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종근 전북지사, 과연 세풍그룹으로부터 4억여원의 뇌물을 받았나.
검찰 수사결과, 세풍그룹의 F1(포뮬라 원) 그랑프리 자동차대회 유치 계획은 보유하고 있던 염전의 담보가치를 높이기 위한 사기극일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의견이 모아지고 있다. 이 과정에 당시 세풍의 주거래은행은 1천억원 가까운 대출금을 떼였고, 결국 국민들은 공적자금이라는 이름의 혈세로 그 손실을 대신 보전해주어야 했다.
따라서 만약 유지사가 세풍의 사기극임을 알고도 사건에 연루됐다면 그 죄질은 용납받기 힘든 중범죄임에 분명하다.
그러나 업계 일각에서는 유지사의 수뢰 여부와는 별개로, 유지사 역시 사기극의 희생양일 가능성이 크다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유지사, 대회 유치에 대단히 의욕적**
유지사의 강한 부인에도 불구하고 대검 공적자금비리 합동단속반(민유태 부장검사)은 11일 유지사가 세풍그룹으로부터 금품을 수수한 사실을 확인, 곧 그를 소환 수사한다는 방침을 세운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유지사는 지난 95년 세풍그룹이 98년 가을에 'F1(포뮬라 원)그랑프리' 자동차대회를 군산에서 개최하기로 하고 자동차경주장과 호텔 등을 건설하려는 계획을 세울 당시, 도지사 자격으로 군산시 옥구읍에 있던 세풍그룹 소유 염전 1백6만평을 준도시지역으로 용도 변경시켜주고 그 대가로 금품을 수수한 혐의를 받고 있다.
그 무렵 유지사는 사업의 비현실성을 이유로 반대하던 군산시의 반발을 무릅쓰고 형질변경을 해준 결과 그후 두고두고 국회 상임위원회 등에서 특혜의혹에 시달려왔다.
95년 민선지사로 취임한 유지사는 그러나 그때마다 특혜의혹을 정면 부인했다. 어디까지나 사업성이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결단이었지, 특정업체에게 혜택을 주기 위한 것은 아니었다는 주장이었다.
실제로 유지사는 95년 형질변경을 시켜준 뒤 10여 차례나 국제자동차경기연맹이 있는 파리까지 날라가 대회 유치에 적극 나서 96년에 대회 유치를 확정지었으며 그후에도 도청에 대회준비조직위원회를 구성하는 등 사업에 자못 의욕적 모습을 보였다.
***세풍은 처음부터 담보가치 높이려던 사기극**
문제는 그러나 세풍측이 처음부터 대회 유치보다는 다른 데 관심이 있었는 게 아니냐는 의혹이다.
요컨대 당시 세풍그룹이 F1대회를 유치하기 위해 벌인 일련의 작업들은 형질변경을 통해 실제로는 거의 가치가 없던 염전의 은행담보가치를 높여 은행권으로부터 1천억원대에 이르는 대출을 받기위한 술수가 아니었나 하는 의혹이다.
당시 세풍그룹의 F1 대회유치를 위해 실무를 맡았던 세풍 출신의 한 관계자의 증언이다. 이 관계자는 국내 몇몇 안되는 자동차경기 전문가로 파리에서 F1대회 관계 업무를 맡았던 경력을 인정받아 세풍에 스카웃됐던 인물이다.
"F1 그랑프리를 유치하기 위해선 우선 파리에 있는 국제자동차경기연맹(FIA)에 약 3백억원 가량의 신청비를 내야 한다. 이 정도 거금을 낼 수 있어야 비로소 FIA가 신청자의 대회 유치 의지 및 능력을 인정하기 때문이다.
세풍은 그런데 이 거금을 FIA에 냈다. 내가 세풍의 스카웃 제의를 직장을 옮긴 것도 이 돈을 냈음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와보니 이상했다. 세풍이 정작 F1 사업에 별로 관심이 없는 것이었다. 세풍이 자동차경기장을 세우겠다는 군산 염전은 지반이 약한 관계로 경기장을 세우는 데에만 거의 1천억원이 필요했다.
하지만 세풍에는 돈이 없었다. 신청비 역시 땅을 담보로 제일은행에서 빌린 돈 가운데 일부였다.
쓸모 없는 염전의 담보가치를 높이기 위해 F1을 유치하려는 게 아니냐는 의혹이 짙었다."
F1 그랑프리를 승인하는 국제자동차경기연맹은 대회 시설을 점검한 뒤 97년11월 파리에서 열린 정기총회에서 준비상태가 부족하다고 평가하고 군산을 개최예정지에서 누락시켰다. 계약에 따라 3백억원의 신청비도 FIA측에 떼였다.
이에 대해 세풍측은 97년 4월 이전 모든 허가나 서류작업을 마칠 예정이었으나 7개월이나 지연되면서 공사시기 등을 놓쳐 사업이 원활하게 진행되지 못했다고 주장했었다.
이에 전북 도청측은 대회를 2000년에 개최하기로 잠정 연기했다가 99년 6월말 세풍그룹의 부도를 이유로 개최를 공식 포기했다.
***공적자금만 1천억원 날려**
당시 사업진행을 계속 취재했던 한 스포츠 전문기자도 "F1은 30만명의 관객을 동원하고 전 세계에 TV로 중계되는 규모가 큰 사업이라 컨소시엄이 구성되는 것이 일반적인데 세풍그룹은 독자적으로 모든 것을 처리하겠다면서도 사업에 대한 열의나 의지가 의심스러울 정도였고 자금사정도 좋진 않았다"며 "창업자 손자인 고대용 세풍월드 부사장이 따로 작은 사무실을 차려놓고 사업을 추진했는데 인원이 너무 적고 전체적인 업무도 상당히 부실했다"고 의혹을 제기했다.
이 관계자는 그러나 유지사가 사기극인줄을 사전에 알았겠느냐는 의혹에 대해선 "유지사가 공식석상에서까지 당시 F1 자동차대회 개최를 내심 준비중이던 국내 굴지의 자동차업체를 공격하는등 대회 유치에 적극적이었다"며 유지사 역시 사기극의 희생양이 된 게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했다.
요컨대 유지사가 돈을 받았을지는 모르나, 돈을 받았다 할지라도 F1그랑프리 유치가 사기극임을 사전에 알고 한 것은 아닌 듯 싶다는 관측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풍의 사기극 과정에 주거래은행인 제일은행은 1천억원의 대출금을 떼어야 했고, 그 돈은 고스란히 국민혈세로 물어야 했다는 점에서 유지사 역시 뇌물 수수 여부와 상관없이 세풍 사태에 일정부분 책임이 있다는 지적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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