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경제 활력'을 명목으로 24조 원 규모의 사회간접자본(SOC) 국책 사업 예비타당성 조사 면제를 예고한 문재인 대통령이 8일, 이번에는 아예 예비타당성 규제를 완화하겠다고 선언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날 전국의 시장·군수·구청장을 청와대로 초대해 "예타 제도는 유지되어야 하지만, 국가 균형 발전을 위해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정부는 총 사업비가 500억 원 이상이어야 한다는 예타 대상 사업 기준을 1000억 원대로 완화하기 위해 '국가재정법'을 개정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예타 평가 항목도 '경제성'보다는 '지역 균형 발전' 부분에 가중치를 두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 예타 조사 기간을 단축하고, 수행 기관도 한국개발연구원(KDI)에서 다변화하는 안도 검토한다. 정부는 지난 1월 29일 이러한 방안을 고려한 '예타 제도 종합 개선 방안'을 오는 6월까지 발표하겠다고 밝혔다.
이번 조처는 이명박 정부가 4대강 사업에 대한 예타를 면제하기 위해 '국가재정법 시행령'을 개정했을 당시의 문 대통령의 대응과는 상반된다. 이명박 정부는 2009년 '지역 균형 발전'이나 '긴급한 국가 정책'에 대한 예타를 면제하도록 시행령을 개정했고, 문재인 대통령은 새정치민주연합 대표 시절인 2015년 "이명박 정부는 4대강 사업을 강행하기 위해 국가재정법 시행령을 개정해 예타를 생략해버렸다. 결과는 환경 재앙과 국민 혈세 22조 낭비였다"고 비판했다.
문재인 정부는 지난 1월 29일 '예타 규제 완화' 방침과 더불어 전국 23개 국책 사업에 대한 예비타당성 조사를 면제하는 내용의 '국가균형발전 프로젝트'를 발표했다. 24조1000억 원 규모의 이번 SOC 사업비는 이명박 정부가 추진했던 4대 강 사업비 22조5000억 원을 넘어선다.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들은 '토건으로 경기를 부양한다', '이명박 정부 때로 회귀했다'고 비판하고 있다.
이러한 비판을 의식한 듯 이날 문 대통령은 "대규모 예타 면제에 대한 우려가 없지 않다"며 "그래서 정부도 그런 우려를 유념하면서 예타 면제 대상 사업을 엄격한 기준으로 선정하고, 지역 간 균형을 유지하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24조 규모의 예타 면제 방안을 추진한 취지에 대해서는 "정부는 지역 경제에 활력을 되찾는 일에 역점을 두고 있는데, 그런 차원에서 발표했다"고 했다.
단순 토목 사업이 20조 원대로 대부분인 이번 SOC 예타 면제는 문 대통령이 집권 이후 이명박-박근혜 정부와 새 정부의 차이를 '생활 밀착형 SOC'에 뒀던 것과도 거리가 멀다. 문 대통령은 2018년 9월 4일 서울 은평구에 있는 도서관 마을을 방문해 "정부는 주민 생활과 밀접한 기반 시설을 과거 대규모 토목 SOC와 차별화해 생활 SOC라고 부르기로 했다"며 "공공 투자를 지역밀착형 생활 SOC 투자로 전환해나가겠다"고 밝혔다.
당시 문 대통령은 "과거에는 대규모 SOC 위주의 정책이 이어졌고, 도로·철도·공항·항만에 투자해 이를 기반으로 산업을 일으켰고 경제가 발전했다"며 "그러나 상대적으로 우리 일상에 필요한 생활 기반 시설에 대해서는 관심을 기울이지 못했다"고 과거 정부와 새 정부를 차별화했다.
실제로 정부는 2018년 8월 '지역밀착형 생활 SOC' 항목을 발표해 2019년에 8조6000억 원의 예산을 배정했다. 모든 시·군·구에 작은 도서관을 만들고, 160개 국민체육센터를 설치하는 예산이다. 하지만 8조6000억 원 규모로는 '경기 부양' 효과가 충분하지 않자, 이번에 24조1000억 원을 추가로 푼 셈이다.
이에 대해 홍남기 경제부총리는 지난 1월 30일 "지역 균형 발전이라는 목표하에 선정했을 뿐 경기 부양 목적이 아니다"라며 "4대강 사업과 수평적 비교는 어렵다"고 해명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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