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성 선수의 금메달 박탈사건을 계기로 촉발된 네티즌들의 반미 감정이 광범위한 '미국제품 불매운동'으로 이어지고 있다.
특히 이번 불매운동은 그동안 미국 브랜드의 홍수속에서 생활해온 젊은 네티즌들이 자발적 중심축을 이루고 있다는 점에서 향후 미칠 파장이 만만치 않을 전망이다.
인터넷 포탈사이트인 다음에는 26일 오전 현재 미국제품 불매운동 사이트만 1백20개나 개설돼 있다.
미국제품 불매운동 사이트가 경쟁적으로 개설되기 시작한 것은 지난 23일부터의 일로, 김동성 선수의 금메달 박탈로 가뜩이나 국민감정이 험악한 가운데 미국 NBC TV가 인종차별적 발언을 한 사실이 국내에 알려지면서 본격적으로 불붙기 시작했다.
***NBC TV의 인종차별적 방송이 도화선**
미국의 올림픽 주관방송사인 NBC TV의 시사토크쇼인 '투나잇쇼'의 진행자 제이 레노는 21일(현지시간) 김동성 사건을 소재로 쇼를 시작했다.
주걱턱과 가분수적인 두상으로 유명한 레노는 "고속도로에서 한국인 차가 나를 못가게 하겠다는듯 안으로 끼어들었다. 그런데 오늘 이같은 일이 올림픽에서도 일어났다"고 말문을 열었다. 그는 "한국선수의 반칙에도 불구하고 오노가 금메달을 딴 것처럼 고속도로에서도 똑같이 '꺼져'라는 말로 한국인 차를 쫓아낼 수 있었으면 얼마나 좋았겠느냐"고 비아냥댔다.
그는 이어 "그 한국인(김동성)은 화가 났을 텐데 집에 가서 개를 걷어찬 다음 아예 잡아먹었을지도 모른다"고 우리나라의 보신탕 문화까지 들먹이며 인종폄하적 발언을 서슴치 않았다.
이 사실이 23일 밤 SBS 8시 뉴스를 통해 보도되면서 네티즌 사이에 난리가 났다. 각 언론사이트와 포털사이트에 레노의 망언을 규탄하는 글을 쇄도했고,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미국제품 불매운동'을 벌이자는 제안이 쏟아져 나왔다.
네티즌들은 제안만 하는 게 아니라 곧바로 미국제품 불매운동 사이트를 개설하기 시작했다.
***"힘없는 나라의 슬픔, 물려주지 맙시다"**
다음에 개설된 '미국제품 불매운동(cafe.daum.net/ohnosiru)'이라는 사이트의 경우 26일 오전 현재 6백75명이 회원으로 가입, 미국제품 불매운동에 서명했다. 24일 문을 연 이래 불과 이틀만의 성과다.
특히 회원에는 고등학생들이 많이 참여하고 있어 눈길을 끈다.
이 사이트에 들어가보면 '한국사랑 1호 카페'라는 이름아래 왜 미국제품 불매운동을 벌이는가를 밝히고 있다.
"우린 무조건 미국제품을 쓰지 말자는 것은 아닙니다.
무조건 미국제품을 안쓴다고 해서 미국을 이기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정말 진정한 것은 한국의 주역이 될 우리 '젊은이'가 땀흘려 노력해서 더욱더 강한 한국을 이끌어내야 할 것입니다. 한국을 강하게 만드는 것은 우리의 손에 달려있습니다.
우리가 등돌리는 한국의 상표도 우리가 키워낼 수 있습니다. 조금더 사랑합시다. 우리가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힘없는 나라의 슬픔. 우리 후손들에겐 절대로 물려주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이어 옆에는 '사선 안될 미국제품들' 이름이 나열돼 있다.
음식점은 맥도날드, 커피전문점은 스타벅스, 음료는 코카콜라, 화장품은 바비브라운, 의상은 폴로, 가방은 레스포쌕, 생활용품은 암웨이, 전자제품을 필립스, 문구류는 3M, 애견용품은 퓨리나, 기타는 월마트에 이르기까지 1백여개 제품 및 기업명이 나열돼 있다.
한 회원은 "정말 짜증나 죽겠어요. 맥도날드 우리 동네 두개 있어여. 근데 거기가 가득가득 차 있습니다. 사람들 손에는 역시 코카콜라가 들려있구요"라는 글을 올리며 불매운동 참여를 독려하기도 했다.
***"지금 불매운동은 미국 배척이 아닌 항의 운동"**
포털사이트에서만 불매운동이 전개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이화여대 동호회 사이트인 '이화이언(www.ewhaian.com)' 게시판에도 불매운동에 동참하는 의견들이 쇄도하고 있다.
한 학생은 "모든 미제를 다 거부하진 못하겠지만 눈에 띌만한 것부터 하나씩 하는 것이다. 영화, 스타벅스, 버거킹...여기서부터 하나씩 시작하자"며 "지금 네티즌들에게서 시작되고 있는 불매운동은 미국을 배척하자는 게 아니라 항의표시로 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영화잡지 씨네21의 사이트(www.cine21.co.kr) 자유게시판에서 한 네티즌은 "시시각각 틈만 나면 스크린 쿼터제를 없애라는 식의 협박, 우리나라의 문화적 권리마저 빼앗으려는 미국을 보면 화가 난다"며 "불매운동이 일시적인 분노가 아니라 지속적으로 우리 제품을 사랑하는 것으로 이어져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같은 불매운동을 접하는 각계의 시선은 일단 긍정적이다. 글로벌리제이션(세계화)의 홍수속에서 자라난 젊은 네티즌들이 민족적 각성을 하는 중요한 계기가 될 것이라는 판단에서다.
그러나 방법론은 보다 신중해야 한다는 조언도 나오고 있다.
한 기업인은 "젊은이들의 분노와 열정은 잘 이해하고 있다"며 "그러나 우리 수출품의 주력시장이 미국이라는 점을 고려해 '차가운 이성'으로 일을 풀어나가길 바란다"고 말했다.
그는 "과거 한국에서 미국불매운동이 불면 우리의 수출경쟁국인 일본이 이를 적극홍보해 미국내 반한감정을 불러일으킴으로써 우리의 시장점유율을 갉아먹은 적이 적잖다"며 "공개적인 불매운동에 앞서 '미국 바로알기'를 통한 냉철한 대응방식을 모색해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전체댓글 0