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경제를 쥐락펴락해온 미국의 시대가 끝났다"는 전망이 월가의 내로라 하는 투자은행에서 나와 세계 금융시장에 적잖은 충격을 주고 있다.
미국 굴지의 투자은행인 모건 스탠리의 대표적 세계투자전략분석가 로버트 펠로스키는 4일(현지시간) 발표한 보고서에서 "미국이 주도하는 패러다임은 종언을 고하고 있다"고 단언했다.
이같은 견해는 대부분의 월스트리트 이코노미스트들과 크게 다른 것이다. 구조적 인구학적 요소들로 볼 때 미국은 생산성에서 크게 유리한 입장에 있다는 것이 지금까지의 통설이었다.
펠로스키는 "달러화와 미국 금융시장이 고평가된 상태에서 엄청난 경상수지적자로 인해 미국의 영향력이 줄어들고 있다"며 "미국에서 자산을 빼내 유럽 주식을 사들여야 할 때"라고 주장했다. 그는 "분식회계 사태로 미국의 수익성장률이 위협을 받기 시작했으며 미국의 주식은 유럽에 비해 고평가된 상태"라고 덧붙였다.
이같은 분석결과에 따라 모건 스탠리는 미국 주식에 대한 투자의견을 '중립'에서 '매도'로 하향조정한 반면, 유럽 주식에 대해서는 '중립'에서 '매수'로 상향조정했다.
모건 스탠리의 이같은 포트폴리오(분산투자) 재구성 결정은 모건 스탠리가 전세계적인 영향력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 주식시장에 상당한 파장을 불러일으킬 전망이다. 실제로 4일 이후 세계 주요 외환시장에서 달러화는 유로화에 대해 약세로 전환됐다.
펠로스키는 "유로화야말로 달러화를 대신할 가장 강력한 세계기축통화 대안"이라며 "향후 3년에 걸쳐 달러화는 현재보다 15~20% 평가절하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전세계에 2천6백90억 달러의 자산을 운용하는 크레딧스위스애셋매지니먼트의 스탠리 나비 이사도 "유럽 주식시장이 미국 증시보다 전망이 밝다"는 점에 동의하고 있다. 그는 다만 "유럽 경제가 미국 경제와 밀접하게 연동되어 있는 만큼 당장 큰 차이가 나지는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펠로스키는 또한 "유럽 등 세계경제의 통합움직임이 가시화되면서 경제적 측면과 군사적 측면에서 초강대국 미국이 주도하던 '1극 체제'에서 유럽과 아시아가 미국에 강력하게 도전하는 '3극 체제'로 바뀔 것"으로 내다봤다.
미국의 지위가 흔들리고 있다는 증거는 이밖에도 많다고 펠로스키는 주장하고 있다.
"미국의 자산은 세계투자 포트폴리오에서 지나치게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으며 변덕스러운 해외자본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는 점을 문제점으로 지적한 그는 "엔론 사태로 해외투자자들이 미국시장에 대한 신뢰를 잃게 돼 달러화와 미국 주식을 외면하게 될 것"으로 내다봤다.
펠로스키 보고서는 "미국의 불경기가 특별히 심각한 정도가 아니며 비교적 단기에 그칠 것"이라는 낙관적 전망이 힘을 얻어가고 있는 시점에 나왔다는 점에서 더욱 충격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동안 미국경제가 보여준 놀라운 탄력성을 미국경제의 '구조적 우월성'으로 해석하는 이코노미스트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모건 스탠리 보고서가 얼마나 정확할지는 미지수다. 그러나 다른 곳도 아닌 월가 한 가운데에서 '미국 독점시대의 종언'을 알리는 보고서가 나왔다는 점은 현재 미국경제가 겉으로 보이는 것과는 달리 내부상태가 간단치 않음을 보여주는 증거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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