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 농단' 의혹의 정점으로 지목된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재판에 넘겨졌다. 대법원장 출신이 검찰 조사에 이어 피고인으로 법정에 서게 되는 것은 헌정 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서울중앙지검 사법농단수사팀(팀장 한동훈 3차장검사)은 11일 양 전 대법원장을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공무상비밀누설, 허위공문서작성 및 행사, 위계공무집행방해,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국고등손실, 공전자기록등위작, 위작공전자기록등행사 등 혐의로 구속기소했다고 밝혔다. 지난달 11일 첫 검찰 조사를 받은 지 한 달만이다.
박병대·고영한 전 법원행정처장도 양 전 대법원장의 공범으로 이날 불구속기소하고, 먼저 구속돼 재판을 받고 있는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은 추가 기소했다.
양 전 대법원장은 2011년 9월부터 2017년 9월까지 대법원장으로 지내는 동안 사법행정권을 남용한 혐의를 받고 있다. 그는 지난 2011년 9월 취임해 임기를 마치고 2017년 9월 법원을 떠났다.
양 전 대법원장의 혐의는 △재판 개입, △비판세력 탄압, △부당한 조직 보호 등 크게 3가지로 분류된다. 구체적 혐의 사실은 47개로 공소장만 296쪽에 달한다.
검찰은 우선 양 전 대법원자이 상고법원 도입, 법관 재외공관 파견 등 사법부의 이익을 위해 청와대, 외교부 등 행정부의 지원을 받아낼 목적으로 재판에 개입했다고 봤다. △일제 강제징용 손해배상 사건 △전국교직원노동조합 법외노조 통보처분 사건 △국가정보원 대선개입 사건 등이 대표적 예다.
최고 사법기관 위상을 두고 견제 중인 헌법재판소를 의식, △헌재 내부 사건 정보 및 동향수집 보고 △현대자동차 비정규노조 업무방해 사건 관련 청와대를 통한 헌재 압박 △헌법재판소장 비난기사 대필 게재 △한정위헌 취지 위헌제청결정 사건에 대한 재판개입 △대법원과 헌재에 동시에 계류된 매립지 귀속분쟁 관련 사건 재판개입 △통합진보당 행정소송 및 재판 개입 등 지시를 내렸다고 결론지었다.
검찰은 또 양 전 대법원장이 법원행정처의 사법행정을 비판하고 사법행정에 부담을 준 행동을 한 법관들에게 문책성 인사 조치를 가했다고 판단했다.
매년 정기인사에서 총 31명을 '물의 야기 법과 인사 조치' 문건 작성을 작성하고 인사조치를 검토하거나, 법원 내부 게시판에 비판글을 올린 이들을 중심으로 최선호 희망지에서 배제하는 등 인사 불이익을 줬다는 것이다.
원세훈 전 국정원장 1심 판결 비판, 세월호특별법 제정 촉구, 대법관 임명제청 비판 등 법원 내부망 게시판에 재판 비판 및 사회 현안에 관한 글을 쓴 법관을 상대로 문책성 인사를 낸 것으로 조사됐다.
또 △국제인권법연구회 인사상 불이익 검토 △법원 외부 인터넷 법관 카페 '이판사판야단법석' 와해 시도 △대한변호사협회 및 회장 압박 △긴급조기 국가배상 인용 판결 법관 징계 시도 △사법행정위원회 위원 추천 개입 등 혐의가 있다.
양 전 대법원장은 사법부 조직을 보호할 목적으로 △부산고법 판사의 비위 은폐·축소 △ '정운호 게이트' 관련 판사 비위 은폐·축소 및 영장 재판개입 △집행관사무소 사무원 비리수사 확대 저지를 위한 수사기밀 수집 지시 △법관 비리수사 관련 영장청구서 사본 유출 지시도 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 외에도 2014년 8월~2015년 12월 공보관실 운영비로 받은 예산 3억5000만 원을 현금으로 인출해 법원장과 법원행정처 고위간부에게 대법원장 격려금으로 지급한 혐의도 받는다.
지난 2015년 3월 서기호 당시 정의당 의원이 양 전 대법원장의 인사권 행사에 반발하고 상고법원 도입에 반대하자, 서 의원이 낸 '판사 재임용 탈락' 소송을 원고 패소로 종결하도록 담장 재판장에 요구한 혐의는 일단 박병대 전 대법관에게만 혐의를 적용했다.
박 전 대법관은 지난 2011년 11월부터 2016년 2월까지 고교 후배로부터 형사사건 청탁을 받고 총 19차례에 걸쳐 후배의 형사사건 진행상황 및 재판연구관 검토보고서 등 형사사법정보를 무단으로 열람한 혐의도 단독으로 받았다.
박 전 대법관은 지난해 12월 구속영장이 청구됐지만 법원으로부터 기각 결정을 받았다.
검찰은 오늘로 사법 농단 수사를 일단락할 전망이다. 검찰은 그러나 양 전 대법원장에 대한 추가 기소 가능성도 열어뒀다. 이날 기소는 12일 구속기간 만기에 따른 것이고, 이날 기소되지 않은 혐의에 관해 추후 검토를 거쳐 추가로 재판에 넘길 수 있다는 얘기다.
또, 양 전 대법관부터 전현직 법관에 대한 사법처리 이후에는 '재판 거래' 상대인 박근혜 전 대통령과 윤병세 전 외교부 장관, 전현직 국회의원의 기소 여부에 관해 검토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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