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가 어렵다고 정기상여금 등을 통상임금에서 제외하면 안 된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그동안 통상임금을 둘러싼 소송에서 신의칙(신의성실의 원칙) 적용을 두고 재판부마다 서로 다른 판결이 나왔으나 이번 대법원 판결로 이러한 논란은 어느 정도 해소될 전망이다.
대법원 2부(주심 박상옥 대법관)은 14일 오전 10시, 인천 시영운수 소속 버스기사 22명이 회사를 상대로 낸 임금 청구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일부 승소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재판부는 "근로관계를 규율하는 강행규정보다 신의성실의 원칙을 우선해 적용할 것인지를 판단할 때는 근로자의 기본적 생활을 보장, 향상시키고자 하는 근로기준법 등의 입법 취지를 충분히 고려할 필요가 있다”며 이 같이 결정했다.
추가지급 법정수당이 연간 매출에 차지하는 비중에 주목한 재판부
재판부는 "기업을 경영하는 주체는 사용자이고 기업의 경영 상황은 기업 내외부의 여러 사정에 따라 수시로 변할 수 있다"며 "통상임금 재산정에 따른 근로자의 추가 법정수당 청구를 중대한 경영상의 어려움을 초래하거나 기업 존립을 위태롭게 한다는 이유로 배척한다면, 기업 경영에 따른 위험을 사실상 근로자에게 전가하는 결과가 초래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재판부가 주목한 부분은 추가지급 법정수당이 기업의 연간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었다. 재판부는 추가지급 법정수당이 연간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지 않다면 경영상 어려움을 초래한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근로자들이 회사에 청구할 수 있는 추가 법정수당은 약 4억 원 상당으로 추산된다"며 "이는 회사의 연간 매출액의 2∼4%, 2013년 총 인건비의 5∼10% 정도에 불과하고, 회사의 2013년 이익잉여금이 3억 원을 초과해 추가 법정수당을 상당 부분 변제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한마디로 기업이 줘야 하는 추가지급 법정수당과 기업 매출을 비교해서 통상임금 신의칙 적용 여부를 따져야 한다는 취지다. 이번 판결로 신의칙을 적용하는 기준이 세워졌다고 볼 수 있다.
1,2심은 신의칙 적용해 회사 측 손 들어줘
시영운수 소속 버스 운전기사 22명은 지난 2013년 시영운수를 상대로 단체협약에서 정한 상여금 등이 통상임금에 해당한다며 차액 수당을 지급하라는 소송을 냈다. 상여금이 통상임금에 해당될 경우, 그에 따라 기존에 받던 시간외수당 등이 비례해서 늘어나게 된다. 한마디로 노동자의 전체 임금이 늘어나는 셈이다.
1,2심은 정기상여금이 통상임금에 포함된다는 점은 인정했다. 하지만 그로 인해 발생하는 금액을 회사가 추가로 지급할 경우, 예측하지 못한 경영상 어려움을 맞게 돼 신의칙에 반한다며 회사 측 손을 들어주었다.
재판부는 "상여금이 통상임금에 포함되면 근로자들은 애초 노사간 협상을 통해 받은 이익을 초과하는 예상 밖의 이익을 기대할 수 있게 되는 반면, 기업으로서는 예측하지 못한 새로운 재정적 부담을 지게 돼 중대한 경영상 어려움이 초래된다"고 판단했다.
또 "원고(노동자)의 요구는 노사 양측이 합의 당시 상호 공통으로 이해하고 있었던 것과 전혀 다른 법리적 사유를 들어 사용자에게 상여금을 추가한 통상임금을 토대로 추가 법정수당 지급 의무를 부과함으로써 피고의 중대한 경영상 어려움을 초래하게 돼 정의와 형평의 관념에 비춰 도저히 용인될 수 없다"며 "원고의 청구는 신의칙에 반해 허용될 수 없다"고 설명했다.
3년 4개월 만에 판결
2013년 12월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통상임금 범위를 폭넓게 인정하면서도 기업 재정에 지나친 부담을 주는 임금청구는 받아들일 수 없다고 판단했다. 노동자들이 사측과 임금협상을 한 상황에서 회사 사정이 어려울 경우에는 통상임금 재산정으로 돌려받아야 하는 임금을 제한할 수 있다는 '신의칙(신의성실의 원칙)'을 근거가 됐다.
노동자들은 판결에 불복, 상고했고 대법원은 이를 전원합의체에 회부했다. 대법원은 이와 관련한 기준을 구체적으로 마련할 필요가 있다며 지난 2015년 10월 사건을 대법원장과 대법관 12명이 심리하는 전원합의체가 다루도록 했다.
이후 3년 4개월 동안 심리한 뒤, 사건을 다시 대법원 2부로 돌려보냈고, 대법원은 14일 원심과는 다른 판결을 내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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