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군수업체들이 사활을 건 합병 전쟁을 시작했다. 부시 정부의 출범으로 미 군수산업이 80년대 이래 최대 호황 국면을 맞고 있는 데 따른 발빠른 대응이다.
미국의 군수산업은 이미 지난 90년대 일련의 인수ㆍ합병 과정을 거쳐 록히드 마틴을 선두로 보잉, 노스롭 그루먼, TRW 등 5대 기업의 과점으로 재편된 상태다. 그러나 또다시 미 군수업계는 핵융합 조짐을 보이고 있다.
노스롭 그루먼(켄트 크레사 회장)이 지난 18개월 동안 75억 달러를 들여 선박업체 리턴, 뉴포트 등 군수업체들을 인수한 데 이어, 4일(현지시간) 마침내 TRW사에 대한 '적대적 인수합병(M&A)'을 선언했기 때문이다. 이는 현재 최대 업체인 록히드 마틴을 제치고 1위업체로 올라서려는 전략으로 해석된다.
이번 합병시도가 성사된다면 노스롭은 1998년 노스롭을 인수하려다 정부의 제지로 쓴맛을 삼킨 록히드와 맞먹는 규모가 된다. TRW 인수시 노스롭은 2003년 2백60억~2백70억 달러의 매출로 록히드 매출액(2001년 2백40억 달러)을 넘어서는 것도 가능할 것으로 전문가들은 분석하고 있다.
그러나 과연 노스롭이 의도대로 TRW을 인수할 수 있을지는 아직 미지수다. 미사일, 인공위성 기술 등 미 국방 계획의 핵심부문에서 강점을 지닌 TRW이 노스롭으로 넘어가는 것을 다른 군수업체들이 방관할리 만무이기 때문이다. 현재 하니웰 그룹도 TRW에 눈독을 들이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럴 경우 당초 예상보다 인수합병 비용이 늘어날 전망이다. 이미 시장은 이같은 우려를 반영해, 노스롭의 주가는 지난달 119 달러에서 적대적 인수합병 추진 소식이 알려진 4일 104.23 달러로 크게 떨어졌다.
반면 TRW의 주가는 전날보다 0.88달러 오른 50.93달러로 거래됐다. 다른 방산업체들이 가만히 구경하지 않고 입찰에 뛰어들 것이라는 기대심리 때문이다. 노스롭이 제시한 구매 가격은 이보다 훨씬 낮은 주당 47달러이다.
노스롭 내부에도 반대의견이 만만치 않다. 록히드와 레이시언과의 합병결과가 좋지 않았다는 점 때문에 노스롭의 주주들 중에는 반대하는 이들도 있다.
노스롭의 크레사 회장은 그러나 이런 우려를 일축하고 있다. 추가 합병이 경영에 미칠 부담은 그리 많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그는 리턴은 통합중이며 뉴포트는 별개의 계열사로 운영되고 있어 추가 합병은 아무런 문제도 안 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는 TRW에 관해서도 노스롭의 기존조직과 쉽게 통합할 수 있을 것이라고 호언하고 있다.
문제는 부채다. 노스롭은 TRW를 주식교환 방식으로 인수하고, TRW자산의 3분의 2를 차지하는 자동차 부문은 매각하거나 분리한다는 방침이다. 그러나 현재의 상황으로 볼 때 자동차 부문의 매각은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설혹 분리작업이 성사되어도 노스롭은 TRW의 부채 55억달러의 상당부분을 떠안아야 한다.
그러나 크레사 회장은 노스롭의 부채가 시가총액의 40%를 넘지 않는다는 점에서 인수합병에 따른 투자등급에 별 문제가 없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노스롭 경영진이 이처럼 덩치 부풀리기에 전념하는 것은 최근 미국 차세대전투기 입찰과정에서 록히드 마틴에게 참패한 보잉사의 존립 자체가 위태로운 데에서도 볼 수 있듯, 랭킹 1위 자리를 차지하지 못하면 앞으로 생존을 장담할 수 없다는 위기 때문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군수업체간의 덩치 부풀리기 경쟁은 부시정권의 출범에 따른 군수산업의 장기 호황 기대심리와 무관치 않은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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