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고(故) 김복동 할머니의 영결식이 주한 일본대사관 앞 평화로에서 엄수됐다. 김복동 할머니와 함께 위안부 피해자들을 위한 활동을 벌였던 윤미향 정의기억연대 대표는 매주 수요시위가 열렸던 이 자리에 할머니가 언제나 함께 할 것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윤 대표는 "일본 정부는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이 '0'이라는 숫자로 남아있을 때 '이제 끝나겠지'라고 안심"하겠지만 "'일본 대사는 들어라'라고 했던 김복동 할머니의 목소리가 세계 곳곳에서 수백, 수천, 수만의 나비들로 부활하여 함께 외쳐졌으면 좋겠다"며 "이것이 오늘 이곳에서 우리가 할머니께 드릴 수 있는 약속이면 고맙겠다"고 밝혔다.
윤 대표는 "김복동 할머니는 전쟁도, 한국 사회의 가부장적인 편견도, 폭력적인 문화도 이겨내고 드디어는 죽음도 딛고 일어서서 전국 곳곳에, 세계 각지에 다시 희망의 나비로 살아나고 있다"며 "지난 5일 동안의 장례 기간 중에 김복동 할머니는 이 땅의 평화로, 우리 마음 속에 희망으로 그렇게 다시 살아나셨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고 소회를 밝혔다.
김복동 할머니의 진료를 담당했던 연세대학교 의료원의 권미경 노동조합 위원장은 추모사에서 "할머니의 건강을 체크하러 갔을 때 등을 돌리고 누워 계신 채 어떤 말도 하지 않으셨다. 그러다 차츰 살아온 이야기를 하셨는데, 위안부 생활이 너무 힘들어 삶을 포기하려 했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그런 고통과 상처 속에서 누구에게도 마음을 주기 어려웠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권 위원장은 "할머니가 대장암 이야기를 들으시고는 이 정도는 이긴다, 일본이 사죄할 때까지 살아야 한다고 하시며 그 좋아하던 담배도 끊으셨다"며 "문재인 대통령이 온다는 소식을 듣고 한사코 거부하던 진통제를 달라고 하시며 대통령에게 일본의 사죄를 받게 해달라고 똑똑히 이야기하시겠다고 말씀하셨다"며 안타까워했다.
그는 "전신으로 퍼진 암 덩어리가 할머니의 장기를 망가뜨리고 있을 때도 할머니는 수요시위에 나가셨다. 할머니의 상처를 보며 아파하던 우리에게 여성인권운동가의 모습을 보여주셨다"며 "이제는 보고싶어하던 누이동생도, 어머니, 아버지도 만나 마음껏 웃으시라. 남아있는 우리가 끝까지 잘 싸워서 꼭 일본의 사과를 받아내겠다"고 다짐했다.
'여성인권운동가 고 김복동 시민장'으로 치러진 영결식에 앞서 이날 오전 김 할머니는 생전에 마지막으로 거주했던 위안부 피해자 쉼터 '평화의 우리집'에 들렀다.
이곳에서 김 할머니와 함께 거주했던 또 다른 위안부 피해자 길원옥 할머니는 김 할머니의 영정사진이 집안으로 들어가자 사진을 쓰다듬으며 "왜 이렇게 빨리 가셨어. 이렇게 빨리 안 갔어도 좋은데. 먼저 좋은 데 가서 편안히 계세요. 나도 이따가 갈게"라고 말해 주위를 안타깝게 했다.
이어 김 할머니가 생전에 기거했던 방을 둘러본 뒤 영정사진과 운구차는 서울광장으로 향했다. 길원옥 할머니는 김 할머니가 떠나는 모습을 한참 동안 바라봤다.
이후 서울광장에 도착한 장의 행렬은 94개의 만장과 함께 영결식이 열리는 주한 일본대사관 앞으로 향했다. 영결식에는 1000여 명의 시민들이 노란색 나비를 흔들며 김복동 할머니의 마지막 길을 배웅했다.
한편 지난 1월 29일부터 31일까지 문재인 대통령과 강경화 외교부 장관, 진선미 여성가족부 장관, 피우진 국가보훈처장 등 정부 인사들을 비롯해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 정동영 민주평화당 대표, 이정미 정의당 대표, 심상정 정의당 의원 등 정치권 인사들이 잇따라 김 할머니의 빈소를 찾았다.
또 위안부 문제를 다룬 영화 <아이캔스피크>의 배우 나문희‧이제훈 씨, 영화 <허스토리>의 배우 김희애 씨 등도 빈소를 방문해 고인의 마지막 길을 애도했다. 이밖에 장례 기간 동안 6000여 명의 일반 시민들이 빈소를 찾았으며 2111명의 시민들이 시민장례위원으로 함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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