 차단하고 있다. 또한 남부 지역에서 석유가 발견되자, 수단 정부는 석유업자들을 위해 유전 지역의 모든 마을을 파괴하고 있다.
19년째 내전이 벌어지고 있는 수단의 비극적 사태에 대해 분노에 찬 여론이 형성되자 지난해 6월 미국 하원은 4백22대 2로 수단사태를 종식시키기 위한 제재 조치법안을 통과시켰다.부시 행정부도 지난해 9월 전 상원의원 존 댄포스를 수단 특사로 임명했다.
당초 의회의 제재 법안에는 수단에 진출한 석유회사들을 미국의 증시에서 배제하고 비석유회사들도 수단과 관계를 맺고 있다면 미 증시에 상장하기 위해서는 영업활동 내용을 공시하도록 하는 조항이 포함돼 있었다. 그러나 미국의 상원에서는 이런 조항을 삭제한 법안을 통과시켰다.
월가와 연방준비제도이사회의 앨런 그린스펀 의장, 부시 대통령 등이 제동을 건 결과다. 특히 월가와 재무부는 "자본시장에 외교 정책이 끼어들어서는 안된다"는 이유로 반대를 했다. 미국 자본시장으로부터 투자자들을 내쫓을 수 없다는 것이다. 이에 세계인권단체들은 "미국이 석유자본을 비호하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다.
***석유회사들이 수단의 비극 부추겨**
뉴욕 타임스에 따르면, 수단 이슬람무장세력들은 자신들이 목표로 삼은 마을에 침입,가가호호 종교를 확인한 뒤 기독교인을 색출해 그 자리에서 살해하고 있다. 기독교인으로 판명된 한 여성을 젖가슴을 도려낸 채 백주대로에 방치해 죽게 했으며, 어머니가 보는 앞에서 아이를 굶겨죽이기도 했다. 아이를 벌거벗긴 채 사막의 뙤약볕 아래 방치해 죽게 했으며 젊은 여인들은 집단 강간한 후 노예로 팔아넘기기도 했다.
지난해부터 수단의 비극, 그 중에서도 특히 노예 매매를 중점적으로 취재해온 뉴욕 타임스는 "이 시대에 이런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은 불가능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것은 사실이다"라고 전했다.
미 국무부는 지난 3월 국가별 인권실태 보고서를 통해 수단을 미얀마, 중국, 이란, 이라크, 북한 등과 함께 종교탄압 특별 관심대상국으로 지목했다. 그러나 미국 반노예운동그룹을 이끌고 있는 찰스 제이콥은 "미국 정부의 미온적 태도 때문에 우리들은 길거리에 나서야만 했다"고 미정부의 이중적 태도를 비판했다.
이들 시민단체는 수단 정부의 만행에 대한 서구 자본의 지원 차단을 겨냥하고 있다. 캐나다의 석유회사인 탈리스만 에너지, 중국국영석유회사가 그런 대표적 예이다. 두 회사는 수단의 석유자원 개발에 합작투자하고 있다. 이밖에도 스웨덴, 말레이시아의 석유회사들도 가담하고 있다.
'21세기 노예폐지 운동'을 벌이고 있는 활동가들은 노예제를 묵인하고 있는 국가들에 항의하거나 이들 국가들과 거래하고 있는 기업들의 주식매매 거부 운동을 벌이는 등 다양한 운동을 펼치고 있다.
***전세계 2천7백만명이 노예상태**
수단 사태가 국제사회에 던져주고 있는 가장 큰 충격은 '현대판 노예'가 양산되고 있다는 점이다. 과거 수단 등 아프리카 국가에 노예제도의 악습이 있었지만 지금은 사라진 것으로 아는 이들이 많다.
그러나 <소모품 인간들:글로벌 경제의 신노예제도>의 저자 케빈 베일스는 "지난 50년간 전세계적으로 노예들이 급증해 왔다"고 말한다. 그는 노예들이 급증하고 있는 이유 중의 하나로 '1865년 노예제도는 사라졌다'라는 사람들의 착각을 꼽았다.
미국의 크리스천 사이언스 모니터지(2001년 9월6일자)에 따르면, 지난 5년간 인구팽창과 글로벌 경제의 일탈로 인해 노예가 급증했다. 오늘날 노예는 불과 10달러에 팔려가는 곳도 있다. 수단 노예를 해방시키려면 35달러를 주면 된다.
수단에서 몇 명이 노예로 전락했는지는 정확치 않다. 수단 정부의 통계에 따르면 1만4천명의 수단 남부 지역 여자와 어린이가 최근 몇 년간 납치되었다. 그러나 인권문제 전문가들은 수만명에서 최대 10만명 정도가 군인들에게 붙잡혀 노예로 일하고 있다고 말한다.
크리스천 사이언스 모니터에 따르면, 현재 전세계에 2천7백만명이 사실상 노예로 살고 있다. 여기서 말하는 노예란 폭력에 의한 강요로 무보수 노동을 하고 있는 이들을 가리킨다.
중국에서는 파룬공 등 반체제 인사들도 국영기업에서 노예노동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인도에서는 카펫을 짜는 데 노예들이 동원되고, 아프리카 아이보리 코스트에서는 코코아 열매를 따는데 노예를 부리고 있다. 심지어 워싱턴, 런던, 파리 등 선진국 수도에서도 아프리카 등지에서 공급된 흑인들을 노예로 부리고 있다.
***"돈을 통한 노예해방은 도리어 노예제도 존속을 낳을뿐"**
지난해 9월 미국 상원의 대외관계 위원회에는 수단, 모리타니아, 아이티 등지에서 탈출한 노예 출신들이 증인으로 나와 실태를 고발했다. 특히 일곱살 때 수단 남부에서 노예로 잡혀간 뒤 열일곱살에 미국으로 탈출한 프란시스 복(23)은 상원의원들에게 다음과 같이 호소했다.
"수단을 비롯한 전세계 여러 국가들에서 밤에 잠을 자지 못하는 아이들이 있다. 그들은 비참하게 살면서 자신들을 구출해주길 기다리고 있다. 의원님들은 힘이 센 분들입니다. 당신들은 노예들을 구해 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수단인민해방군(SPLA)의 전직 고위관계자인 마리오 무오르는 "노예 아동이 많으면 많을수록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다"며 "SPLA 관계자들이 미국 등에서 노예구출사업기금을 뜯어내고 있다"고 폭로했다.
SPLA의 한 내부 관계자는 "몇몇 경우에는 SPLA 사령관과 관계자들이 노예 거래를 배후조종하고 수단 남부 지역에서 자유롭게 살고있는 주민들을 노예인 것처럼 속여 구호단체로부터 돈을 뜯어내고 있다"고 증언했다.
때문에 노예폐지운동단체들은 수백만달러에 달하는 기금을 모아 노예들을 돈을 주고 풀어주는 일도 하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이같은 운동은 정작 노예를 만들어내는 사람들의 배를 불려주고 수단의 내전 종식 노력을 희석시키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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