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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문명'을 전복하려는 지만원과 한국당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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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문명'을 전복하려는 지만원과 한국당에게

[기고] 다시 <소년이 온다>를 읽다

우리가 사람이라면 절대로 공론화를 시도해서는 안 되는 주제들이 있다. 예컨대 '살인이 왜 나쁜지 토론해 보자'라거나 '여자를 강간하는게 사회적으로 용납되지 않는 이유가 무언지 따져보자'라거나 '인종간의 우열이 존재하는지 아닌지 공론장에서 토론해 보자' 같은 것들이 그렇다. 지만원, 자유한국당의 김진태·김순례·이종명, 일베, 태극기 파쇼 등의 무리들이 '80년 5월 광주에 북한군이 침투했는지 여부를 따져보자'라고 울부짖는 것에 시민들이 그토록 분노하는 건 이들이 사람이라면 절대 해서는 안되는 주장을 공론장에 올려놓으려 시도하기 때문이다. 지만원 등의 무리들은 인류가 누대로 힘겹게 쌓아온 문명과 윤리의 기초를 조롱하고 전복하려 노력 중인데, 그러다 보니 시민들의 공분이 극에 달해 김진태 등에 대한 국회제명처분에 동의하는 여론이 65%에 달하는 것이다.(☞ 관련기사: [리얼미터] 64.3% "5.18 망언 의원 제명해야", 영남도 마찬가지)

▲ <소년이 온다>(한강 지음, 창비 펴냄) ⓒ창비
나는 지만원과 김진태 등의 헌정유린 행위를 목격하면서 다시금 한강의 <소년이 온다>(한강 지음, 창비 펴냄)를 읽었다. 익히 알려졌다시피<소년이 온다>는 80년 5월 광주학살에 대한 이야기다. 소설에는 항쟁의 열흘 동안 죽어 혼령이 된 소년들, 살아남았으나 죄책감과 고문 등으로 죽음보다 못한 삶을 사는 사람들, 중학생 아들을 진압군에게 잃은 어머니가 등장하고, 이들의 독백 혹은 고백으로 소설이 진행된다.

다시 읽어도<소년이 온다>를 읽는 시간들은 무참했다. 국군으로 상징되는 국가폭력이 주권자들을 얼마나 처참하게 학살하고, 고문하고, 능욕했는지가 생생하게 담겨 있기 때문이다. 곤봉으로 무고한 시민들을 때려죽이는 진압군, 도청 앞 집단발포와 뒤이은 저격수의 저격으로 벌집이 된 시민들, 부상 당한 광주시민들을 상대로 확인사살을 자행하는 진압군, 지옥의 시간이로 밖에는 달리 명명하기 힘든 체포와 고문의 시간들.

흡사 거대한 기계 같은 국가폭력은 광주를 피와 시신과 통곡의 바다로 만들었다. 잠깐의 해방구와 도청에서의 최후. 죽은 자들은 침묵하고 살아 남은 자들은 부끄러워했다. 부유하진 않았지만 화목하고 안온했던 광주시민들의 삶은 전두환을 수괴로 하는 신군부에 의해 산산조각났다. 깨진 거울을 원상태로 복원할 수 없듯이 광주시민들의 삶도 그러하다.

하지만 광주가 단순히 국가폭력에 패배한 도시로만 머물렀다면 6월 항쟁도, 87년 체제도, 그리하여 지금의 대한민국도 없었을 것이다. 80년 5월의 광주는 인간이 어떤 존재이며, 어떤 존재여야 하는지를 보여줬다. 80년 5월의 광주는 인간이 존엄한 존재라는 걸, 인간의 존엄성이 죽음조차 이긴다는 걸 증명했다. 그리하여 광주는 정의롭고 평등한 대한민국을 향한 사회적 상상력의 원천이 되었다. 예컨대<소년이 온다>에 등장하는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아래의 진술은 너무나 아름다워 눈물이 날 지경이다.

군인들이 압도적으로 강하다는 걸 모르지 않았습니다. 다만 이상한 건, 그들의 힘만큼이나 강렬한 무엇인가가 나를 압도하고 있었다는 겁니다.

양심.
그래요 양심.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게 그겁니다.

군인들이 쏘아 죽인 사람들의 시신을 리어카에 실어 앞세우고 수십만의 사람들과 함께 총구 앞에 섰던 날, 느닷없이 발견한 내안의 깨끗한 무엇에 나는 놀랐습니다. 더이상 두렵지 않다는 느낌, 지금 죽어도 좋다는 느낌, 수십만 사람들의 피가 모여 거대한 혈관을 이룬 것 같았던 생생한 느낌을 기억합니다. 그 혈관에 흐르며 고동치는, 세상에서 가장 거대하고 숭고한 심장의 맥박을 나는 느꼈습니다. 감히 내가 그것의 일부가 되었다고 느꼈습니다.…

그 사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시가전에서 희생되었는지 난 알지 못합니다. 기억하는 건 다음 날 아침 헌혈하려는 사람들이 끝없이 줄을 서 있던 병원들의 입구, 피 묻은 흰 가운에 들것을 들고 폐허 같은 거리를 빠르게 걷던 의사와 간호사들, 내가 탄 트럭 위로 김에 싼 주먹밥과 물과 딸기를 올려주던 여자들, 함께 목청껏 부르던 애국가와 아리랑뿐입니다. 모든 사람이 기적처럼 자신의 껍데기 밖으로 걸어나와 연한 맨살을 맞댄 것 같던 그 순간들 사이로, 세상에서 가장 거대하고 숭고한 심장이, 부서져 피 흘렸던 그 심장이 다시 온전해져 맥박 치는 걸 느꼈습니다. 나를 사로잡은 건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선생은 압니까, 자신이 완전하게 깨끗하고 선한 존재가 되었다는 느낌이 얼마나 강렬한 것인지. 양심이라는 눈부시게 깨끗한 보석이 내 이마에 들어와 박힌 것 같은 순간의 광휘를.

물론 광주는 압도적 무력을 소유한 국가폭력 앞에 일시적으로 굴복했다. 하지만 어떤 최후가 기다리고 있는 줄 분명히 알면서도 시시각각 숨통을 조여오는 진압군에 맞서 도청에 끝까지 남아 항거한 사람들의 숭고한 결단과 희생 덕분에 광주는 패배를 딛고 승리했다. 희생자의 자리를 스스로 택해 결국은 승리자가 되었던, 악마 같은 가해자들을 오히려 패배자로 만든 광주시민군의 결단과 희생이 대한민국이 언제나 돌아가서 다시 시작할 자리다. <소년이 온다>의 작가 한강은 도청에서의 최후를 이렇게 풀이한다.

그들이 희생자라고 생각했던 것은 내 오해였다. 그들은 희생자가 되기를 원하지 않았기 때문에 거기 남았다. 그 도시의 열흘을 생각하면, 죽음에 가까운 린치를 당하던 사람이 힘을 다해 눈을 뜨는 순간이 떠오른다. 입안에 가득 찬 피와 이빨 조각들을 뱉으며, 떠지지 않는 눈꺼풀을 밀어올려 상대를 마주 보는 순간. 자신의 얼굴과 목소리를, 전생의 것 같은 존엄을 기억해내는 순간. 그 순간을 짓부수며 학살이 온다, 고문이 온다, 강제진압이 온다, 밀어붙인다, 짓이긴다, 쓸어버린다. 하지만 지금, 눈을 뜨고 있는 한, 응시하고 있는 한 끝끝내 우리는…

지만원과 김진태 등과 일베와 태극기 파쇼 등이 광주를 부정하고 왜곡하고 능멸하는 이유는 80년 5월의 광주에 대한민국이 지향해야 할 가치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80년 5월 광주의 열흘에는 대한민국의 유일한 주권자가 시민이라는 선언, 가장 강력한 국가권력이라 할 군대에 결연히 맞설 정도의 시민적 용기와 정의감, 주먹밥을 나누어 먹고 단 한 건의 약탈도 없었으며 헌혈하기 위해 줄을 설 정도의 대동과 연대와 협력의 공동체 의식, 도청에서 최후를 맞은 시민군이 보여주는 것처럼 역사와 대의를 위해 가장 소중한 생명조차 아끼지 않은 헌신성 등이 오롯이 담겨있다. 주권자로서의 자각, 시민적 용기와 정의감, 대동과 연대와 협력의 공동체 의식, 역사와 대의를 위한 헌신 등은 더 좋은 대한민국이 되기 위해 무엇보다 필요한 덕목들이다. 지만원 등은 80년 5월 광주가 실현한 가치가 대한민국 전체로 확산되는 것이 두려워 한사코 광주를 모독하고 비방하는 중이다.

지만원 등의 무리가 광주를 능욕하는 지금, 우리는 80년 5월의 광주가 얼마나 위대하고 아름답고 슬프고 참혹했는지를 알기 위해<소년이 온다>를 읽어야 한다. <소년이 온다>를 읽는 시간은 고통스럽고 무참하지만, 그런 시간을 통과하지 않고 우리가 80년 5월의 광주와 대면할 수 있는 길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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