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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원 대통령비서실장의 '엉뚱한 시국인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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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원 대통령비서실장의 '엉뚱한 시국인식'

<데스크 칼럼> '가혹하리만치 엄격한 기준'을 요구한다고?

박지원 대통령 비서실장의 '남다른 시국인식'이 심각한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박 실장은 23일 '3홍 비리'와 청와대 직원들의 잇따른 비리 연루와 관련, 최초로 입을 열었다. 그는 이날 오전 청와대에서 직원들을 상대로 열린 토론회에서 '가까이에서 본 김대중대통령'이라는 주제발표를 하는 자리에서 작금의 사태와 관련해 "국민 앞에 많은 반성과 함께 송구스러운 마음을 금할 수 없다"고 최초로 사과를 했다. 최근 일련의 정치스캔들과 관련해 이름이 거명된 청와대 직원만 벌써 4명에 이르니 당연한 사과다.

***"국민들이 가혹하리만치 엄격한 도덕기준을 요구하고 있다"?**

문제는 그러나 박 실장이 이날 사과 발언의 행간 틈틈이에서 내비친 그의 시국인식이다. 박 실장은 "국민은 대통령과 정부에 대해 가혹하리만치 엄격한 도덕기준을 요구하고 있다는 것을 잘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비서실 직원들의 긴장을 촉구하기 위한 발언으로 해석된다.

그러나 과연 국민들이 지금 대통령과 정부에 대해 요구하고 있는 도덕기준이 박 실장 표현대로 "가혹하리만치 엄격한 도덕기준"인가는 큰 의문이 아닐 수 없다. 과연 지금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만들고 있는 김 대통령 세 아들의 '3홍 비리'가 '가혹하리만치 엄격한 도덕기준'이 아닌 '통상적 도덕기준'으로 보면 별로 문제될 게 없는 사소한 비리의혹인가.

각종 이권에 개입해 뒷돈을 받는가 하면, 정현준·이용호 게이트 등 금융시장 질서를 밑둥채 흔든 반(反)시장적 범죄에 연루된 일련의 비리 혐의가 과연 '통상적 도덕기준'으로 보면 용납될 수 있는 사소한 것인지, 박 실장에게 되묻지 않을 수 없다.

문제는 그의 발언 사이에서 읽히는 불평섞인 시국관이 여권 일각에서도 목격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여권 일각에서는 "수천억원씩을 해먹은 과거 정권 비리와 비교하면 3홍 비리라는 것은 '새발의 피'가 아니냐"며 "언론세무 조사 이후 정부와 사이가 벌어진 언론들이 비리 의혹을 의도적으로 부풀리고 있다"는 불만이 흘러나오고 있다. '푼 돈'을 갖고 왜 이렇게 난리법석이냐는 식의 반응이다.

박 실장의 이날 발언은 여권 일각의 이같이 안이하며 왜곡된 상황인식에 기초하고 있는 게 아니냐는 의혹을 떨칠 길 없다.

***이제부터라도 본 것은 본 대로, 들은 것은 들은 대로 직보해야**

박 실장은 이밖에 이날 3홍비리 의혹과 관련, "여러 가지 요구가 있지만 청와대나 대통령이 검찰에서 조사중인 문제에 대해 말을 하게 되면 어떤 방향을 제시한다는 오해를 받을 수 있다"면서 "검찰 수사가 진행중이므로 수사결과를 갖고 판단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 실장의 이같은 발언은 검찰수사 결과가 나오기 전에는 김 대통령이 그 어떤 대국민 사과성명이나 세 아들 처리에 대한 입장 표명을 하지 않을 것임을 분명히 밝히는 것으로 해석가능하다.박지원 실장은 그 누구보다도 김대통령의 심중을 가장 잘 읽는 측근중 측근으로 알려지고 있기 때문이다.

박 실장 발언은 한마디로 민심과 너무나 동떨어진 시국인식을 나타내고 있다. 오늘날 김 대통령이 정치적 궁지에 몰린 게 된 데에는 이처럼 안이한 측근들의 시국인식이 한 요인으로 작용했으리라는 추청도 가능할 정도다.

박 실장은 이날 "본 것은 본대로, 들은 것은 들은 대로 대통령에게 보고해 판단을 바르게 하도록 건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백번 맞는 말이다. 3홍 비리라는 것도 근원적으로는 '본 것을 본대로, 들은 것을 들은 대로 대통령에게 보고하지 않은 측근들의 잘못'이 있었기에 발생한 사건이기 때문이다. 대통령이 듣기 싫어하는 말을 안 한다면 그것은 올바른 보좌일 수가 없다.

박 실장이 이제부터라도 본 것은 본 대로, 들은 것은 들은 대로 대통령에게 직보하기를 기대해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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