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경험으로는 스포츠지의 영화담당 기자들 중 50%이상이 촌지 관행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으로 알고 있다."
한 영화 일간지의 영화전문기자가 토로한 말이다.
영화업계와 영화담당 기자들 사이의 촌지관행이 얼마나 넓게 퍼져있는 가를 보여주는 증언이다.
***한 기자는 아예 해외로 잠적하기도**
서울지검이 지난 4일부터 금품을 받고 대가성 기사를 쓴 혐의를 받고 있는 스포츠신문 영화담당 기자들을 차례로 소환하기 시작했다.
현재까지 검찰 소환대상은 8명으로 알려지고 있으나, 검찰 주위에서는 조사가 진행됨에 따라 그 숫자가 10명을 넘어설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경제부기자들이 주식을 받고 대가성 기사를 써준 혐의로 무더기 구속된 '윤태식 게이트'에 이어, 이번에는 영화담당 기자들에게로 불똥이 튄 셈이다.
여기에다가 현재 검찰이 내사중인 음반업계와 PD간의 뇌물수수 혐의까지 합하면, 가히 '촌지 수난시대'라 할만하다.
현재까지 확인된 바로는 일부 스포츠지 기자들은 영화 촬영개시 전과 촬영 중, 그리고 시사회 등 도합 3차례에 걸쳐 한번에 1백만원씩 촌지를 받고 향응을 제공받은 후 선전에 가까울 정도로 영화를 소개하는, 언론계 속어로 '조찡 기사'를 써준 혐의를 받고 있다.
현재 해당기자들은 노 코멘트로 일관하고 있다. 한 기자는 아예 해외로 잠적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또한 사건과 관련된 영화사들도 전화연락을 끊고 있다.
그러나 검찰에 출두한 기자들은 "촌지는 인사 수준이었고 향응은 식사대접 정도였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검찰의 구속요건인 대가성 혐의를 강력 부인하고 있는 셈이다.
***"한 영화 갖고 다섯차례나 촌지를 받은 적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계 및 언론계 주위에서는 '마침내 터질 게 터진 것'이라는 차가운 시선이 많다.
영화업계와 영화담당기자들 사이의 뿌리 깊은 촌지 관행에 대해 오래 전부터 많은 지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다지 개선되지 않았다는 게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영화산업이 현재같이 대규모 산업화되기 전부터 영화계에서는 촌지가 일상화돼 있었다.
한 원로급 전직 영화전문기자 윤모씨의 증언이다.
"80년대초 '매춘'이란 영화가 빅히트쳤을 때 일이다.
개봉전에 한차례 기자들에게 촌지가 돌았다. 그런데 얼마 되지 않아 관객숫자가 10만명을 돌파하는 게 아닌가.
당시로서는 대단한 기록이었다. 기자들이 이 사실을 기사로 쓴 뒤 영화제작자에게 축하한다며 한턱 내라고 했다. 곧바로 화끈한 술자리가 마련됐고 또한차례 촌지가 돌았다. 얼마 뒤에 관객숫자가 20만을 돌파했다. 또한차례 촌지가 돌았다. 이런 식으로 10만명씩 관객이 늘 때마다 촌지가 돌았다. 당시 이 영화 관객이 40만을 돌파했으니 도합 다섯차례 촌지를 받은 셈이다."
그는 영화계 촌지가 '한국적 관행' 차원을 넘어선 '아시아적 관행'이라고 말했다.
"영화제 때문에 홍콩이나 대만에 가면 깜짝 놀랄 경험을 하게 된다. 이른바 '촌지 증정식'이 그것이다. 80년대말 일이다. 주최측이 우리나라 감독과 배우들을 초청해 놓고 만찬을 벌였을 때 일이다. 영화제에 동행했던 기자들도 참석했는데, 사회자가 느닷없이 기자들을 무대앞으로 부르는 게 아닌가. 어색한 모습으로 나갔더니, 예쁜 아가씨가 쟁반에 돈봉투들을 들고 나왔다. 그러더니 사회자가 돈봉투를 집어 기자들에게 하나씩 주는 게 아닌가. 돈봉투에는 빨간 색 바탕에 금 글씨로 '寸志'라 쓰여 있었다. 그러자 참석자들이 모두 박수를 쳤다. 매일 뒷전에서 촌지를 받다가 공개장소에서 박수까지 받으면서 촌지를 받다보니,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몰라 당혹스러웠다"
***대가성 기사를 쓰는 법**
촌지를 받으면 어떤 형태로든 보답을 해야 한다. 세상에 공짜란 없기 때문이다.
대가성 기사는 여러 형태로 생산된다. 좋은 작품, 재미있는 영화라는 방식으로 써주는 방식도 있으나, 때로는 정반대로 비판성 기사를 써 '조찡'을 해주기도 한다.
예컨대 성애(性愛) 영화의 경우 자주 쓰이는 기법이 "너무 야하다"는 식의 비판성 기사다. 요즘 영화가 왜 이러냐는 식의 개탄성 기사를 쓰면 기자는 외형상 폼이 난다. 비판을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묘한 방정식이 숨겨져 있다. 이런 기사가 나가야 손님이 몰려든다는 게 영화계 종사자의 증언이다.
한 때는 영화를 수준이상으로 악평해 화제를 일으켜 관객들을 끌어 모으는 방식도 선호됐다. 지금은 작고한 C신문사의 기자 정모씨가 특히 '영화를 보고 확인하고 싶어지는 악평'을 잘 써주는 것으로 유명했다.
당시 영화사직원이었던 한 영화평론가는 "당시 정씨가 받은 촌지는 다른 기자들의 10배 이상이었고 그를 위해 극장을 빌려 단독시사를 하곤 했다"고 자신의 글에서 회고한 바가 있다.
요즘 들어서는 스포츠지 영화담당기자들에 대한 영화계 선호가 높아졌다 한다. 스포츠지의 주된 독자층이 영화 주고객층인 신세대인 데다가, 컬러사진을 크게 실어주는 것이 큰 효과를 나타내기 때문이다.
***스포츠지만 문제인가?**
과연 촌지는 스포츠지만의 문제인가.
모 일간지 영화담당기자는 현재 영화담당 기자 전반에 대한 의혹어린 시선에 대해 "문제가 된 것은 스포츠지이지, 일간지에서는 그런 비리가 7~8년 전부터 '공식적으로는' 클리어(깨끗)해진 것으로 안다"고 주장했다.
이 기자는 그러나 영화광고 수주대가로 호의적 기사를 써주거나 제작사가 비용을 대는 '정킷'(해외촬영장 현지 취재) 등의 일간지 관행에 대해서는 "인풋(촌지)과 아웃풋(기사)이 늘 같지는 않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이런 주장에 대해 한 영화 전문잡지의 기자는 "그런 일도 원칙적으로 해서는 안 될 일"이라며 "인풋과 아웃풋이 다르다는 변명도 결국 뇌물만 받고 떨어지는 격"이라 일침을 놓았다.
서울지검의 한 관계자는 "현재 검찰은 대가성을 가지고 기사를 쓰고 금품을 수수한 경우는 모두 조사하겠다는 강경한 입장"이라고 내부의 분위기를 전하며 "패스21 사건이후 기자를 잡아들이는 일에 부담을 덜 느끼기 시작했기 때문에 혐의가 확실히 발견되면 수사대상을 일간지나 방송으로까지 확대 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영화촌지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당사자들이 내놓는 주장중 하나가 "다른 부서 기자들은 촌지나 별도의 혜택을 받고 있는 마당에 받는 액수도 적은 영화담당기자들만 왜 문제삼느냐"는 반론이다.
실제로 한 일간지의 영화담당 기자는 "경제부나 정치부 기자들이 받는 봉투나 접대에 비하면 영화담당기자들의 해외 촬영장취재협조나 촌지는 아주 작은 수준"이라고 주장했다. 요컨대 영화판의 정치적 파워가 약하니 툭 하면 '희생양'이 되곤 하는 게 아니냐는 식의 불만이다.
그러나 요즘은 상황이 달라졌다.현재 대부분의 홍보사가 음성적으로 책정하고 있는 '기자 사례비'가 영화산업의 활성화로 인해 지난 몇 년 사이 10배가량 액수가 커졌기 때문이다.
홍보비로 10억대 이상을 쓰다보니, 광고보다 효과가 몇배나 큰 '호의적 기사'를 따내려는 영화계 로비경쟁이 치열하고 이 과정에 촌지 액수도 일반의 상상을 뛰어넘을 정도로 커진 것이다.
"왜 우리만?"이라고 항변하기에 앞서 깊이 자성할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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