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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령군, 독립 운동가 김상덕 선생 재 조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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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령군, 독립 운동가 김상덕 선생 재 조명

3·1운동 촉발시킨 2·8독립선언 100주년 기념식 개최

경북 고령군은 지역출신 독립 운동가 김상덕 선생 기념사업회가 2월 8일 고령군 대가야읍 중앙네거리 쉼터에서 2·8독립선언 100주년 기념식을 개최한다고 전했다.
▲ 유학시절 김상덕선생ⓒ보훈처


이번 기념식은 일제의 식민통치에 항거한 3·1운동을 촉발시킨 2·8독립선언의 역사적 의미를 되새기는 자리가 될 것이라며 기념식의 취지를 밝혔다.

선생은 경북 고령군 저전동에서 소농의 아들로 태어나 어려운 가정환경에도 배움에 대한 뜻을 잃지 않고 한학으로 학문적 소양을 다진 뒤 1915년 경신학교에 입학했다. 졸업 후에는 일본 와세다 대학으로 진학해 유학생들과 민족운동의 방안을 모색하며 김도연의 제안으로 독립선언서를 작성하고 학생대회를 통해 이를 발표하고, 국내에 발송하는 방안을 연구하는 학생대표를 선출했는데. 김상덕은 11명의 실행위원 가운데 한 사람이 됐다.

특히 2·8독립선언을 주도하고, 임시정부 문화부장,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반민특위) 위원장 등을 역임하면서 친일잔재 청산과 민족통일에 앞장서 왔던 고령 출신 독립운동가 김상덕 선생의 업적을 재조명하는 중요한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했다.

2·8독립선언은 1919년 2월 8일 일본 유학생 600여 명이 모여 한일합방의 부당함을 폭로하고 한국의 자주독립을 요구하면서 항일독립투쟁을 국내외에 선포한 사건이다. 이 사건을 계기로 김상덕 선생은 1년 후 일제의 감옥에서 풀려나자 중국 상해로 건너가 본격적인 항일독립운동을 시작했으며, 임시정부 문화부장까지 역임하면서 독립운동진영의 통합에 힘썼다. 또한 해방 후에는 고령에서 제헌의회 의원에 당선돼 제헌헌법을 기초하는데 이바지하고, 반민특위위원장으로서 일제잔재 청산을 위해 헌신했다.


이번 행사를 주관하는 김상덕 선생 기념사업회는 그동안 납북인사라는 이유만으로 역사적인 평가를 제대로 받지 못하고 고향에서조차 잊혀졌던 선생의 업적을 현창하는 사업을 지속적으로 펼쳐 나갈 계획이라며 사업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김상덕 선생 기념사업회는 올해 2·8독립선언, 3·1운동, 임시정부 100주년(4월 11일)을 맞이해 지난 14일부터 고령군 대가야읍 중앙네거리에서 장날마다 지역주민에게 선생의 업적을 널리 알리고 있다. 향후에도 지역청소년 역사교육, 김상덕 선생 관련 책자 출판, 김상덕 거리 및 공원 조성, 김상덕 기념관 건립 등 현창사업을 지역에서 시작해 전국으로 확대해 나갈 것을 밝혔다.

고령군에서 향후 일정 경상북도독립기념관 주관으로 2월 19일 2시에 고령 문화누리 가야금홀에서 충남대 허종교수가 김상덕 선생 기념 강연을 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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