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5월말 시작되는 20002 한국-일본 월드컵 중계권을 확보한 유럽 최대의 미디어재벌 키르히 그룹의 몰락이 '독일의 엔론 사태'에 비유되며 큰 물의를 빚고 있다.
키르히 그룹은 독일 최대 방송국인 프로지벤SAT.1에 52%의 지분을 갖고 있는 키르히 미디어가 주력사로, 우리나라 케이블 TV에서도 인기리에 방송 중인 '섹스 앤 더 시티'를 비롯해 인기시리즈물 '호간의 영웅'(Hogan's Heroes) 등 수많은 드라마 판권과 2002 한국-일본 월드컵과 2006 월드컵 및 F1(포뮬러 원) 자동차 경주 중계권등을 보유하고 있다.
***60억 달러 빚더미에 올라 **
이처럼 잘 나가던 키르히 그룹이 최근 잇따른 투자 손실로 적어도 60억 달러의 부채를 져 채권단의 자금 회수 압박에 시달리고 있어 극심한 유동성 위기를 겪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바예리셰 란데스방크, 코메르츠방크, DZ방크, 히포페라인스방크 등 4개 은행에만 30억달러 상당의 채무를 지고 있는 키르히 그룹은 그동안 창업주인 레오 키르히의 '황제 경영'으로 투명경영과는 거리가 멀었다.
이번 2002 월드컵축구 중계권 판매 대행사이기도 한 키르히 미디어는 운영난으로 한-일월드컵 현장에 단 2명의 아나운서만 파견하고 유료채널인 '프레미어'를 통해서만 중계하기로 해, 독일 축구팬들은 키르히 그룹의 몰락을 피부로 느끼고 있다.
독일 최대 상업 TV 네트워크 키르히 그룹을 이끄는 레오 키르히(75)가 유럽 최대 미디어재벌에서 하루아침에 빈털터리 신세가 된 배경은 무엇인가.
***풋옵션 딸린 주식 매각으로 무리한 자금 유치**
영국의 파이낸셜 타임스(FT)는 커다란 수익을 올려줄 것으로 기대했던 유료 TV채널 '프레미어' 가 '밑빠진 독'이 되어버린 점을 가장 큰 요인으로 꼽았다.
키르히는 이 채널을 운영하느라 프로그램 매입 등에 10억달러를 쏟아부었지만 수입이 보잘것 없어 손실은 계속 커지고 있다.
지난 12월 현재 프레미어는 2백40만명의 회원을 보유했지만 지난해에만 8억달러가 넘는 손실을 보았다. 자금난으로 2년전 10억 달러 이상을 주고 산 F1 자동차 경주 중계권도 팔아야 할 형편이다.
그러나 키르히 그룹이 몰락하게 된 결정적인 원인은 선물거래식으로 자금을 유치하는 무리한 경영 때문이었다. FT는 그동안 키르히는 풋옵션 계약으로 지분을 팔아 자금을 끌어들였다고 보도했다.
세계적인 미디어재벌 루퍼트 머독에게 17억 유로(10월 만기), 유럽 최대의 언론사 악셀 슈프링거에 7억6천7백만 유로(4월 만기) 등이다.
지난주부터 키르히그룹의 주력계열사인 키르히미디어는 사실상 파산상태다.
다급해진 레오 키르히는 키르히미디어의 경영에서 물러나는 조건으로 구제금융을 요청할 수 밖에 없었다. 이에 따라 채권단은 7억여 달러에 달하는 긴급구제금융을 투입하기로 했다.
***미디어 황제 머독이 눈독**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IHT)은 27일 현재 머독의 뉴코퍼레이션이 키르히 그룹의 가장 유력한 인수자로 떠오르고 있으며, 이탈리아의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총리가 소유하고 있는 미디어그룹 미디어셋도 관심을 보이고 있다고 보도했다.
머독과 베를루스코니는 긴급구제금융을 이끌어내는데 큰 역할을 했고 이들의 연합지분으로 사실상 키르히미디어의 경영권을 획득했다.
또한 프레미어에 22%의 지분을 갖고 있는 머독은 키르히그룹에게 풋옵션을 행사하겠다며 압박을 가하며 키르히 그룹에 눈독을 들이고 있다.
키르히 미디어에 72%의 지분을 가졌던 레오 키르히는 이제 14%의 지분밖에 남아 있지 않지만 그나마도 채권단에 담보로 내놓은 것으로 알려졌다.
독일 미디어 산업계와 정치계는 키르히 그룹의 몰락에 큰 충격을 받고 있다. 상업주의와 선정주의로 악명 높은 머독이 인수할 경우 독일의 방송계가 뿌리채 흔들림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독일 양대 국영방송국인 ARD의 페테르 포스 부회장은 "장기적으로 독일의 상업적 방송이 나름대로 지녀온 균형감각이 손상될 것"이라고 우려를 표명했으며, ZDF 관계자도 "키르히가 영향력을 잃지 않기를 바란다"고 안타까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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