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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찰 피해자' 곽노현, 3.1절에 사면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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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찰 피해자' 곽노현, 3.1절에 사면해야

[기고] 이명박 정부 검찰, 양승태 대법원 체제의 피해자

이명박, 박근혜 정권 시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억울한 탄압으로 해직과 투옥을 당했는지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적폐청산과 새로운 100년을 열어가야 할 문재인 정부에서 이들의 해원과 국민통합을 위해 특별대사면이 이루어지는 것은 마땅한 일이다. 그 대상이 되어야 할 많은 이들이 있지만 이 글에서는 교육문제에 관심을 가진 사람으로서 교육계에서 가장 억울한 탄압을 받은 이 중 하나인 곽노현 문제를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많은 사람들에게 후보매수사건으로 알려진 곽노현 전 서울시교육감 사건은 진보교육에 대한 정치적 탄압의 산물이었다.

곽노현은 정치인이 아닌 진보교육의 상징적 인물

곽노현은 서울 최초의 진보교육감이다. 서울에서의 진보교육감 등장은 당시 이명박정권에게는 커다란 정치적 부담이 될 수밖에 없는 사건이었다. 실제로 곽노현 교육감 시절 내내 이명박정권의 감시와 견제가 이루어졌고 그 가장 큰 상징적 사건은 곽노현과 오세훈이 무상급식을 둘러싸고 보수와 진보 간 전면 대리전을 치르게 된 일이었다. 당시 오세훈 시장은 무상급식 주민투표를 제안하며 시장직을 걸 정도로 서울 진보교육감 죽이기에 매달렸다. 물론 결과는 모두 알다시피 오세훈 시장의 완패로 끝났다.

절묘하게도 소위 곽노현 사건은 무상급식 갈등으로 오세훈 시장이 사퇴한 직후에 터졌다. 우연치고는 너무나 이상한 우연이었다. 박근혜 탄핵 이후 밝혀진 바에 따르면 곽노현은 김기춘 당시 비서실장이 민정수석에게 2차례나 고발하라고 지시했을 만큼 이명박, 박근혜 정권에게는 눈엣가시 같은 존재였다. 이는 고 김영한 민정수석의 비망록에서 확인된 일이다. 곽노현 사건은 이명박근혜 정부 내내 이루어진 진보교육감들에 대한 정부 차원 탄압과 첨예한 갈등의 본격 시작이었다. 이후 조희연 서울교육감이 허위사실 유포라는 죄목으로 억울하게 소송에 휘말리고 김승환 전북교육감은 18차례 이상이나 기소되는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곽노현은 이 일로 교육감 직을 잃었을 뿐 아니라 실형을 살고 34억 원이라는 선거비용 반환고통을 지게 되었다. 형 확정 이후 이미 6년이 훌쩍 지났지만 선거권도 피선거권도 행사하지 못한 채 지내왔다. 그는 정치적 권리는 박탈당했지만 출소 이후에도 18세 선거권 확보와 학생·청소년 인권 확대를 위한 일에 함께 하고, 민주시민교육과 정당정치 발전을 가로막고 있는 교원 정치기본권 회복을 위해서도 앞장서며 교육발전에 필요한 일들로 동분서주해 왔다. 정치적 무권리 상태에서 그는 두 권의 책을 출간했다. 둘 다 우리나라 교육문제를 다룬 책들이었다. 어찌 보아도 영락없이 그는 정치인이라기보다 진보교육을 상징하는 교육계 인사다.

곽노현은 개인적으로 당적을 보유한 적 없는 교수출신 교육감이고, 현행법상으로도 교육감 후보자는 1년 이상 당적을 갖지 못하게 되어 있다. 당연히 교육감도 정당 연계 없는 정치적 중립성을 요구받는다. 이런 이야기를 길게 하는 것은 이번 3.1절 특사는 세월호 집회, 한일 위안부 합의 반대 집회 관계자 등을 대상으로 하며 정치인을 포함한 기타 인사 등은 포함되지 않는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가 3.1절 100주년을 기념하여 국민통합을 위한 대 사면을 계획하고 있다면 정치인은 물론 그간 억울함을 당했던 모든 이들이 포함되는 것이 합당하다고 생각하지만 정부 차원에서 나름의 정무적 판단을 할 수도 있다. 다만 무당적 교육감으로 이명박 정권의 탄압 대상이었던 곽노현을 정치인으로 규정하여 판단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정치검찰과 국정원 사찰 피해자 곽노현

박명기 구속으로 곽노현 사건이 시작됨과 동시에 검찰은 대대적인 피의사실 언론유출을 통한 여론몰이를 하였다. 이는 2011년 8월 27일부터 8월 31일까지 단 5일 간 주요 일간지 관련 보도가 123회였다는 사실만으로도 알 수 있다. 당시 곽노현 사건 보도는 거의 도배수준이었다. 이명박 정부는 의도적인 사건 부풀리기를 통해 곽노현 사건에 대한 여론재판과 진보교육진영 공격에 혈안이 되어 있는 것처럼 보였다. 이명박, 박근혜 정권 시절 정치검찰의 행태에 대해서는 익히 널리 알려진 바 있지만 곽노현 사건에서 보여준 검찰과 언론의 협력은 가히 더할 수 없는 찰떡궁합이었다. 곽노현을 모르던 사람들조차 덕분에 그를 알게 만들 지경이었다.

국정원 사찰 폭로가 된 이후 확인된 바로는 국정원은 교육감 후보 시절부터 집중적으로 곽노현을 사찰했고 곽노현 관련 공식사찰문건만 수십 건에 이른다는 게 확인되었다. 2017년 9월 25일 국정원 개혁발전위가 발표한 '이명박 정부 국정원의 심리전 활동 내용' 자료에 의하면 국정원이 나서서 곽노현 죽이기 심리전을 수행하였음을 알 수 있다. 동 자료에 따르면 국정원 심리전이 진행된 노무현, 송영길, 박지원, 조국, 이상돈 등 21명 인사 중 곽노현이 유일한 교육계 인사로 포함되어 있다. 국정원은 교육청 앞에서 수의를 입고 관을 앞세우는 집회 등 다양한 관제집회시위와 관제언론광고, 관제댓글로 사퇴여론몰이 공작을 수행하였다.

곽노현은 이명박정권 시절 정치검찰과 국정원 사찰공작의 최대 피해자 중 하나다. 김상곤 경기교육감과 곽노현 서울교육감의 등장은 당시 이명박정권을 긴장시켰으며 진보교육의 싹을 조기에 잘라내야 한다는 위기감을 갖게 했을 건 불을 보듯 뻔하다. 그 집중포화를 받은 이가 곽노현이었다.

헌재에서도 논란이 된 '사후매수죄'

곽노현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후보매수자가 아니다. 이명박 정부 시절 사법부는 그를 '사후매수자’라고 판결했다. 곽노현 사건은 우리나라 70년 사법 역사상 '사후매수죄’가 적용된 유일한 사례다. 이 조항은 전 세계에서 한국과 일본에만 있는 사문화된 조항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후보매수죄는 선거에서 자신에게 유리하도록 상대방 후보를 사퇴시키고 금전이나 직으로 그 댓가를 지불하는 것이다. 그런데 곽노현에게 적용된 사후매수죄란 사전에 후보사퇴와 관련한 어떤 댓가 약속도 없이 선거가 다 끝난 뒤 상대방에게 금전적 지원을 한 것을 처벌하는 조항이다. 사후매수죄란 그 자체로 논리적 모순이다. 졸업한 뒤에는 교사에게 어떤 선물이나 대접을 해도 촌지가 될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다. 사후매수죄 조항은 마치 네모난 동그라미가 있다고 주장하는 법이다.

이와 같은 이유로 곽노현에게 적용된 사후매수죄에 대한 헌재 판결에서도 3인의 위헌 의견이 나왔을 만큼 논란이 되었다. 6인 합헌의견도 '선거비용 보전이 선거 공정성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저해하는 정도에 이르지 않는 것으로 판단된다면 대가성이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고 지적하였다. 즉 경우에 따라서는 선거비용보전도 합법적인 것으로 인정될 수 있다는 것이 헌재의 의견이었다. 그런데 곽노현의 경우에 상대방에게 전해진 2억 원은 사전에 약속한 돈도 아니고 일반적으로는 적은 액수가 아니지만 선거비 보전이라 하기에는 또 너무 적은 액수였다. 그러니 곽노현이 상대방에게 준 금전의 성격은 헌재에서도 그 자체가 더욱 논란이 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1, 2, 3심 재판과정에서 곽노현은 일반적인 후보매수죄로 처벌받지 않았다. 검찰은 수사초기에는 후보매수죄를 확신했으나 수사진행과정에서 사후매수죄로 전환하였다. 왜냐하면 곽노현은 자신의 선거승리를 위해 상대방후보를 매수하는 일에 관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즉 일반적인 후보매수가 이루어지지 않았음이 재판과정에서 실체적으로 확인되었기 때문이다. 다수 법학자들은 대법원의 사후매수죄 해석이 곽노현을 처벌, 축출하기 위한 자의적해석이라고 비판하였다. 엄밀히 말해 선거 당락과 관련해서만 말한다면 곽노현이 상대방에게 돈을 준 시점에는 그가 이미 당선된 상태이고 사전에 약속한 바도 없기 때문에 상대방 후보가 어떤 요구를 해도 돈을 안줘도 그만이었다.

백번 양보해서 사후매수죄가 현실에서 가능하다고 치자. 그런데 이명박정권 사법부는 '사전약속, 사후이행'과 '사전약속 없는 사후 금품제공'이 동일한 처벌을 받는 것으로 판결하였다. 법은 범죄행위의 정도에 따라 처벌을 달리한다. 그래서 살인자와 과실치사는 형량이 다르다. 심지어는 같은 행위라도 어떤 상태에서 이루어졌는지에 따라 처벌수위가 다르다. 이런 일반적인 법상식이 곽노현 사건에서는 완전히 배제되었다. 곽노현 사건에서 사법부는 행위정도에 따른 차등형량 원칙을 회피하고 분명하게 댓가를 주고받으며 거래를 한 후보매수와 같은 크기의 처벌을 하였다.

더구나 곽노현 사건에 대한 대법원 판결은 2012년 9월 27일에, 헌재 판결은 같은 해 12월 27일에 내려졌다. 사후매수죄에 대한 헌재 판결이 나지 않은 상태에서 대법의 최종 판결이 내려져 논란 중인 법조항의 무리한 적용사례라 할 수 있다. 법리적으로 논란이 되어 위헌성 여부를 다투고 있는 상황에서 그 조항을 그대로 적용해 판결을 내린 것은 뒤에 있을 헌재판결에 대한 사전 압박 성격을 갖는 것일 수도 있었다. 어떤 경우이건 상식적이고 합리적인 것과는 거리가 먼 사법판결이었다. 곽노현 대법 판결이 내려진 2012년이 최근 사법농단으로 헌정질서를 유린한 것이 만천하에 드러난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이었다는 사실이 새삼스럽게 떠오르는 건 왜일까.

곽노현은 이명박 정권 하에서 김상곤 교육감과 함께 혁신교육의 싹을 틔우고 그 토대를 다지는 데 앞장선 사람이다. 그런 그가 소위 사후매수죄 사건으로 10년 동안 선거권과 피선거권을 박탈당한 채 살고 있다. 이미 최종판결 후 6년 4개월이 지났고 그 사이 두 번의 교육감선거도 치러졌다. 곽노현은 이명박, 박근혜 정권의 진보교육에 대한 정치탄압을 맨 앞에서 감당해야 했던 사람이다. 어떤 정책을 펼 때 정부는 여러 가지 변수들을 고려할 수 있다. 그러나 공민권을 박탈당한 지 6년이 넘은 곽노현은 이번 3.1절 대 사면 대상에 포함되어야 한다. 그는 정치 중립성을 요구받는 교육감 직을 수행하다가 이명박 정권으로부터 호된 탄압을 받은 억울한 피해자 중 한 명이기 때문이다.

촛불로 세워진 정부, 지난 100년과 다른 새로운 100년의 출발을 다지는 정부이기에 현명한 판단을 내려줄 것이라 기대한다. 이것이 나를 포함해 교육혁신을 바라고 실천하는 많은 이들이 이번 3.1절 대 사면 발표를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리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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